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순천시민들
슬프도록아름다운
저는 29일, 30일 촛불 문화제 사회를 맡았습니다. 잠시 구호를 외치고, 헌법1조 노래가 흘러가는 동안 한 아저씨가 제 옆에 서있었습니다. 허름한 옷차림에 주름이 깊게 자리 잡은 아저씨에게서는 고단한 삶의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수고하십시다. 제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동안 함께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허름한 지갑을 여시더군요. 넉넉한 지갑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는 없네요” 하시면서 저의 호주머니에 10만원짜리 수표를 넣어주셨습니다.
저는 그 아저씨의 눈을 봤습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그분의 마음이 전달되었습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분의 마음을 거절하는 것이라 생각되어 감사한 마음으로 거금 10만 원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울컥했습니다.
'헌법 1조' 노래가 나오는 동안 저는 마이크를 잠시 끄고 심호흡을 몇차례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더욱 높였습니다. “재협상을 실시하라! 고시를 철회하라!” 퇴근길 운전자 분들이 경적으로 화답해주셨고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습니다.
자유발언 시간에 한 선생님은 “0교시 수업, 영어 몰입교육 그야말로 청소년 우리 아이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는 미친 교육을 당장 중단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또 한 은 “사회자가 29일 30일 연일 마이크를 잡고 있어서 목이 쉰상태라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잠시 쉬라는 마음에 제가 마이크를 대신 잡는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헌법정신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은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다. 재협상 될 때까지 촛불을 내리지 말자”라고 외쳤습니다.
다시 헌법1조 노래가 흘러 나오는 동안 잠시 마이크를 끄고 뒤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또 한 분의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저에게 말을 걸어오셨습니다.
“지금 출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마음은 같습니다. 이렇게나마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습니다. 수고하십니다. 함께 참여하지 못해 정말 미안한 마음입니다. 마음은 항상 같았으나 먹고 사는 것이 바쁘다보니 이렇게 됩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광양제철 협력 업체 야간조로 출근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촛불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정말 이 정부가 해도 해도 너무 합니다.”
끝내 그 분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고 있던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으셨습니다. 걱정 마시라고 여기 참가한 사람도, 참여하고 있지 못한 사람도 다 같은 마음 아니겠냐고 제가 위로 아닌 위로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함께 애써보자며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손이 온통 굳은 살로 가득해서 마치 돌덩이와 악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눈을 봤습니다. 그 슬픈 눈을 마주칠 수 없어서 저는 마이크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화가 났습니다. 고단한 삶이지만 가정을 지키고, 일자리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거리로 나오게 하고, 거리에 나오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눈물을 훔쳐야 하는 지금의 현실에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과연 누가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광우병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촛불을 보고 배후가 있다는 둥 국민 감정만 자극하고, 대책은 세우지 않고 있는 바로 정부 아니겠습니까?
국민들은 이미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대로 입었습니다. 정부가 국민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놓고 거리에 소금을 뿌렸습니다.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걱정을 괴담이라고 폄하하고 끝도 없는 촛불대행진을 보고도 묵묵부답으로 눈 막고 귀 막고 있는 이 정부는 서민들 모두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촛불이 줄어들고, 지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했던 것은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었습니다. 4·19때도, 80년 광주에서도, 87년 6월 항쟁 때도 그리고 IMF 국가 대 환란 속에서도 바로 국민이 나라를 구했습니다.
이러한 국민들의 역동성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역사의 현장에 서 있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문제로 시작된 촛불 문화제는 이제, 교육 문제, 대운하 문제, 의료보험 민영화 문제 등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비판을 쏟아내는 국민 토론장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