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도카와 스니커 문고 제14회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 12월 1일에 발매되는 슈가다크 묻혀진 암흑과 소녀.
카도카와 스니커문고
라이트노벨의 전신은 1970년에 시작된 슈에이샤의 청소년 대상 코발트 문고다. 현재는 90년대 미스터리 소설에 힘을 쏟던 카도카와 문고의 작품이 라이트노벨 시장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한다. 카도카와 문고는 라이트노벨 신인 작가를 육성하기 위해 '카도카와 스니커 대상'을 14회째 열고 있다.
쇼가쿠칸은 소년독자와 소녀독자 대상으로 각각 '가가가' '루루루' 문고를 만들어 카도카와 문고에 맞서는 중이다. 쇼가쿠칸이 주관하는 라이트노벨 대회도 올해로 4회째다. 그런데 쇼가쿠칸의 라이트노벨 대상 선고 기준이 흥미롭다. "비주얼화 되는 것을 의식한, 엔터테인먼트 소설일 것, 판타지, 미스터리, 연애, SF 등 장르 불문." 라이트노벨이 기존의 장르를 모두 섭렵한 탈 장르화된 새로운 장르임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젊은 층이 라이트노벨에 보내는 관심 또한 뜨겁다. 카도카와와 쇼가쿠칸의 라이트노벨상 응모에는 2천 편 이상의 작품이 모이고 있으며, 인기도서는 10만권을 훌쩍 넘기는 판매고를 올린다. 일본 출판과학 연구소의 통계를 보면, 일본에서 라이트노벨은 매년 2천 점 가량 출간되고, 판매액은 3천억 원(추정)을 웃돈다.
작품관 사라지고, 스타일로 승부하는 일본 작가들 일본의 서점가들은 1990년대 후반 미스터리 소설의 유행 이후 라이트노벨이 압도적으로 인기를 끌자, 서점의 라인업을 미스터리에서 라이트노벨로 일신하는 등 독자들의 움직임에 맞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작가들의 장르 넘나들기는 이러한 유행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관'이나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장르' '스타일'로 소비된다. 독자가 작가와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 셈이다.
오타쿠가 만든 '서브컬처', 국경을 넘다 |
'서브컬처'란 무엇일까. 서브컬처는 1950년 데이비드 리즈맨이 사회의 지배적 문화에서 일탈한 문화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기 시작한 후 사용돼 왔다.
일본에서는 1980년 이후 뉴아카데미즘 유행과 맞물리면서 일반적인 서브컬처 개념과 달리, 망가, 아니메, 게임, SF, 오컬트, 디스코, 피규어 등 오타쿠가 전파시킨 문화 전체를 지칭하며 '하이컬처'의 반대어로 쓰인다. 하지만 무엇이 서브컬처인지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범위와 정의가 많이 다르다.
일본의 평론가 아즈마 히로키는 "오타쿠 문화는 1980년대 세계적으로 퍼진 포스트모던의 한 유형"이라며, "오타쿠 문화는 미국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창조해낸 고도 성장기 일본의 국가적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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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노벨 계열의 작가들은 그런 의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 에쿠니 가오리 등 작가의 이름이 작품을 말해주던 시대의 작가들과는 획을 달리 한다. 일본문학에서 하루키, 바나나의 등장은 전시대 작가들과 다르게 포스트모던한 '개인'의 전면화였다. 그리고 이제 라이트노벨은 서사가 아니라 비주얼, 즉 스타일로 넘어가고 있다. 위 라이트노벨 대회 응모 요령은 더는 서사가 스토리의 중심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또한 라이트노벨은 이미 소설이 '작품'이 아니라 '조립(합)된 이야기', 즉 망가(만화)나 게임 등의 스토리를 제공하는 '스케치'가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미 일본에는 망가를 어떻게 조립하면 되는지, 라이트노벨을 어떻게 조합하면 되는지를 알려주는 종합사이트도 존재한다.
일본문학계에서는 라이트노벨이나 휴대폰소설의 등장을 '서사'의 또 다른 분기점으로 보고, '서브컬처'의 한 지류로 파악한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전통적인 의미의 문단이 붕괴된 일본에서는 이러한 종류의 소설이 유행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표하거나 이런 현상을 위기로 보는 분위기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