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길 잃은 유동자금이 빚어낸 일종의 병목현상

자금 순환을 유도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

등록 2006.12.02 12:16수정 2006.12.0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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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의 논리’는 굳이 경제학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과정을 알고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래서일까? 요즈음의 부동산 관련 논의들은 기본적으로 ‘주택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라는 전제를 깔고 공급을 어떻게 늘릴 것인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폭등의 원인을 경제의 불확실성과 유동자금의 병목현상에서 찾는 주장도 있다.

유동자금,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길을 잃다

현재 시중에 떠도는 유동자금은 500조원 정도. 이 돈이 수익률 낮은 주식시장이나 실질이자율이 0%에 가까운 은행예금을 피해, 상대적으로 안정된 부동산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집값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연세대 경제학과 허현승 교수는 주식시장 저조현상의 원인으로 “경제의 불확실성”을 꼽았다. 즉 어떠한 경제적 징후도 없는 상황에서 한순간 종이조각이 될지 모르는 주식보다는 사용가치를 유지하는 부동산에 자연히 시선이 모였다는 것이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기업의 선택에도 부담을 줬다. 금리가 낮으면 투자가 증가하기 마련인데 기업투자는 그대로고 주택투자만 늘어난 것이다.

또한 허 교수는 “은행이 경제성장을 위한 제 역할을 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외환위기 때 도산을 경험한 은행들이 반환이 불확실한 기업대출은 피하고, 담보대출 등 반환이 확실한 가계 대출에만 주력하면서 부동산 시장으로 막대한 돈이 흘러갔다는 것이다. 그는 “은행에서 집값의 80% 이상을 대출해주는 등 사실상 투기를 조장하는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며 비판했다.

한국인의 자산 1순위, 부동산


한국의 부동산 폭등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프랑스 출신 르사쥬베랑제르 씨는 “서울 인근에 신도시를 개발한다는데 공해문제나 생태문제 등이 발생할 것 같다”고 답했고, 캐나다인 진스로버트씨는 “다른 형태의 주택 가격은 오르지 않고 아파트 값만 오르는 것이 이상하다”고 답했다.

집값 걱정에 앞서 주거 공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환경을 먼저 떠올리는 그들의 대답이 참 인상적이다. 이들에게 집은 자산이라는 개념에 앞서 ‘사는 곳’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인에게 집은 ‘1순위 자산’으로 인식되며 이러한 남다른 정서는 부동산 가격을 잡기 어렵게 하는 원인이 된다. 허 교수는 “주가가 오른다면 기업가치가 높아지고, 이것이 높은 임금으로 이어져 소비가 향상되는 선순환이 일어나므로 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은 개인에게만 이익을 줄 뿐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다.

정부의 공급확대 정책 “글쎄”... “부촌 형성은 어쩔 수 없는 듯"

정부는 부동산 폭등을 수요와 공급 문제로 보고 공급확대 정책을 추진 중이다. 허 교수는 정부의 공급정책을 인구 문제와 연관지어 그 위험성을 지적했다. 그는 “20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할 거란 전망이 있고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나라의 상황으로 볼 때, 집에 대한 수요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 예상했다.

허 교수는 “현재 집값이 대체로 꺾인 미국의 경우도 맨해튼 같은 부촌(富村)의 집값은 잡지 못했다”면서 “교육열 등과 맞물려 강남, 분당과 같은 부촌에 대한 수요는 지속될 것이고 다소의 조정과정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가격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배가 아프긴 해도 부촌 형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듯하다”며 “부촌지역 가격 잡기에 몰두하는 정부의 계획은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의견을 비쳤다.

이번 부동산 사태는 유동자금이 길을 잃고 부동산으로 몰리면서 생긴 일종의 병목현상이다. 결국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가 모색해야 할 정책의 방향은, 공급 확대가 아니라 길 잃은 유동자금이 이번 사태와 같이 어느 한 곳으로 쏠리지 않도록 유도하는 데 있을 것이다. 부동산, 증시, 은행 등에 돈이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 기업의 투자가 촉진되도록 하는 것이 경제 전체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다.

덧붙이는 글 | 자치언론『연세通』21호에 실린 글임을 밝힌다.

덧붙이는 글 자치언론『연세通』21호에 실린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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