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과 장작이 부지런한 황토마을 주인의 성품을 보여주는 듯.박상기
밖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진동했다. 점심용으로 들통에 가득 삶는 닭 국물 냄새였다. 열 마리가 넘는 것 같았다. 어젯밤은 돼지 바비큐이고, 오늘 점심은 삶은 닭 잔치이다. 산행에 나선 일행들이 돌아와 각기 구수한 국물에 한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산행을 안 했으면 먹는 거라도 줄이든지 해야지, 먹기는 고봉밥을 먹고 술도 줄기차게 마셨으니 그만하면 누가 봐도 천하태평 꼭지딴들이요, 허울 좋은 산꾼들이다. 박지산에 왔으면 대못을 박든지 정상에 발자국을 남기든지 해야지, 박지도 못하고 그냥 가는 꼴이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수해복구 때문에 등산로를 일시 폐쇄했다고 한다.
박지산의 원래 이름은 두타산이었다(평창군에서 발행하는 홍보 팸플릿에도 두타산이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일제가 삼척 두타산과 혼동이 된다며 박지산으로 바꿨다. 이름을 빼앗긴 것도 서운한데, 수마에 할큄을 당하지 않나 통일산악꾼들한테 괄시를 당하지 않나 이래저래 설움이 클 것 같았다. 점심을 먹으면서 고시래를 하고, 술 한잔을 박지산 산신령에게 헌작하여 화를 푸시라고 빌었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이 차 저 차에 나눠 타고 떠났다. 나는 장인선 대장의 차에 올랐다. 무도관 관장이 운전하는 차량이다. 우리는 장대장의 평창 농원이 있는 데로 찾아가 다시 자리를 폈다. 언제 물 좋고 산 좋은 이 깊은 곳에 땅을 장만했는지 장대장의 눈썰미가 놀랍다.
그냥 가기 서운했던지, 여흥보따리가 덜 풀렸던지 또 한 판이 그럴싸하게 벌어졌다. 나무그늘에 질펀히 앉아 술잔을 돌렸고, 노래를 불렀다. 서울이 멀다고 하지만, 그까짓 거 좀 늦으면 어떠랴 싶었다. 이곳에서 사는 58년 개띠 이원섭 님이 강원도 사투리로 우스개를 해서 한참 배꼽을 잡았다.
막동계곡, 백석폭포도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
이번 산행은 술 반 여흥 반이었다. 어제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에서 출발한 선발대 여섯 명(구만국, 조용관, 박상기, 이상호, 최미자, 고진천 님)은 오다가 송어회로 한 잔하고, 비장의 경승지 막동계곡에도 들렀다. 내 친구인 조용관님과 조용관님의 후배인 고진천님은 오늘 산행이 처음이다.
합정동 선착장의 유람선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조용관님은 나중에 전민동 회원들을 레스토랑에 초청하겠단다. 서울에서 한강 야경이 가장 좋은 곳이다.
강 건너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불을 밝히고 있어 정치에 뜻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 창가에 앉아서 의사당 입성의 뜻을 세우기 안성맞춤이다. 헤엄쳐 가면 금방인 곳인데 선량으로 입성하기가 그리 녹록지 않은 모양이다.
또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으면서 교육민주화에 앞장 서온 이상호님은 수상집 <거기 너 있었는가>를 열 권 가져와 일행에게 나눠주었다. 이 땅의 민주화 시련을 생생하게 체험한 고백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