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위쌈을 먹으며

등록 2010.04.13 10:01수정 2010.04.1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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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동네는 시내의 중심 요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은행이 몇 개씩 있고 농협, 새마을금고에 우체국까지 있을 정도로 시골도 아닌데도 신기하게 5일마다 장이 섭니다. 장날이라고 해봐야 특별나게 싼 것도 없는데도 공산품 이외에는 반드시 5일장을 이용합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생선이나 야채, 과일까지 이중 삼중으로 포장돼 나온 것을 사면 이 포장재가 썩으려면 몇 십년이 될 것이고 지구가 몸살을 앓는 것은 물론 이대로 가면 지구가 몇 개가 되어도 모자라겠지요. 그래서 저는 장바구니를 들고 5일장을 즐겨 애용합니다.

 

장이 서는 5일장을 이용하면 무엇보다도 시골에서 팔러나온 촌부들을 도울 수 있어서 좋은 데다가 우수리로 덤도 얻으며, 해진 뒤 어스름녁 파장에 가면 '떨이'로 엄청 싸게 사니까 일거다득이지요. 그래서 저는 주로 닷새 동안 일용할 부식을 주로 시장에서 사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5일을 살지요.

 

며칠 전 퇴근길에 사람들이 북적여서 보니까 '가는 날이 장날'이었습니다. 주름살 가득한 할머님이 보자기에 머위를 담아 팔고 계시더군요. 문득 시골에 계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2000원어치를 팔아 드렸습니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유별나게 머위를 좋아하셔서 집 주변에 머위를 많이 심어 이른 봄이면 양지 쪽에 아기 손바닥만한 어린 머위가 솟아 올랐지요. 머위의 어린잎을 데쳐서 잡수시며 봄철에 입맛 돋구는 것은 머위가 최고라고 극찬을 하시곤 했지만 어린 저는 그 지독한 쓴맛에 입도 대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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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머위 ⓒ 이철순

야생머위 ⓒ 이철순

시장에서 돌아와서 머위를 깨끗히 손질해서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물에 여러 번 헹군 후에 된장과 고추장을 넣고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어 무치고 절반은 데쳐서 초고추장과 쌈장에 쌈을 싸서 먹으니 입안에 가득 고이는 그 쌉싸름한 맛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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쌉싸롬한 맛의 머위쌈 ⓒ 이철순

쌉싸롬한 맛의 머위쌈 ⓒ 이철순

어린 시절, 쓰다고 입에도 대지 못하던 쓰디쓴 그 머위의 맛을 그 옛날의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서야 알았네요. 머위쌈을 아이들한테 권하니 도로 뱉어내며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몇 십 년 전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웃었지만 나는 "본디 몸에 좋은 것은 쓴 법이란다"하며 그 옛날 우리 부모님께서 어린 저한테 하시던 말씀을 내 아이들한테 되풀이 했습니다.

 

거기다 한마디 덧붙였지요. 곰쓸개를 비롯해 짐승의 모든 쓸개가 몸에 얼마나 좋은 줄 아냐? 쓴 것은 다 좋은 것이여, 몸에 좋다는 인삼 더덕 잔대 도라지 칡뿌리 등등 약초가 단맛이 나는 것 봤냐?

#머위 #머위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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