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했던 게이샤의 성공과 사랑이야기

[서평] 미국인 아서 골든이 쓴 <게이샤의 추억>

등록 2006.07.28 16:49수정 2006.07.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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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화센터
미국인 아서 골든이 쓴 소설<게이샤의 추억>(임정희 옮김·현대문화센터)은 일본의 게이샤에 대해 어떤 문헌보다도 가장 확실히 알려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또한 일본의 문화적 특성과 동양적 사관을 느낄 수 있는 음양 오행의 사주와 점치는 이야기와 더불어 190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의 일본 생활상과 사회 분위기와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곁다리로 알려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게이샤라는 한정된 집단의 틀 안에서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와 연관된 인간 군상들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사회, 그리고 일본인의 민족성까지도 자연스레 내비치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이웃에 근접하여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듯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새롭고 신기한 배경이 될 수도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본의 독특한 문화와 역사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일본인에 의해 쓰여진 것이 아니라 일본학을 전공한 미국인에 의해 자료 수집과 문헌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라는 사실이 좀 의외일 듯 싶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한계 때문인지 일본의 실존 인물 게이샤의 생활을 묘사하는 데만도 만족한 듯 동양적 언어의 미묘한 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좀 나태한 플롯이 되도록 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도 약간은 들게 합니다.

같은 문화권인 우리가 읽다보면 느끼게 되는 왠지 모를 언어적 표현의 엉성함과 후반부로 치달으면서 너무 쉽게 일편단심의 사랑만을 추구하고 그 사랑이 아무런 제재도 없이 평탄하게 해피엔딩으로 쉽게 끝나 버리는 단순한 플롯이 단지 한 게이샤의 회상 이야기를 듣고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서양인의 시각으로 동양의 독특한 한 문화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그 전통과 미를 함께 전달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매우 뜻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좀 단순하긴 하지만 내용의 전개가 일사천리로 깔끔하고 단정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반부에 밀도 높게 펼쳐지는 갖가지 해박하고 이미지 풍성한 인물과 사건과 배경에 대한 묘사는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작품의 기개를 드높이 사게 만드니까요.

하녀에서 최고의 게이샤로 성공한 사유리, 그가 선택한 것은 사랑

시골 마을의 가난한 치요(유년시절의 이름)에서 게이샤 사유리로 바뀐 주인공. 치요는 가난 때문에 교토로 팔려가 게이샤 촌의 하녀로 출발을 하지만 게이샤로 선발되어 혹독한 게이샤 견습생활을 거쳐 최고의 게이샤 사유리로 사교계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되지요.

그 화려한 데뷔를 위해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가난하고 허름한 치요를 지워버리고 아름답고 품격 있는 사유리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 자신을 질투하고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애쓰는 하추모모를 견제하기 위한 노력, 자신을 최고의 게이샤로 키우려는 마메하의 노고에 보답하기 위한 노력… 끊임없는 노력만이 그녀를 최고로 대성하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독특한 회색 물빛 눈동자는 “박살난 벌레 색깔”이라는 부정적인 평가에서 “블루 다이아몬드보다 더 찬란하고 아름다운” 최고의 게이샤의 눈이 되지요. 이제 그녀는 더 이상 한낱 가난한 마을의 어린아이나 게이샤 촌의 하녀에 불과한 치요가 아니라 당대의 최고의 게이샤였던 하추모모조차 건드릴 수 없는 성공한 최고의 게이샤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성공한 게이샤의 삶은 화려해 보이지만 슬프고 쓸쓸하기만 합니다. 밤마다 열리는 파티는 한 순간의 향락일 뿐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남자에게서 저 남자에게로 계속 옮겨다녀야만 하는 것은 물의 운명을 지녔기 때문일까요?


그녀는 곧 게이샤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질투와 싸움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가질 수는 있어도 사랑만큼은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치요의 모습으로 자신을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을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지요.

그 때문에 그녀는 그 사람의 주변을 항상 맴돌지만 이제 사유리로 대성한 그녀를 그가 알아볼 리 없다고 생각하지요. 어릴 때 단 한 번 만난 이후로 자신의 삶을 바꾸게 했으며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랑을 위해 그녀는 일편단심을 갖게 되지요.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와의 사랑을 해피엔딩으로 이끌게 되지요.

이 소설에는 시각적으로 표현된 묘사가 많습니다. 거듭 거듭 강조되며 등장하는 사유리의 인생을 상징할 그녀의 눈동자 색깔에서부터 그녀와 다른 게이샤들이 입는 값비싼 기모노의 무늬와 색깔에 이르기까지요. 때문에 풍성한 심상 이미지와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시각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게이샤의 추억

아서 골든 지음, 임정희 옮김,
현대문화센터,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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