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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때만 해도, '이 아이를 어쩌나. 일반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건강한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많았지만 이제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 일반 학급에서 1학년을 제대로 잘 보내는 동안 슬금슬금 다른 욕심이 고개를 치켜듭니다. 저도 남들 못지 않은 욕심이 있는 데다가 아이에게 바라는 기대치 또한 높으니까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는 특수학급도 있지만 우리 아이도 나도 이왕이면 일반학급에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려 남다르지 않게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청각장애라는 것이 어디가 두드러지게 표시나는 것도 아니고 공부라면 남들 못지 않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아이에게도 있었고 엄마인 나도 그렇게 믿고 기대하고 있었으니까요. 조금 걱정되는 점이 있다면 초등학교와는 다른 중학교 시험을 치를 때, 음악 실기시험을 어떻게 치를 것이며 영어 듣기평가와 국어 듣기평가를 어떻게 치르는가 하는 점이었지요.
아이를 중학교에 입학시키기 전에 여기저기 알아보니, 청각장애 학생은 음악실기, 영어 듣기평가, 국어 듣기평가 등을 지필고사로 대체하여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도 청각장애 학생이 더러 있어서 이런 여러 문제들은 쉽게 해결이 되었습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지만 이 시점에서 우리 아이 자랑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긴 했지만 우리 아이는 전화도 못 받을 정도로 듣기 능력이 아주 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 아이는 학교 공부를 아주 잘 합니다. 전교 1등은 아직 못해 봤지만 학급에서 2, 3등은 하거든요. 1학기를 마치면서는 전교 5%안에 들어야 탈 수 있는 과목우수상장도 몇 개 받았습니다. 국가기술자격증인 워드프로세서1급 자격증과 한자 급수자격증, ITQ 정보기술자격증 등등도 일찌감치 따 두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꼼꼼하고 성실한 우리 딸, 그래서 믿음이 가고 자꾸 욕심이 생기는 엄마입니다.
그런데 2학기 기말고사 성적표를 받고 눈을 크게 떠야 했습니다. 다른 과목도 잘 하지만 국어시험은 늘 한 문제 정도 틀리거나 만 점을 받아 오는 이 아이의 성적이 기대치보다 낮게 나와 있는 것입니다. 놀라서 수행평가에서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아이에게 물었더니, 지난번에 성취도고사 치를 때 국어 듣기평가가 있었는데 일반 아이들과 똑같이 듣기 시험을 치렀더니 그림으로 알 수 있는 한 문제를 빼고는 소리가 도무지 안들려서 네 문제를 다 틀리고 말았답니다.
그런데 국어선생님이 아이를 부르시더니, 국어듣기 수행평가에 그 점수가 적용된다면서, "선생님들이 정신이 없어서 네가 지필고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깜빡했는데 그렇다고 이제와서 지필고사를 다시 치르면 이미 네가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는 것이므로 부정행위가 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 아이에게 묻더랍니다.
'부정행위'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는 "제가 차라리 4점을 손해보고 말지요"라고 대답했답니다. 덕분에 국어 점수가 4점 깎이고 전교 석차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직 중학교 1학년인 아이의 학교 성적에 자꾸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 지역이 비평준화지역인 데다가 집에서 제일 가까운 데에 있는 고등학교가 이 지역 공립고등학교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할 수 있는 학교이기 때문입니다.
학습욕구나 지적인 욕구가 강한 우리 아이는 학교행사가 있을 때 간혹 벌어지는 "도전 골든벨" 같은 행사에 참여하고 싶어합니다. 학년 초에는 우리말 골든벨 대회에 학급대표로 뽑혀서 나갔는데 앞자리에 앉아서도 소리를 잘 못들어서 겨우 세 번째 관문에서 탈락하고 말았답니다. 학교축제 행사가 있을 때 "도전 골든벨" 대회가 있었지만 듣기에 자신이 없어서 도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이 아이는 그날, "나를 왜 소리를 못듣는 아이로 태어나게 했느냐"고 원망스레 울먹였습니다. 안 그래도 아이의 장애가 엄마인 내 잘못으로 생긴 것만 같았는데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노라니 억장이 무너집니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한 일이긴 하지만,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이긴 하지만, 이런 행사에 문자 스크린이나 칠판을 이용하여 장애를 지닌 학생들도 열심만 가지고도 이런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TV에서 진행하는 퀴즈 프로그램처럼 자막이 나온다면 청각장애를 지닌 소수도 그런 행사에 즐겁게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긴, 영화도 외국영화는 자막처리가 되기 때문에 볼 수 있지만 자막이 없는 한국영화는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긴 합니다.
우리 건강한 다수는, 그런 작은 행사에서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데까지 손길이나 생각이 미치겠느냐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작고 번거로운 일에 세세한 손길이 미치고 연약한 소수를 위한 배려가 있다면 우리의 어리고 연악한 아이들은 우리가 바라는 그 이상으로 더 잘 자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각장애인은 들을 수는 없지만 볼 수는 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절실한 사람들이 바로 청각장애인들입니다.
2007.12.28 17:59 | ⓒ 2007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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