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4년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평상시엔 휠체어로 이동하던 남편은 이날 결혼식장에서 오랜 시간 서 있어 땀을 무척 많이 흘리기도 했다.
우지은
뇌성마비 1급인 남자와 키120cm의 왜소증인 여자. 우리가 부부라고 하면 사람들은 언제 결혼했는지, 또 아이는 있는지 묻는다. 아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3년 전 일이 떠오르곤 한다.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없어지더니 급기야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왔다. 혹시나 해서 근처 산부인과에 신랑과 함께 갔다. 임신이었다. 작은 몸집을 가진 내가 아이를 열 달 동안 품을 수 있을까. 아이는 건강할까. 임신은 나에게 기쁨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처음 아이의 힘찬 심장소리를 듣고 얼마나 가슴이 벅차던지. 태명을 짓고, 안 듣던 클래식도 찾아듣고, 먼지 쌓인 채 꽂혀있던 고전소설도 읽어가며 태교도 열심히 했다.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 다가오면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떨리고, 설렜다. 다행히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장애 가진 아이 낙태 권유하던 주치의... 우린 아이를 택했다그런데 14주 정도 되었을 때 아이에게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 초음파를 해보던 의사는 아이의 머리 둘레와 팔다리의 성장에 차이가 난다며 큰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택시에 몸을 싣고 제일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가는 동안 불안과 아픔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일단 혈액검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뒤 의사는 혈액검사에는 이상이 없으니 양수검사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당혹스런 표정으로 앉아있는 우리 부부에게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순간 물었다.
"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그럼 아이를 낳겠다는 겁니까? 키울 자신 있습니까?"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물었다.
"이 아기 낳아서 키울 자신 있어? 나는 없다." "무슨 소리야. 마음 굳게 먹어. 우리를 봐. 넌 지금 너의 모습이 부끄럽니? 우리가 살아온 삶이 절망만 가득한 건 아니었잖아. 삶 속에 희로애락이 있고,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는 가에 개인차는 있겠지. 우리 잘 키워보자." 남편은 깜짝 놀라며 나를 다독였고 한순간 나쁜 생각을 품었던 게 아이에게 부끄러워졌다. 다시 병원에 간 우리는 아이를 낳겠다고 얘기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의사는 두꺼운 의학서적을 들추더니 연골무형증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당신들 아이가 이 모습으로 자라는데 정말 키울 겁니까?" 우리의 대답에는 변함이 없었다. 주치의는 더 이상 낙태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운증후군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초음파에서 이상이 발견되었다고 낙태를 종용받는 세상. 장애 앞에서는 생명탄생조차 아름다운 일도 축복도 아닌 불행과 상처였다. 30~40년 전에 이 정도의 의술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70년대 발달하지 못한 의학 '덕분에' 생존해 있는 나. 참으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7주 만에 태어난 우리 아이는 6일 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슬픔과 상처는 두 배로 컸다. 하지만 우리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또 다시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나는 역시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생명이라는 그 자체만으로 우리의 삶은 존중받아야 마땅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