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의 사죄와 전면적인 국정쇄신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이 학계와 종교계, 문학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9일 오전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전국 23개 대학 총학생회장들이 'MB OUT 민주회복을 위한 대학생행동연대(가칭) 제안'기자회견을 열고 현 정부의 민주주의 훼손에 대해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유성호
한편으로는 주로 386세대와 그 아래 세대 30대들이 말하는 '20대 개새끼론'과 구별되는 '20대 책임론'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20대의 부모세대에 해당하는, 참여정부 시절 풋내기(?) 386세대의 아마추어리즘이 나라를 망쳤다고 믿는 50대 이상 어른들에게도 20대 책임론이 있다. 대충 "배가 쳐부른 젊은이들이 눈높이를 높여 취직을 안 해서 외국인 노동자는 늘어나고 그에 따라 범죄율도 상승하고 청년실업률이 늘어나 경제는 활력을 잃었다"로 요약되는 그런 20대 책임론이다.
한쪽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전가하고, 다른 한쪽은 한국 정치의 문제를 전가하니 담론의 세계에서 20대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 말들이 올바르다면 20대들은 한국 사회문제의 유일한 원인이며, 20대들만 개조하면 한국 사회는 선진국 진입은 껌이거니와 세계를 정복할 수 있을 것 같다. 20대를 비판하던 사람들은 이쯤에서 정말로 그렇게 믿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질문해 주시기 바란다.
덧붙여 담론의 세계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오면 20대들은 아버지 한나라당 지지자들과 삼촌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언제 취직하냐"는 압박마저 받고 있을 게다. 현실세계에서 20대의 부모님은 "눈높이 낮춰서 빨리 비정규직으로 공장이라도 취업해서 외국인 노동자를 몰아내고 한국 경제의 활력을 살려내라!"고 말하고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아마 "첫 직장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격언(?)을 들이밀면서 오랫동안 취업준비 하더라도 무조건 대기업 정규직으로 가야 한다고 권하고 있을 거다. 그래서 세상을 대면하지 못하고 각자의 방에 꽁꽁 틀어박혀 취업준비를 하는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더구나 20대의 부모님 세대는 4년제 대학을 다닌 사람이 드물었다. 그분들은 머리는 나보다 나쁜데 집안 잘 만나 대학졸업해서 팔자 핀 자신들의 친구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것이 한이 되어 그분들은 피땀 흘려 얻어낸 당신들의 노동가치를 투여하여 자식들에게 대학교육을 시켰다. 그리하여 이 시대의 대학진학률은 86%에 달한다(OECD 최고 수준이라고 자랑하는데, 이거 자랑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고졸로 사회에 나오면 할 게 없다는 야만적인 현실을 폭로하는 데이터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분들은, 당신 시대의 고졸이나 지금 시대의 대학생들이나 별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대학 못 나온 나도 이만큼 사는데 부모 쌩돈 들여 대학교육까지 시켜준 너는 훨훨 날라다녀야지 왜 빌빌 기어다니느냐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 거다. 부모님 심정도 공감이 가지만, 그 말을 듣고 있는 20대들은 어디로 가겠는가. 쥐구멍도 없는데.
'20대 문제'라고 적어놓으면 언제나 나는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이 '20대의 말이 사라졌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20대는 말이 없다. 김용민 교수의 글(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에 대한 20대들의 반발은 참으로 예외적인 (그래서 소중한) 케이스였다. 그전의 오랜 시간 동안, 20대는 산업화 세대가 더 이상 산업화가 되지 않는 이유로 자신들을 지목해도, 민주화 세대가 더 이상 민주화가 되지 않는 이유로 자신들을 지목해도, 군소리없이 듣기만 했다. 어쩔 때는 자기네들 스스로 그 말이 좋다고 여기저기 퍼다나르는 메저키즘적인 작태를 보이기도 했다.
부모로부터 많은 투자를 받았으나 그 투자를 회수할 방법을 찾지 못하는 20대들은 부채감에 시달린다. 그 부채감이 그들로부터 말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이나 현실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고 자신들을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사회에서 겉돌게 된다.
언론들이 지적하는 '20대 보수화'는 무엇인가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지적하는 '20대 보수화'라는 레토릭에는 분명히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 말은 옳다. 그런데 올바른 해법을 찾으려면 사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요구된다.
20대 보수화 담론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에 참여하는 20대들의 숫자가 줄어들었다는 것, 다른 하나는 20대의 정치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어들어 투표율이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같은 얘기인 것 같지만 실은 다르다. 해법은 분명히 다르고, 아마 원인도 다를 것이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한 정당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내가 진보신당원이라 편의상 진보신당이다. 전자의 문제는 "진보신당은 20대 활동가들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만들어낸다. 반면 후자의 문제는 "진보신당은 20대의 지지를 어떻게 얻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나아간다.
정당에서 피부로 느끼는 20대 보수화는 이런 것이다. 선거 때 연락을 돌려도 대학생들이 선거운동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 대학생들이 강연회를 열어도 많이 모이지 않는다는 것, 더 나아가 대학생 당원들의 활동이 거의 없다는 것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20대들의 정치적 무관심에 대한 비판으로 해결할 수 없다. 20대가 마음을 다잡는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20대 정치 참여자, 20대 후반이거나 초반이거나나는 2001년도에 대학을 입학했는데, 2007년도에 대학을 입학한 여동생과 대화를 나눌 때마다 그 동안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내가 지하철 타는 시간이 아까워 심심풀이 땅콩으로 즐길 만한 소설책을 붙들고 읽고 있으면, 여동생은 거기에 무한한 호기심을 보인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 주변에는 전공도서가 아닌 책을 손에 잡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요새 공대와 경영대의 분위기가 대략 그렇고, 인문사회대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내 여동생은 평균적인 대학생들에 비해 정치에 관심도 좀 있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이것저것 물어보는 편이다. 그러나 심심풀이로 책 한권 읽을 시간이 없는 이들이 무슨 수로 정치적 행사에 참여하겠는가? 여동생은 이런저런 행사가 있으면 얘기하고 데려가 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정작 무슨 일이 있을 때 물어보면 언제나 시간이 안 된다고 얘기한다. 정치에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참여까지 하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는 정말이지 자신의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형편이 다른 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한 세대의 몇 명은 정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20대들의 정치참여가 매우 저조하다면, 이것은 뭔가 이상한 상황이 아닐까? 타당한 의문이지만, 이 의문에 대해 명쾌하게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진보신당의 경우를 보면 20대 당원들이 나와 같은 20대 후반이거나 아니면 막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새내기거나 그렇다. 그 아래는 청소년들이다. 청소년 모임 멤버들은 이전과는 달리 대학생 모임으로부터 어떤 노하우도 전승이 되지 않는 분위기에 실망하고 놀라워한다. 말하자면 중간이 비어있다. 왜 그런 것일까?
90년 이후 모든 운동권들은 선배들로부터 "너희들이 후배를 안 키웠다"는 질책을 들어왔다. 재생산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운동권의 몰락을 대사로 웅변하는 그 내리갈굼의 피라미드가 90년대 후반에 정점을 찍었고, 그리하여 21세기 초의 대학생들은 정치에 참여하는 길이 막혀버렸다는 식의 해석이 가능하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이들도 어디를 가야 자기와 비슷한 선배들을 만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해 혼자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시대였다는 거다. 다행히 이 시대는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 되돌려준 새로운 정치의 시대로 인해 종결된 것 같다. 이 사태에 대한 서술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2007년 대선 때 20대들의 진정한 경향성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