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작은 곰, 말레이곰서울대공원 말레이곰 우리 앞에 있는 말레이곰에 대한 안내판, 2010년 12월 27일
비두리(박창환)
2010년 12월 6일, 서울대공원을 탈출한 말레이곰, '꼬마'를 기억하나요? 서울대공원 인근 청계산으로 탈주한 말레이곰을 포획하기 위해 대규모의 인원이 투입되고 대대적인 탐색이 벌어졌습니다. '신창원' 곰의 탈주에 언론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저는 2009년부터 '동물원'을 주제로 연작 사진을 하면서 서울대공원에 10번 넘게 다녀왔습니다. 그러면서 '말레이곰'을 여러 번 마주했습니다. 일반 곰에 비해 몸집도 잡고 볼품도 없던지라 크게 눈여겨 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늑대나 표범 같은 동물이 동물원에서 탈주했을 때, 포획불가의 상황에서는 사살하는 뉴스를 몇차례 접해 말레이곰도 '곰'이기에 포획과정에서 불상사로 사살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와 동시에 말레이곰이 시민들의 안전에 피해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하며 이 사건을 주목했습니다.
서울대공원은 사건 발생 2일 뒤인 12월 8일 홈페이지 공지글을 통해 '지난 6일 서울동물원 말레이곰 탈출로 시민 여러분께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현재 서울대공원 모든 직원과 경찰서, 소방대원이 합동으로 수색을 펼치고 있습니다. 탈출한 말레이곰은 만6세로, 무게 30~40kg가량으로 온순한 곰이며, 빠른시간 내에 포획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습니다. 다시 한번 시민 여러분께 거듭 죄송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밝혔습니다.
2010년 12월 12일, MBC <뉴스데스크>의 최일구 앵커의 멘트로, 말레이곰은 유명세를 더 얻게 되었습니다.
배현진 아나운서 : 동물원을 떠난 말레이 곰의 은신처가 일주일 만에 오늘 발견됐습니다.최일구 앵커 : 그러니까 말레이 곰을 발견한 게 아니라 머물다 간 곳을 찾아냈다는 거죠?배현진 아나운서 : 그렇습니다, 어서 빨리 곰이 잡혀서 안전한 우리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최일구 앵커 : 전 말레이 곰에게 이런 말 해주고 싶어요. 자꾸 도망다니지 말레이.- 2010년 12월 12일, MBC 뉴스데스크 중에서말레이곰의 탈출은 9일 만인 12월 15일에 끝났습니다. 말레이곰은 털끝하나 다치지 않고 포획되었고, 다행이 별다른 인명피해도 없었습니다. 서울대공원으로 되돌아간 말레이곰에게는 '꼬마'라는 별명이 붙여졌습니다.
서울대공원은 "말레이곰 '꼬마'가 가출 9일 만인 15일(수) 오전 8시30분 칼바람 부는 청계산 이수봉 정상부근에 설치해 놓은 포획틀에 잡혀 안전하게 서울동물원으로 귀가했다"며 '2010 서울동물원 화제의 10대 뉴스' 중 1위로 뽑았습니다.
서울대공원 측이 '2010 10대 뉴스'로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말레이곰 꼬마는 현재 서울동물원 최고의 인기스타가 되었다. 그야말로 9일 만에 '대국민스타곰'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것이다"라며 "탈출 전 꼬마는 무척 활발하고 천방지축이었는데 많은 시민들을 고생시킨 미안함 탓인지 쑥쓰러움을 많이 탔다. 그러나 이틀이 지난 뒤부터는 같은 짝 말순이에게 9일간의 여행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 듯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되돌아 갔다.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 마냥 …"이라고 말레이곰 탈출 사건을 정리했습니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걸까요? 동물원을 소재한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 <작별> 등을 제작한 황윤 감독은 <한겨레21> 841호(2010.12.24)에 '동물원은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라는 글을 기고했습니다.
"말레이곰 '꼬마'가 다시 동물원에 갇혔다. 사람들은 안도했고 박수를 쳤다. 정작 꼬마는 지금 어떤 심정일까. 짧지만 강렬했던 열흘간의 자유를 그는 잊을 수 있을까. 죽기 전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철창 안에서 매일같이 지루한 일상을 반복해야 하는 그의 여생은 어떨까"라고 시작한 글은, 동물원의 역사적 배경, 윤리적 문제와 동물원에 대한 논쟁, 세계 동물원의 실태 등을 담았습니다.
동화책과 노래, 혹은 드라마나 영화 등 많은 대중매체를 통해 동물원은 '꿈과 낭만의 동산'으로 묘사되곤 한다. 실제로 그 속에서 살아가는(혹은 죽어가는) 동물 처지에서도 그럴까. 인간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일로 인식하면서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를 전시하고 구경하는 행위는 왜 당연한 것으로 여길까. 북극곰을 만난 그날, 나는 이제껏 인간의 관점으로만 바라본 동물원이라는 공간을 '갇힌 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붙잡힌 뒤 낯선 도시로 옮겨져 철창에 갇힌 채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코끼리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풀 한 포기 없는 콘크리트 방에 혼자 갇힌 채 온종일 같은 구간을 뱅글뱅글 맴도는 치타, 페인트가 다 벗겨지도록 쉬지 않고 벽을 핥는 기린, 스트레스로 전시장 유리창을 온 힘을 다해 두드리다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는 온종일 어두컴컴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서 있던 고릴라.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의 삶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을 촬영하는 내내 내 가슴속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한겨레21> 841호(2010.12.24), '동물원은 낭만적 공간이 아니다' 중에서,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