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이요."
쌀까지 가져다 주는데도, 그냥 있는 쌀을 '뻥' 소리 나는 기계에 넣었다가 돌려주는 것인데도 뻥튀기 아저씨는 돈을 또 받았다. 뻥튀기가 쌀과 달리 달콤하고 사르르 녹는 맛이 없었다면 몇 번이고 줄을 서가며 뻥을 튀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뻥은 쌀과 다른 매력이 있었다.
대개 텔레비전 인기 시리즈물이 극장 판으로 제작될 때마다 최고로 화려한 치장과 옷차림으로 스크린을 장식하는 정공법을 택한다. 기존 텔레비전 드라마 캐릭터에 뻥을 튀겨 더 비싼 옷을 휘감고 스케일을 키운 뒤 정점에서 결혼식을 찍어주는 방법이다. 한 번의 뻥튀기 정도는 옛 정을 생각해서 봐줄 수 있다. 하지만 두 번째에도 한번 튀긴 뻥을 다시 튀기는 방법으로 나온다면? 다른 영화 중 선택권을 가진 관객은 다소 고민한다.
"이거 열라 뻥 치는 거 아니야?"
뻥튀기 전략···뻔한 공주 이야기에 불과?
<섹스 앤 더 시티 2>도 일단 뻥튀기로 돌파 전략을 삼았다. 캐리의 뉴욕 아파트를 벗어나 펜트하우스로, 맨해튼을 떠나 아랍 에미리트 아부다비 특급 호텔로 스케일을 한 번 뻥 튀겨 준다. 뉴욕에서도 10만 km는 떨어져 있는 중동으로 날아가면서 우리 평범녀들에게서도 아득히 멀어져 가는 것은 아닌지.
<섹스 앤 더 시티2>는 전편보다 더욱 화려하고, 더욱 이국적이며 호화스러운 눈요깃거리를 준비했다고 홍보한다. 여자들과 마음이 통한다고 자부하는 네 (한때는) 싱글 여성들이 (여자들이) 가장 원하는 모든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겠다는 약속을 내건 셈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영화는 드라마틱한 요소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주 이야기가 되고 만다.
여주인공 캐리는 <섹스 앤더 시티>의 공주 역할을 톡톡히 누린다. 드라마 속에서도 화제가 됐던 캐리의 의상은 영화 한 편에서만 100여 벌이 넘는 다른 옷으로 바뀌고, 어김없이 구두도 클로즈업 된다. 그녀의 명품 구두와 값비싼 드레스에 초점을 맞출수록 경탄하고 부러워하다 현실적인 질문이 고개를 든다. 캐리가 수천만 원에 이르는 드레스로 옷장을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구두 사재기를 취미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그녀의 능력일까?
아니면 그녀는 단지 모든 걸 가진 남자 빅을 붙잡을 능력이 있었던 것뿐일까? 드라마에서 '나쁜 남자'였던 빅은 남편이 되면서 바람 한 번 피지 않고, 그녀의 잘못도 용서하며 오히려 다이아를 선물해 주는 전형적인 '왕자'가 되어 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영화의 모든 뻥튀기가 가능한 이유가 펜트하우스 키를 쥐고 있는 이 부유한 남편 때문으로 보일 정도다.
또 캐리는 당최 걷는 일이 없다. 그녀가 15~20cm의 킬힐을 멋스럽게 신고 긴 다리를 뽐낼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집 앞에서 딱 세 걸음만큼 걸어 나와 손을 흔들며 '택시~'만 외치는 것만 봤을 뿐이다.
<섹스 앤 더 시티2>가 공주 영화가 되면서 우리는 아쉽게도 판타지가 절대 이룰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하룻밤에 2천만 원이 넘는 호텔에 갈 일도 없겠지만 캐리가 평범해서 싫다는 파란 대리석이 깔린 화장실이나 혹은 거기에 무심코 놓여있는 목욕용품이나 장신구마저도 우리는 쉽게 살 엄두도 못 낼 것이기 때문이다.
뉴욕의 평범녀들은 택시가 가장 보편적인 이동 수단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의 대부분의 여자들은 '택시~'탈 돈을 아껴 버스나 지하철을 타야 예쁜 구두 하나를 살동말동하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맏언니 '사만다' 가장 돋보여
영화가 판타지를 채워 주려다 판타치 영화로 가려는 길목에서 가장 돋보였던 부분은 여전한 사만다의 등장이었다. 출연하는 횟수는 캐리보다 적지만 매 장면마다 영화를 도발적이고 가장 <섹스 앤 더 시티>답게 만드는 맏언니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폐경기가 겁난다고 당당히 인정하면서 44개나 되는 비타민과 호르몬제를 먹는 모습도 숨기지 않는다.
캐리와 에이든의 재회 에피소드보다 사만다의 '소동'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찍는다는 인상이 들 정도다. 사만다는 가장 보수적인 중동의 거리 한복판에서 비난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콘돔을 숨기지 않는다.
"그래 콘돔이다"라고 말하며 점잔을 빼는 하얀 베일의 남성들 앞에서 우렁차게 콘돔을 흔들어댄다. 그녀를 그녀답게 만드는 건 뉴욕이라는 배경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기죽지 않는 자세임을 선포하듯 으르렁 대는 모습은 내가 기다리던 <섹스 앤 더 시티 2>였다.
우리가 <섹스 앤 더 시티>를 좋아했던 이유는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마놀로 블라닉 구두를 살 수 있다는 꿈이나 혹시 펜트하우스 키를 가진 남자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판타지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이 차이고 버림 받고 해고 당하고 불쑥 임신을 해도 늘 자신을 잃지 않으려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노력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구두의 상징은 공주적 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상품이 아니라 남자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위로의 선물과 같았다. 영화가 화려해질수록 여성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 <섹스 앤 더 시티2>는 우리를 너무 몰랐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공주가 되기를 기다리기엔 현실 속 왕자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덧붙이는 글 | http://blog.naver.com/eunsil86
2010.06.30 11:31 | ⓒ 2010 OhmyNews |
|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