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9.02 18:25수정 2010.09.0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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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매스컴에서는 7호 태풍 "곤파스"의 영향으로 전국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곳 강릉에도 서서히 강풍이 불고 있으며 영향권에 돌입하고 있는 것 같다. 불현듯 지난달 땀 흘리며 방제했던 밤나무에 피해는 없을까 걱정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난 8월 한 달은 어떻게 지냈는지 모를 정도로 생활환경이 바뀌어 보낸 것 같다. 농민 소득증대를 위한 밤나무 항공방제를 집중적으로 실시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밤나무 항공방제는 날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헬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안개나 바람, 낮은 구름 등의 영향은 기본이고, 온도에 의한 상승기류발생은 헬기로부터 분사된 약효를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최대한 일찍 시작하여 온도가 상승하기 전에 마쳐야 한다.
그러다보니 최소한 새벽 4시에는 기상을 하고 간단한 식사를 마친 다음, 항공기를 준비해서 날씨만 가능하면 일찍 현장에 투입하여 방제를 실시하고, 온도가 올라가는 10시정도에는 마무리를 해야만 가장 효과적인 항공방제가 된다. 약효의 극대화를 위해 저고도 곡예비행을 하다보면 어느 사이 온몸은 땀에 젖고, 시간가는 줄 모르게 해는 중천에 떠있다.
방제를 마치면 다음날 방제할 곳의 도면을 가지고 미리 정찰하여 착륙장은 안전한지, 장애물은 없는지, 민가피해가 예상되는 곳은 없는지 등등을 점검하고 판단하고 협조하고 조치하다보면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 그런 생활을 하다보면 어느 사이 생활리듬이 방제모드로 바뀌어 새벽형 인간이 되어간다. 그러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며칠 동안은 적응하기위해 씨름을 해야 한다.
나는 지난달에 AS-350이라는 중형헬기를 가지고 전남 광양에서 밤나무 항공방제 임무를 수행하였다. 전남 광양에서의 항공방제 임무가 나에게는 처음이라서 지형도 생소하였고, 현지담당 직원 분들도 처음 대면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신경 쓸 게 많았지만, 적당한 긴장과 새로운 시각은 오히려 임무수행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생소한 지형이라 밤새 도면으로 연구를 해야 했고, 지금까지 사용하던 착륙장도 안전저해요소들이 새롭게 보이게 되고, 여러 부분에서 꼼꼼하게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었다.
섬진강과 수어천, 수평천과 광양천, 그리고 수어저수지나 백운저수지 등이 산재해 있어서인지 국지적인 기상차이로 계곡 사이 사이마다 안개나 구름 등이 형성되고 그곳에 숨어있는 고압선이나 전선과 안테나 등은 복병이 되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였지만, 사전 정찰과 현지 기상확인 등을 통하여 하나하나 극복해갔다.
임무수행 중 태풍 "덴무"를 피하여 헬기를 함양산림항공관리소 격납고로 피신도 해가면서 여름 햇살에 영글어가는 밤톨처럼 우리의 부여된 임무는 안전한 가운데 한 곳 한곳 수행하여 마침내 임무를 만족한 가운데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광양하면 광양제철소나 떠오르게 되던 나였지만, 광활한 밤나무 단지에 놀랐고 백운산을 휘감은 산세의 절경과 계곡 곳곳의 수려한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곳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과 함께 나로 하여금 광양의 이미지를 새롭게 인식하는데 충분하였다. 예전에 하동에 방제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여유로움이 흐르는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많은 밤 밭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관리를 하지 못해 방치되고 있는 모습이 많이도 안타까웠다. 한때는 저 밭도 주인의 정성으로 수확을 올리고 주인아들 학자금 대고 장가 밑천으로 사랑받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허무한 생각도 든다.
많은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노인들만 밤밭을 지키니 방제 깃발 꽂기도 버겁다고 하신다. 이제는 밤나무를 제거하고 매실나무로 많이 대처 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방제 현장에서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고, 읍, 면, 리에서 담당직원들이 직접 약을 넣고 물을 담는 등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에 감사함도 느꼈다.
이런 임무를 다니다 보면 고마운 분들이 참으로 많다. 새벽마다 별로 돈벌이도 되지 않지만 우리의 식사를 준비해주신 식당 사장님도 고맙고, 항공기 계류지역인 하수처리장에서는 새벽마다 출입문을 열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고, 임무 시작에서 성공적인 종료까지 우리와 호흡을 함께하신 산림조합 직원 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폭염과 돌변하는 기상속에서도 우리의 고객인 산주들과 농민들께 만족스런 항공방제가 될 수 있도록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돌아왔지만 현지에서의 만족도는 확인할 길은 없다. 단지 최선을 다한 우리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무사하게 임무수행을 마친 우리 동료 팀원 여러분들과 보람을 함께 느끼고 싶다.
이렇게 우리의 열정과 정성으로 방제를 하고 난 밤나무가 이번 태풍에 어떨지 걱정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지금도 정성껏 손길이 간 밤 밭의 하얀 깃발들이 눈에 선하다. 지금 이 태풍 말고도 앞으로 몇 개의 태풍이 더 온다고 하던데, 우리가 방제했던 밤나무들은 모든 풍파 잘 견뎌내고 탐스런 알밤으로 열매 맺어 산주들께 기쁨을 안겨주고 자연에 승리하는 밤나무가 되길 기원해본다.
2010.09.02 18:25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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