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감포사는 분이, 덕이, 열수> 공연 포스터
극단 이루
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브로드웨이의 지나친 상업성을 우려하는 예술인들이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와 오프-오프-브로드웨이(Off-Off-Broadway)를 만들어 새로운 문화운동을 모색했습니다. 비록 자발적이고 발전적인 모색이라기보단 치솟는 대학로 공연장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쫓겨나듯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우리에게도 오프-브로드웨이와 비교되는 오프-대학로 공간이 몇 해 전 선을 보였습니다.
혜화역에서 5분 거리. 혜화로터리 북쪽의 우암길을 중심으로 게릴라 극장, 동숭무대, 혜화동 1번지, 연우 소극장 등 쟁쟁한 극단의 소극장이 이곳 오프-대학로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작품은 오프-대학로의 젊은 피 선돌극장에서 '젊은 극장에서 젊은 공연 보기 기획공연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오른 <감포 사는 분이, 덕이, 열수(작, 연출 손기호)>입니다.
복 받아 가이소
경북 경주의 작은 읍내 감포. 문무왕의 대왕릉이 있는 것 말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 보잘 것 없는 마을에 더욱 보잘것없는 세 식구가 살고 있습니다. 하반신을 못 쓰는 어머니 분이, 반편이 아들 열수, 앞 못 보는 며느리 덕이.시장통에서 채소를 팔아 연명하는 이 세 식구는 저마다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몸뚱이의 아픔은 물론 가슴 속 깊이 상처를 끌어안고 사는 이들은 인연과 악연. 짓이겨진 욕망과 감추어진 비밀. 용서와 화해로 서로를 감싸 안으며 살아갑니다.핵폐기장 유치로 사람들의 욕망이 얽히고설키는 감포. 과연 이곳에 대왕릉의 불빛은 축복을 내려 줄는지요?시납시스만 읽으며 상당히 어렵고 무거운 극일 거란 예감이 듭니다. 허나 답부터 들려 드리자면 '절대 아니다'입니다. 웃고 즐기고 가슴 아파하는 동안 두 시간이 언제 지났는지 모를 만큼 극에 몰입합니다. 웃음과 눈물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며 관객들은 두 시간 동안 감정의 바이킹을 탑니다. 무거운 얘기도 자연스레 표현하는 손기호 연출의 힘입니다.
배우들은 또 어떤가요. 손기호 연출이 이번 작품을 준비하면서 '연극은 배우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이야기할 만큼 배우들의 연기는 일품입니다.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분이(우미화 분), 그악스런 말투와 몸짓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는 미천(염혜란 분), 상처를 깊이 숨기고 살아가는 눈먼 덕이(장정애 분), 실제 시골 촌부처럼 자연스런 삶이 녹아있는 농담을 건네는 따뜻한 단 씨(윤상화 분). 등장하는 배우 열한 명 모두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조화로운 연기를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