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눈도 침침하고, 오래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리가 쏟아지는 것 같아서 잘 못 봐요"라고 말하는 한영수 사장.
신준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과 깨달음을 정성스레 보듬을 줄 안다고 했다.
충북 청주시 중앙로 농협중앙회 맞은 편 '중앙서점' 한영수(68)씨가 처음 이곳에 헌책방 문을 연 지는 30년이 넘었다. 빛바래고, 낡은 간판이 세월에 무상함을 일깨워 준다.
"그저 책이 좋아서, 그때는 젊은 시절이라 꽤 책을 좋아했지요. 그런데 요즘은 눈도 침침하고, 오래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머리가 쏟아지는 것 같아서 잘 못 봐요. 사람은 책을 많이 봐야 하는데…."
한 사장은 못내 아쉬운 눈빛이다. 처음 이곳에 헌책방으로 문을 열었을 때는 장사가 아주 잘 됐다고 한다. 그런데 9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서서히 하향길에 오르더니, 요즘은 통 손님이 없다고 한다.
방대한 인터넷 시장 때문이기도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안 보고, 새 학기가 되어도 참고서를 찾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뿐 아니라 학생들은 헌책방에서 책을 산다는 것은 생각도 안 할 것이라고 한다.
80년대, 헌책방이 한창 장사가 잘될 때는 이곳 중앙로에만도 15곳이나 돼 이곳을 헌책방 골목이라 불렀고, 책을 구해 놓기가 무섭게 팔렸다고 한다. 주로 중·고등학교 참고서가 많이 팔리고, 소설과 시집 그 외 전문 서적들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헌책방에서 만나는 책은 참으로 갖가지다. 교과서와 수험서, 참고서, 문제 모음집, 시, 소설 등 한마디로 없는 게 없다.
5∼6평 정도의 작은 가게.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건물 '보'가 아니라 겹겹이, 켜켜이 쌓여 있는 책들이다. 한 사람 겨우 빠져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통로뿐, 책더미에 가려 가게 안이 제대로 들여다보이지도 않았다. 책더미에 '기우뚱' 아무렇게나 기대고선 나무 사다리가 마음 찡하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여기 책이 모두 몇 권이나 돼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그럼 이 많은 책 중 손님이 와서 '무슨 책을 주세요' 하면 어떻게 찾아 줘요?
"평생 이곳에서 살았으니까 무슨 책이 우리 집에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도 금방 알지요."
그렇게 한 사장은 평생을 책 속에 묻혀 지냈다. 그래서일까? 한 사장의 미소에는 뙤약볕이 내리쬐는 여름날에도 거뜬히 견딜 수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을 마음속에 지니고 사는 사람과 같은 여유로움이 배어 있다. 그런가 하면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의 강야에서도 견딜 수 있는 따스한 동굴 하나쯤 마련한 것과 같은 평온함도 깃들어 있다.
한 사장은 "요즘은 손님은 없지만 손때묻은 책들이 자식처럼 여겨져 접을 수도 없고, 내가 그만두면 이 책들은 고물상으로 갈 텐데 아까워서 어떻하느냐"며 "죽을 때까지 소일거리로라도 앉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장에게 책만큼 소중한 재산은 없다. 한 권 한 권 사 모은 귀중한 책, 더러는 아까워 팔지 않고 싶은 책도 있는데 '귀신같이' 골라가는 손님들도 있다며, 꼭 필요한 사람이겠지 하는 마음에 선뜻 내준다는 한 사장.
오래된 책을 보면 오래된 친구가 생각난다. 꿈이 있고, 낭만이 있고, 막걸리가 생각난다.
헛헛해서, 권태로워 찾아간 헌책방에서 벽 너머의 세상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낡은 책 한 권 품에 안고 돌아온 날은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었을 때 같은 포만감을 느끼기도 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 가을, 삶의 번잡함 잠시 내려놓고 일상의 무늬도 모두 거둔 채 한번쯤 헌책방을 산책해 봄은 어떨까.
옛 추억들도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곳이다. '책 속에 언덕이 있고, 쉴 곳이 있다.' 즉 우리네 사람살이와 문화, 역사의 흔적이 수북이 담겨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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