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
“어서 들어와요. 막 고구마를 캐고, 잠시 쉬면서 막걸리 한 잔 걸치던 중입니다. 같이 한잔 하시죠.”
10월 20일 오후 뒷산이 꽃잎처럼 감싸안은 아늑한 변산공동체에 도착했을 때 윤구병(64) 씨는 새참을 먹고 있었다. 김치, 단감, 땅콩, 젓갈 같은 안주를 올려놓은 술상 앞에 윤씨와 공동체 식구 한 사람, 객 둘 이렇게 4명이 둘러앉았다.
이곳 공동체의 재밌는 관습 가운데 하나가 막걸리 사발을 옆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들은 막걸리 한 사발을 나눠 마시면서도 자신들은 ‘하나’라는 생각을 다져온 것 같다. 내 앞으로 돌아온 사발을 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그의 옷차림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상거지도 그런 옷을 입지 않을 정도로 초라한 옷이다.
“원래는 감물 들인 천으로 만든 여름옷인데, 6년 동안 해진 곳마다 조각 천을 이어 붙여 이제는 겨울에도 입을 수 있는 두꺼운 옷이 됐어요. 앞으로 유행할 패션 디자인으로 보이지 않아요? 하하하….”
전남 함평 태생인 윤씨는 아홉 번째 태어난 아들이라 해서 ‘구병’이다. 넝마주의 공동체로 유명한 윤팔병씨가 그의 바로 위 형이다. 서울대 철학과와 대학원을 마치고 한국브리태니커를 다니면서 어린이 책 기획에 눈떴고 이후 <심심해서 그랬어> 등 베스트셀러 동화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또 월간지 <뿌리 깊은 나무> 초대 편집장을 지냈고, 1981년엔 충북대 철학과 교수가 되었다. 교수생활을 하면서 그는 1988년 보리출판사를, 1989년에는 한국철학사상연구회도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혈안인 사람들과 달리 그는 정년이 보장되는 교수직을 15년만에 마감하고, 1995년 전북 부안군 변산으로 농사지으러 들어갔다.
공동체야말로 우리 사회의 대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변산공동체는 지금 20여 가구 50여 명이 느슨한 지역 공동체 형식을 유지하며 논 2만3000평방미터(7000평)과 밭 2만6000평방미터(8000평)를 일구고 있다. 이 가운데 매 끼니 같이 밥 먹고, 경제적인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식구’는 11명이다. 어른 다섯, 아이 셋, 고교생 셋.
“이곳은 서로 종교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단지 같이 일하고 나누는 아주 느슨한 형태의 생활 공동체입니다. 초기에는 저도 긴장해서 징을 치면 일어나고 밥 먹고 일하는 시간을 정해두는 등 엄격한 규칙을 정하기도 했지만 실패했어요. 그래서 요즘은 밥 먹는 시간만 같이 지키고, 저녁 시간에는 다음날 할 일을 의논하며 자유로운 시간을 갖습니다.”
사발이 몇 순배 돈 뒤 윤씨랑 같이 고구마 밭으로 나섰다. 갑작스레 날씨가 추워져 고구마를 마저 캐지 않으면 얼어붙기 때문에 캐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고구마의 생태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어요. 고구마는 옛날 민중의 배고픔을 덜어준 구황작물이었듯이 정말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작물입니다. 이걸 연구해서 가난한 나라들에 퍼뜨릴 수 있으면 참 좋겠어요.”
그의 손은 영락없는 농사꾼의 손이다. 뭉툭하고 마디마다 옹이가 져 있으며, 악수할 때 잡히는 아귀 힘이 청년의 그것 같다. 윤씨는 쇠스랑으로 고구마밭 두둑을 힘차게 파내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100여 년 전 우리 조상들이 하던 방식으로 농사짓고 있습니다. 벼, 보리, 밀, 콩, 옥수수 등 주곡 위주의 농사입니다. 퇴비를 직접 만들어 쓰고 화학 비료나 제초제를 쓰지 않습니다. 비닐도 쓰지 않습니다.”
유기농을 하면 소출량이 많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간단히 말하면 환경친화적인 생태적 세계관 때문이다. 윤씨는 저서 <잡초는 없다>에서 수백 년 된 ‘팽나무 할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세계관을 이렇게 표현했다.
“너희 인간들은 너무 오만해서 자연의 큰 힘에 기대지 않더라도 너희끼리 문명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과신하는 모양인데, 햇볕과 바람과 흙과 물, 그리고 온갖 미생물과 식물과 곤충들이 한데 힘을 합해 이루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 공동체에서 격리되는 순간 - 너희들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그 현대문명이라는 것이 바닷물에 휩쓸리는 모래성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왜 모른단 말이냐. 이 미욱한 것들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더 높은 생산성을 낼 수 있을지 모르나 결국 생명공동체의 일원인 미생물들과 식물과 동물들을 집단 학살하고, 땅과 물, 결국엔 그것을 만들어낸 사람들까지 죽이게 된다는 게 그의 논리다. 현대 문명은 자연을 먹이사슬로 보지만 그가 보기엔 이 자연은 열매나 잎, 곰팡이 등 모든 유기물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통째로 내주는 ‘생체 공양’을 통해 상부상조하는 공간이다.
“떡갈나무가 수천 개의 도토리를 떨어뜨리지만 그 열매가 다 나무로 자라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대를 이어 나무 하나만 자라도 좋은 거지요. 나머지는 사람에게 주고, 다람쥐에게 주고, 또 다른 나무의 거름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GNP 5%만 성장해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곡식 한 알을 뿌리면 수천 알을 만들어내는 게 자연입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씨 뿌리고 김 매면서 흙이나 바람, 비 같은 자연이 24시간 하는 일을 조금 거들 뿐이지요. 정말 자연 앞에선 옷깃이 여며집니다.”
윤씨는 사람과 사람의 문제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고, 자연과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스로 목에 올가미를 거는 산업화의 ‘만드는 문화’가 아니라 제도나 교육, 삶의 방식을 모두 ‘기르는 문화’로 대전환하지 않으면 인류에게 미래가 없다고 그는 주장해왔다.
“사실 공동체에선 사람끼리의 관계보다는 자연과의 관계가 먼저입니다. 시골생활에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잘 풀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도 중요합니다. 이젠 다른 생명체의 권리도 인권 속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요?”
윤씨가 고구마를 캐는 사이 다른 공동체 식구들은 수수를 털고 있는 중이었다. 날이 어둑해지자 윤씨는 캐둔 고구마를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고구마를 옮긴 뒤 그는 객들을 공동체 이곳저곳으로 안내했다.
도자기 굽는 도자기 성형실, 가마, 대장간, 고교생들이 공부하는 계절학교 강의실,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는 목공실, 언덕을 파서 만든 천연 효소 저장고, 젓갈 저장고, 주워온 ‘국보급’ 옹기들, 직접 판 우물, 메주 띄우는 방, 현재 짓고 있는 초고효율 에너지 절약형 집…. 15년 동안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을 갖췄다.
식당 건물로 가자 ‘공동체의 미래’인 나무(7)와 가을(6)이 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이날 저녁 식사 당번인 고교생 아름(18)이가 혼자서 끙끙대며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윽고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게 흐르는 햅쌀밥에 묵은 김치와 나물들이 가득 상에 올라왔다. 다들 아름이를 칭찬하며 밥을 먹는데 갑자기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무가 먼저 말을 끄집어냈다.
“엄마, 자꾸 돌이 씹혀.”
아름이가 햅쌀 이는 것을 잊어버리고 밥을 지은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비난하지 않았고, 천천히 돌을 가려내면서 한 그릇씩 밥을 비웠다. 가을이와 나무까지 모두 스스로 설거지를 했다. 일곱 살 나무는 장난꾸러기지만 비가 오면 어른이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빗물로 설거지까지 할 정도로 소견이 훤하단다.
식사 후에는 편안한 자세로 둘러앉아 오늘 있었던 일, 다음날 할 일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요즘 사실상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김희정 씨가 “내일 근처 마포초등학교에서 전주 한울생협 사람들과 어울리는 행사가 있어 아침 10시에 모두 이동한다”고 알린 게 가장 중요한 뉴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