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때려치고 싶은 직장이어도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사진은 <고양이를 부탁해>의 한 장면.
마술피리
제약회사 마케팅부에 다니는 친구 Q는 예전부터 일 욕심 많기로 소문난 친구였다. 입사 5년차, 친구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음으로 축하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애를 낳고 3개월 후 복직한 친구는 "아등바등 사는 게 정말 너무 지친다"고 조용히 말한다.
외국계 화장품 회사에 다니던 친구 W는 임신을 하고도 아가씨처럼 예쁘게 꾸미고 다니던 전형적인 멋쟁이였다. 어느날 출산한 친구를 보러 집에 들렀다. '츄리닝'과 틀어올린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에 좀 부은 듯한 눈으로 안경을 끼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난 좀 슬펐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며 그렇게 임신을 하고 싶어했던 친구 R은 그나마 교사라는 직업 덕분에 육아휴직을 잘 쓰고 있지만 아기를 어디에도 맡길 수 없어 집 밖으로 쉽사리 나올 수도 없다. "이 아이는 내 인생에서 정말 소중한 존재지만, 한순간도 맘 편히 움직일 수 없다는 게 가끔 견딜 수 없이 슬프다"고 친구는 조심스레 말한다.
나는 그저 새로 선택한 일을 잘해야겠구나, 다짐할 뿐이다. 얼마 전 생일이 지났다. 서른한 살, 괜찮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원한다면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다. 다시 시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았다. 하지만 결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일단 회사를 나왔는데 다시 취직하지 못하면 어쩌나, 헤어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때까지 난 변변한 데이트 한번 못하면 어쩌나, 다들 결혼하고 이대로 나만 외톨이가 되면 어떡하나… 뭐 여러 이유로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다시 일을 알아볼 때,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면접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서류 통과조차 하지 못할 때도 많았다. 말로만 듣던 경제불황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느꼈다. 내가 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도 바로 그것인데, 관련 분야의 경력이 없는 구직자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그야말로 많은 걸 감수해야 하는 인턴 정도다.
그 인턴마저도 어마어마한 경쟁률이고 그나마 대학 졸업한 지 오래된 구직자들에겐 먼 이야기다. 기본급 70만원. 판매를 하지 못하면 인센티브는 없다. 내 나이 서른하나. 예전 직장이 그립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곳에서 좀 더 버텼더라면, 하는 생각을 아침마다 하기도 했다.
힘들게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때려치우고 싶은 직장이어도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하는 일을 관두고 그 경력을 포기하고 새롭게 뭔가 시작한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일단 지금 멈추면, 다시 시작하는 기회라는 건 결코 100% 보장되지 않는다. 개인의 노력과 별개로 지금 사회의 현실은 너무나 매섭다.
관두긴, 어떻게든 일단 버텨야지신입사원들 중 내가 최고령자다. 출근 며칠이 지나고, 동기들 중 아직 매출을 올리지 못한 몇몇에 내가 속해 있다. 사회는 전쟁터, 까딱하면 마지막 보루로 택한 영업직에서도 밀려날 수 있다. 남들보다 더 일찍 출근하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악착같이 매달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면 다행일 거다.
이제 교육이 끝났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하지만 못할 일도 아니라고, 나이도 있으니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도 남들보다 몇 배로 열심히 하라고. 새로운 팀장에게 들은 말이다. 당연한 말이다. 한 번 있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서른 한 살 신입사원에게 더 이상 뒤로 갈 길은 없다.
지날달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률은 92만4천 명(3.9%)으로 1년 전보다 10만6천 명 늘었다. 또 취업준비자 56만8천 명, 아프거나 취업이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지 않지만 취업할 계획이 없는 사람 175만2천 명, 구직단념자 16만9천 명 등을 합치면 사실상 노는 인구는 341만3천 명에 이른단다.
'비경제활동인구 1600만 돌파… 사상 최대' 뉴스가 떠도는 요즘, 나는 이제 이곳에서 죽기 살기로 뛰어야 한다. 그곳에서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는 나의 친구들도, 그대들도, 악착같이 일을 '계속'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든 잘 버텨내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나가기를, 부디.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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