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요즘 저는 김치 먹는 재미에 아주 푹 빠져 있습니다. 제게 김치는 반찬이 아닙니다. 아니, 반찬이기도 하고 간식이기도 합니다. 김치가 간식? 이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김치가 간식이 된 사연, 바로 이렇습니다.
중국에 오기 전, 저는 정말 자신 있었습니다. 향수병에 걸리지 않을 자신, 특히 한국음식을 안 먹고도 견딜 수 있을 거라는 자신! 이것은 제가 한국음식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니라 어느 나라의 어떤 음식을 먹더라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데서 나온 자신감이었습니다.
@BRI@실제로 중국에 온 첫날 향채(香菜:씨앙차이)도 별 거부감 없이 먹었으니까요. 참고로 향채는 '고수'라고도 불리는 강하고 독특한 향의 채소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그 향에 질려 먹지 못한다고 하네요. 중국에서 만난 한 한국인 유학생은 향채를 두고 '식물에서 동물의 향이 나는 변태스러운 맛'이라고 표현했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도 향채가 너무 맛있습니다. 굳이 향채가 아니더라도 저는 낯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예전에 태국에 갔을 때도 다른 사람들은 현지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을 했지만 저는 그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맛나게 음식을 먹었고, "아하하하, 나는 한국인이 아니라 지구인이라니까"라면서 거들먹거렸었지요.
중국에 도착해서 처음 장을 보러 간 날, 저와 같이 일하는 다른 분들은 전기밥솥과 전열팬, 냄비, 프라이팬 등 조리기구들을 장만하셨습니다. "윤 선생, 윤 선생은 안 사요?" 하는 질문에 "어차피 일 년만 있음 한국 갈 건데요 뭐. 겨우 일 년인데, 한국 음식 안 먹으면 어때요. 저는 그냥 학교 식당에서 사먹을래요"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만방자한 짓이었는지. 저는 누구보다도 한국인이었던 겁니다. 다만 '아무 음식이나 다 잘 먹는' 한국인일 뿐이지요.
그러고 나서 딱 한 달 버텼습니다. 된장찌개며 삼겹살이며 머릿속은 먹고 싶은 한국음식 생각으로 가득 차고, 특히 기름기 많은 중국음식의 느글느글함에 김치 생각이 얼마나 간절해지던지. 중국에 온 지, 딱 한 달 만에 제 손에는 김치 한 봉지가 들렸습니다.
그 뒤로 제 방 냉장고에는 김치가 떨어지는 날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가 중국에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갖가지 맛좋은 김치를 이렇게 싸게, 풍부하게 먹을 수 있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고) 아마 중국밖에 없을 것입니다.
냉장고에 김치를 들이기 시작하고서부터, 저는 수시로 김치 먹는 습관이 생겨버렸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도 좋아하긴 했지만 절실한 환경에서 먹으니 그 맛이 더욱 좋습니다. 게다가 중국에서는 생야채를 먹는 일이 거의 없으니,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김치는 그 맛뿐 아니라 감촉에 있어서도 약간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학교 식당에서 중국음식으로 식사한 후, 뭔가 매콤한 게 먹고 싶을 때, 아무 이유 없이 입이 심심할 때, 한밤중에 갑자기 출출할 때, 시도 때도 없이 김치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김치는 간식이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이제야 깨닫게 된 건데, 김치마다 다 맛이 다르다는 사실.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등등 김치들은 주재료만 다르고 나머지 양념은 비슷하니 맛도 비슷하다 여겼지요. 너무 무식한 말인가요? 하지만 김치 한번 직접 담가본 적 없고, 전문적(?)으로 비교하며 먹어본 적 없으니 그 차이를 느낄 기회가 없었다고 하면 조금 변명이 될까요? 각종 김치가 갖고 있는 오묘하면서도 커다란 맛의 차이를, 타국에 나와서야 비로소 느끼게 되었습니다.
김치의 열혈 팬이 된 또 하나의 이유. 자취생 냉장고에 김치가 많은 이유는 단순히 김치가 라면과 천생연분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래 되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방에서 밥 안 해먹는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약 일 년 후, 제 방에도 전기밥솥이 생겼습니다. 한 학기밖에 남지 않은 중국생활인지라 다른 조리기구들은 장만하지 않고, 따뜻한 쌀밥에 슈퍼에서 사다놓은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반찬들은 사 놓고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상해버립니다. 다 먹지 못하고 버려야 하는 안타까운 상황도 몇 번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김치님은 어떻습니까? 시간이 지나도 새콤한 맛으로 변할 뿐 버려야 하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경제적이기도 한 김치, 어찌 제가 김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한밤중에 김치 먹는 여자. 네, 그 여자가 바로 접니다. 어쩌겠습니까.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도 벌써 슬슬 냉장고에 눈이 가는 걸요. 얼른 글 마치고, 어제 사온 오이소박이 하나 입에 물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중국에서는 다들 아시다시피 간체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기사에서는 가독성을 위해 우리가 쓰고 있는 번체를 사용했습니다. 기사 내의 중국어 단어는 '우리말발음(한자:중국어발음)'의 형식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