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찾아 구름속을 산책하다

대기리 산 정상에서 밤새워 야경사진에 도전하다

등록 2006.09.16 10:53수정 2006.09.1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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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안반덕의 야경
한밤중의 안반덕의 야경김용완
갑자기 별을 촬영하고 싶어졌다.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한번 도전해볼 만한 대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촬영장소나 시기가 문제였다.

단순히 별만 잘 보이는 곳보다는 밤하늘과 별, 그리고 이런 소재와 잘 어울릴만한 곳이었으면 했기 때문에 섣불리 감행하기엔 까다로운 촬영이다. 여기에 기자가 가지고 있는 출사지 정보가 부족했던 것도 촬영이 더욱 미뤄져온 이유였다.


그동안 머릿속에서만 그려온 야경사진은 이렇다. 녹색의 초원이 펼쳐져 있어야 하고, 초원의 언덕 위에 그림처럼 서있는 집 그리고 하늘을 수놓은 다양한 이름을 가진 별의 궤적. 여기에 환상적인 색감과 함께 사진 속 소재가 조화를 이루는 사진. 이런 사진을 촬영하고 싶었다.

영월 출장을 준비하면서 트라이포드와 여유분의 배터리, 셔터 릴리즈 등 야경촬영에 필요한 카메라 장비를 챙겨나왔다. 특별히 정해놓은 일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출사를 가겠다는 생각이 이렇게 만들었다. 꼭 가야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러고 싶을 때 자유롭게 떠나겠다는 뭐 이런 생각 말이다.

촬영을 감행한 이날도 막연한 기대만 있었지 꼭 촬영을 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출장을 나온 것은 아니었다. 업무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날이 좋으면 잠깐 들려가겠다는 생각 정도였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이틀간의 워크숍은 다행히 둘째날 정오 무렵 마무리 됐고, 출장지역도 생각하고 있는 출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마음속에 머릿속에 그려온 그런 그림과 어울리는 장소로 대관령과 강릉 대기리(안반덕)를 꼽고 있었는데, 대기리가 출입도 자유롭고 영월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강릉으로 가는 길. 오랜만에 들려보는 정선과 여량역. 그리고 여량 역 앞 콧등치기 국수집. 오래전 꼬마기차 타고 정선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거기 그대로 있다.


반가운 마음에 운전하면서 자꾸 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시간때문에 멈추지 못하고 눈으로만 훑고 지나간다.

정선에서 강릉으로 넘어가는 길에는 가을초입에 들어서는 시기라 메밀밭 풍경이 장관이다. '저 메밀밭도 달빛이 드리워진 밤에 보면 멋질 텐데….' 학교 다닐 때 읽었던 <메밀꽃 필무렵>의 기억이 오늘밤 야경촬영과 차창 밖으로 펼쳐진 메밀밭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튀어나왔다.


구름이 몰려와 시야 확보가 거의 안된다.
구름이 몰려와 시야 확보가 거의 안된다.김용완
자동차가 강릉에 다가갈수록 느낌이 좋지 않다. 하늘에 구름 한점 없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감추었다를 반복하더니 빗방울이 물 분무기로 뿌리는 것처럼 차창을 뿌옇게 흐려놓는다. 오늘밤 촬영이 제대로 진행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강릉 왕산면 대기2리. 일명 안반덕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정말 독특한 곳이다. 산 정상이 온통 고랭지 배추밭으로 덮여있기 때문. 기존에 보아왔던 보통의 산 정상풍경과는 전혀 다르다. 시야가 확 트이고 시원해지는 느낌이다. 이곳에 오면 저 많은 배추들이 산 정상을 온통 녹색으로 물들여 놓은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만큼 장관이다.

저녁 7시. 세상이 온통 뿌옇다. 안개? 구름? 여기가 산 정상이니 구름이 틀림없다. 그런데… 걱정이 앞선다. 별, 볼 수 있을까?

날이 밝기 전 까진 무서워서 산 아래로는 못내려간다. 구불구불 힘겹게 올라왔던 길을 떠올려 본다. 얼마 전 수해로 길 양쪽이 산사태 흔적이 남아있고, 유실된 도로로 통행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이젠 집에 가기도 어렵고 꼼짝 못하고 밤을 산 정상에서 머물러야 하는데, 희뿌연 가로등(여긴 산 정상이지만 배추 재배 때문에 길이 포장돼 있고, 마을주민들 거주를 위해 도로 옆에 가로등이 설치돼 있다) 불빛이 묘한 기분을 만들어낸다. 솔직히 얘기하면 말이 거창하지 엄청 무섭다.

선택의 여지없는 상황. 이곳에 온 목적에 충실해야 할 것 같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구름 속을 산책하고, 또 밤의 풍경을 열심히 담았다. 이쪽 산에서 한동안 머물렀다, 다시 조심조심 건너편 봉우리로… 갈수록 구름은 더욱 짙어지고 가로등 불빛에 흐느적거리며 퍼지는 밤의 풍경, 노출시간과 대상에 따라 다양한 색감의 사진들이 차곡차곡 담겨졌다.

구름이 내려간 산정상에는 그토록 바라던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
구름이 내려간 산정상에는 그토록 바라던 별이 모습을 드러냈다.김용완
새벽 12시 17분. 자정을 넘긴 시간. 잠깐 차에서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 라디오에서는 감미로운 노래들이 사랑의 아픔을 흐느끼고 있다. 눈은 떴지만 몸은 쉽게 일어서 지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눕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흘러나오는 노래 가사를 떠올려 본다.

'아직도 눈물 흘리며 널 생각해/ 늘 참지 못하고 투정부린 것 미안해/ 나만 원한다고 했잖아/ (중략)/ 어떻게든 다시 돌아오길 부탁해…'

감성이 풍부한 여자가수의 곡을 최근 인기있는 젊은 남자가수가 리메이크 했다는 설명이 한밤중 DJ의 소개 멘트로 이어졌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니 몇 시간 전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다. 산 정상을 가득 채웠던 구름들은 저 아래 산밑으로 내려가 버렸고, 담배연기처럼 뿌옇던 안반덕은 새롭게 얼굴을 내밀어 환하게 비추는 달과 별빛들로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 세워져있고, 밤하늘 풍경엔 별들이 소곤대는 그런 사진이 머릿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내가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과 함께. 몸을 세워 다시 장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가로등보다 더 밝은 달빛이 카메라 장비를 든 내 머리 위를 비추고 있다.

하지만 생각만큼 맘에 드는 사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야경사진에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촬영하기가 쉽지 않다는 오래 전 사진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별을 촬영한지 두 시간이 넘어가는데도 촬영된 사진은 몇 장 되지 않는다. 1컷에 20분, 30분이 넘는 노출을 주어도 적정노출이 나오지 않는 컷이 많았다. 당연히 건질만한 사진 또한 많지 않다.

시간은 흘러가고 다시 구름은 몰려오고 마음만 급해지는 초조한 시간이 계속되는 가운데 어느새 시간은 새벽 3시를 향해 가고 있다. 날이 많이 춥다. 가지고 간 긴팔 후드티를 껴입었지만 한밤중 산정상의 한기를 막아주지는 못한다.

한밤중 초가을 하늘. 구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선명한 윤곽이 흐려졌다.
한밤중 초가을 하늘. 구름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선명한 윤곽이 흐려졌다.김용완
새벽 5시. 여명이 저 멀리 동해바다에서 조금씩 밝아온다. 더불어 사진도 밝아진다. 안반덕의 새벽은 아침이슬(?) 머금은 기자만 돌아다닌다. 문득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마음도 밝아 졌으면 좋겠는데 자꾸 구름이 눈앞을 가린다.

밝아진 아침. 다시 찾은 안반덕만의 색이 인상적입니다.
밝아진 아침. 다시 찾은 안반덕만의 색이 인상적입니다.김용완

덧붙이는 글 | 야경사진 촬영은 거의 처음입니다. 특히 '별'을 촬영하는건 말이죠. 고수님들의 애정어린 조언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야경사진 촬영은 거의 처음입니다. 특히 '별'을 촬영하는건 말이죠. 고수님들의 애정어린 조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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