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구청 앞에 걸린 벽보.
정윤수
건설업체 출신, 부동산 재산만 36억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이런 엽기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걸까. 용산구청 홈페이지에 실린 이력을 보면 ㅇ토건, ㄷ개발 등 건설업체 출신으로, 구의원을 거쳐 구청장이 된 이력이었다.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중 상당수가 건설업체 출신인데 박 구청장도 비슷한 경우다.
다시 인터넷 전자관보(gwanbo.korea.go.kr)로 들어가 2008년 3월 28일자 정부 관보를 보면 박 구청장이 신고한 부동산 재산은 모두 36억원에 달했다. 본인 명의로 18억원대 건물 한 채, 차녀 명의의 8억원대 건물 한 채 등 건물만 두 채고 3억짜리 단독주택 등 건물재산이 28억원에 달한다. 또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강원, 경기, 경북, 충북 등 4개 도에 걸쳐 11건의 토지 8억원 어치도 소유하고 있다.
해당일자 관보에 공개된 구청장 재산은 서울시내 25개구 중 강서구와 강동구를 제외한 23명의 목록인데, 박 구청장은 4번째로 부동산 재산이 많았다.
70대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 다음은 며칠 전 한 신문에 실린 기사내용이다.
이번에 사고가 난 남일당 빌딩 맞은편 건물에서 27년간 식당을 운영하다가 지난해 호프집으로 바꿔 새 출발을 했던 이상림(71)씨. 재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되자 막내아들 충연(36)씨를 따라 망루에 올랐다.
그러나 20일 오전 망루가 불길에 휩싸였고 미처 망루를 빠져나오지 못한 이씨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충연씨는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유독가스를 마시고 입원해 있어 아직 아버지 소식을 듣지 못했다. 충격받을 것을 우려해 가족들이 비밀로 하고 있는 것.
충연씨의 부인 정영신(36) 씨는 "남편이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버지는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는데 뭐라고 답할지 모르겠다"며 흐느꼈다. (<동아일보> 1월 22일자 '사망자 유족의 애끓는 사연들' 기사중에서)
너무나 억울해 편안히 잠들지도 못하고 있을 고 이상림 씨의 영혼은 박 구청장이 자신을 '세입자가 아니라 떼잡이'라고 한데 대해 어떤 심정일까. 이상림 씨와 박 구청장은 같은 70대다. 다만 박 구청장이 36억원대 부동산 부자인 데 비해, 이씨는 일흔이 넘도록 남의 건물에 세 들어 식당과 호프집을 하며 버거운 삶을 산 게 다르다.
만약 박 구청장처럼 수십억원대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면, 전 재산을 다 빼앗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재개발 때문에 인생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씨에게 죄가 있다면 부동산 재산이 적다는 것 밖에 없는데 어떻게 이런 망발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구청장이 구민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다.
보도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세입자들과 협의가 되지도 않은 관리인가처분을 내주고, 세입자 임대주택 대상자도 줄이고, 심지어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의 이전비를 주지 않는 것도 눈 감아 주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여왔다고 한다. 관련 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세입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집주인들과 건설업체에 유리한 행정을 펴온 것이다.
이 대목은 주목된다. 박 구청장이 용산 4구역 재개발과 관련된 일 처리만 제대로 하고, 세입자들의 절규를 '생떼쓰지 말라'는 현수막을 내걸면서까지 내치지 않았더라도 일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닫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