가파른 마구령, 카메라도 버리고 싶었다

[여행] 마구령에서 부석사까지

등록 2006.06.23 15:14수정 2006.06.2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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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숨은 목까지 차오르고 입이 마른다. 해는 열을 정수리 위에 끊임없이 쏟아놓는다. 울창한 숲이 만드는 그늘이 아니었다면 이 길을 어찌 갈 수 있었겠는가.

마구령길은 가파른길이 있는 반면 껑충거리며 내달릴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
마구령길은 가파른길이 있는 반면 껑충거리며 내달릴수 있는 길도 있습니다.서재후
마구령은 경북 영주시에 위치한 백두대간의 옛 고개입니다. 지금은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대간꾼들만이 오가지만 옛적에는 인근 영월 하동면과 충북 영춘면에서 부석장을 오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때는 부석장을 보러가는 사람들이 많아 남대리 방향의 마구령 초입에는 주막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막삼거리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월의 와석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근처의 김삿갓 묘를 먼저 둘러보기로 했습니다. 김삿갓 묘는 영월의 고씨동굴방향으로 구불구불한 좁은 도로를 한참을 가야 했습니다. 그날따라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 " 한여름의 더위를 방불케 하였습니다. 와석리에서 김삿갓 선생의 묘까지 짧은 거리이지만 그 뜨거운 열기는 정말 대단했습니다.

난고 김삿갓 선생의 묘입니다. 묘 앞의 비석이 아니면 누구의 묘인지 알수없을정도로 단촐합니다.
난고 김삿갓 선생의 묘입니다. 묘 앞의 비석이 아니면 누구의 묘인지 알수없을정도로 단촐합니다.서재후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김삿갓(김병연)선생은 조부(김익순-홍경래의 난 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함)를 욕되게 한 죄인 -영월동헌에서 실시한 백일장 시제 "노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에 대하여 가산 군수 정씨를 예찬하고 선천 부사이자 방어사이던 조부 김익순을 호되게 비판하는 글을 지어 장원하였다 - 이라고 자책하며, 삿갓을 쓰고 죽장을 짚고 전국을 방랑 하며 서민들의 애환과 양반들의 잘못된 생활상을 시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인지 김삿갓 선생의 묘는 찾기 힘든 영월의 오지산골에 모셔져 있고 단촐 합니다. 묘 앞 덩그러니 놓여있는 비석이 아니면 누구의 묘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말이죠.

낮은 풀 사이로 놓여있는 오솔길이 정겹습니다.
낮은 풀 사이로 놓여있는 오솔길이 정겹습니다.서재후
우리는 다시 김삿갓 묘에서 출발하여 부석면의 남대리를 지나 주막삼거리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공사 중인 길을 털털거리며 한참을 달렸지만 주막삼거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한 코스는 마구령에서 늦은목이까지 5.9km 구간을 지나 다시 부석사까지 9km를 가야하는 총 15km 길이었습니다.

산을 오르기에는 늦은 시각 긴 구간이라 우리는 서둘러야 했지요. 차를 세우고 지나는 주민에게 길을 물어보니, 아이고, 왔던 길 다시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길을 1시간쯤 헤매고 나서야 겨우 길을 찾고 마구령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도시락으로 고픈 배를 채우고 드디어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서재후
출발부터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한동안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했지요. 체력이 약해진 탓일까? 아님, 둘러메고 온 짐 때문일까요? 이 길만큼 카메라가방을 집어던지고 싶었을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산행을 같이하기에는 너무 욕심이 많았나 봅니다.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하나 둘씩 추가한 카메라 장비들이 이렇게 무모한 짓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산을 오르며 생각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사진을 찍겠다고 이렇게 많은 짐을 지고 왔는지 말이죠. 온 세상이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풍경과 바람뿐이거늘 자연을 느끼기에도 빠듯한 시간입니다. 자연은 언제나 욕심을 버리는 만큼, 그만큼의 감동을 돌려줍니다.


꽃피는 계절에 다시 온다면 철쭉꽃을 머리에 이고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
꽃피는 계절에 다시 온다면 철쭉꽃을 머리에 이고 길을 걸을수 있습니다.서재후
나무에 걸린 산악회 리본을 따라 어느 정도 산길을 오르니 출발 때 보다 비교적 수월한 능선이 이어집니다. 밖의 뜨거운 열이 다른 세상 마냥 숲에 가려지고 온몸에 바람이 흩어집니다. 산위에 부는 바람은 참으로 고마운 바람입니다. 긴 구간만큼이나 여러 종류의 아름다운 길들이 놓여있습니다. 어떤 곳은 풀들로 이루어져 있고, 또 어떤 곳은 철쭉나무가 머리를 덮으며 터널을 이루고 있습니다.

서재후
이곳에 꽃핀 계절에 다시 온다면 철쭉꽃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파른 오르막이 있는가 하면 껑충거리며 내달릴 수 있는 내리막과 오솔길이 나옵니다. 또 다른 곳은 컴컴한 나무 사이로 반짝거리며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들이 넋을 잃게 만듭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산새소리, 산짐승의 것인 듯한 기척소리가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햇살이 나뭇잎에 부딪치며 흩어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보니 햇살이 나뭇잎에 부딪치며 흩어지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서재후
이렇게 우리는 늦은목이를 1km 남겨놓은 지점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죠. 제가 선두를 잡았던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시간은 흐르고 조금 더 지나면 산속에서 밤을 맞겠다 싶어 서둘렀던 것이 엉뚱한 길로 접어들어 불안에 떨게 되었던 게지요. 1Km를 더 걸은 것 같은데 늦은목이는 보이질 않고, 길을 알려주는 등산길 리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채화 같은 부석사 풍경입니다.
수채화 같은 부석사 풍경입니다.서재후
우리는 궁리 끝에 산길 이정표 밑에 붙어있던 택시기사 전화번호를 이용했습니다. 다행히 그 기사분이 등산을 즐기는 터, 정확한 위치파악을 하더군요. 늦은목이를 1km 남겨놓은 지점에 갈림길이 있는데 거기서 왼쪽으로 가야 늦은목이고 우리가 접어든 길은 부석사로 가는 비등산로랍니다. 그러나 그길로 곧바로 내려오면 우리의 최종목적지인 부석사로 내려온다는 겁니다. 길은 험했지만 당초 계획했던 길을 가기엔 해가 뉘엿거리기 시작해 전화위복이라 위로하며 내리막을 미끄러져 갔습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  법고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 법고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합니다.서재후
멀리서 들려오는 부석사의 저녁 법고소리가 어찌나 감사 하던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리는 듯합니다. 우리는 부석사에 도착해서야 긴장한 마음을 풀고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10km가 채 되지 않는 산행을 시간에 맞춰 하게 된 것이었으니 더 잘된 일이 되었지요. 늦은목이에서 부석사까지는 한참을 더 가야 했을 터이니 말입니다. 그러나 산행에서 이정표와 리본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습니다. 이런 요행은 매우 드문 일 일듯합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양전에서 본 전망이 아름답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앞 안양전에서 본 전망이 아름답습니다.서재후
부석사는 두 번째입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부석사의 법고소리는 산속 멀찍이서 밖에 듣지 못했지만 무량수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아름답고, 먼 산 너머로 태양이 남겨놓은 노을에 도저히 눈을 뗄 엄두가 나지 못합니다. 땀을 식히며 머물렀던 부석사의 고요함은 한동안 휴식이 될듯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사진과 글을 볼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에 오시면 더 많은 사진과 글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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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잊고 살았던 꿈을 조금이나마 실현해보기 위해서라면 어떨지요...지금은 프리렌서로 EAI,JAVA,웹프로그램,시스템관리자로서 일을 하고 있지만 어렸을때 하고싶었던일은 기자였습니다. 자신있게 구라를 풀수 있는 분야는 지금 몸담고 있는 IT분야이겠지요.^^;; 하지만 글은 잘 쓰지못합니다. 열심히 활동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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