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일요일 저녁 티브이 방송을 기다렸다. 매회 온몸에 짜릿함을 느끼는 방송이 몇 해, 아니 몇 십년만이던가! 엠비시의 '우리들의 일밤'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이하 '나는 가수다') 이야기다.
그런데 이 방송이 연예 소식의 가장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방송에서 청중평가단 선호도 7위를 한 가수가 재도전하게 되자 시청자를 우롱했다며 많은 누리꾼들이 성토하기 시작했고, 다수의 인터넷 매체가 '성질 급한'(!) 그들의 의견 뒤에 숨어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결국 방송국은 책임 연출자인 김영희 피디를 경질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방송이 끝난 지 사흘만에 피디 경질까지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갔다.
머리를 갸웃거리 게 하는 논란
여기서 우선 머리를 갸웃거리는 게 하나 있다. 첫 방송도 나가기 전에 가수들을 서열화한다며 그토록 비난에 가까운 말을 하다가, 이젠 마지막 순위를 한 가수가 바로 나가지 않는다며 비판한다. 예술의 순위 매기기가 못 마땅하다면서 탈락자의 재도전 기회는 시청자를 우롱한 처사란다.
언제부터 많은 매체들의 수준이 '딴따라' 대중 가수를 '외모종결자'나 '잠정범죄자'가 아닌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 평가해왔는지 참으로 의아했다. 또한 그토록 예술의 서열화를 반대한다면, 나름 고심 끝에 내린 재도전이 보다 나은 공연의 기회라고 좋게 평가할 수도 있었다. 순위 매기기 규칙을 비판했으면서 그 원칙을 저버렸다고 화를 내니 좀 난감하다는 말이다.
여하튼 20일 방송의 뒷부분에 나온 장면들을 보면,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놀람 - 일단 탈락 수긍 - 다른 가수들의 만류 - 논의 후 재도전 허용 - 자문위원들의 의견 등의 흐름은 실제로 일어나는 상황을 그대로 중계하는 편집이었다. 미화나 포장 없이 최대한 날 것으로 내보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방송의 원래 의도와 취지를 감안하고 제작진과 출연자들의 의견도 일치해서 내놓는 최선책이었다.
이렇게 하면 아마도 시청자들은 자신들의 진정성을 어느 정도 알아줄 거라고 믿었던 것일까? 하지만 이는 꽤나 순진한 생각이었다. 피디 경질, 존폐 여부까지 운운하는 지금 상황에선 말이다.
사실 '나는 가수다'는 위태로운 방송이긴 하다. 일요일 저녁 예능 시청률에서 죽을 써온 절실함이 예술인(아티스트, 뮤지션)들이 살아 남으려(서바이벌!) 경쟁하는 구도까지 만들었다는 의구심이 가장 크지 않았을까! 그래서 '진짜' 가수들이 최고 무대를 만드는 방송이 될 거라는 '순수한' 기획은 억지 감동에 기대어 얕은 예능 방송을 포장하려는 기만책으로 보였다.
게다가 첫 회부터 음악 방송과 개그 프로그램 사이를 줄타기하는 편집은 그나마 고품격 방송을 기대하던 시청자들에게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몰지각한 행동으로 비쳤다.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주겠다는 제작진의 지나친 욕심이 예기치 못한 화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그만큼 말도 많아졌다.
재도전은 원칙에 반하는 것? 아니 방송 취지에 오히려 부합?
다시 지난 일요일 방송으로 돌아가면, 가장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은 탈락자가 재도전하는 규칙이 새로 생긴 것이다. 그런데 이는 미리 정한 원칙에 반하는 것인지, 현장 상황에 맞게 세부 규칙을 정비하는 과정인지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거창하지만 이른바 '공정사회'와 '정의'를 강조하는 입장이라면 한번의 예외는 편법을 양산하고 기본이 무너지니 방송의 공익성이 크게 훼손되어 신뢰할 수가 없다. 아무런 반성이나 조치없이 이런 방송을 지속한다면 시청자를 무시하는 꼴이 되며 존재 이유를 크게 의심 받는다.
이와는 달리 탈락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게 오히려 방송의 취지나 의도에 맞는다는 입장도 있다. 선호도가 낮은 이유를 곱씹어보며 다음 무대를 혼심을 다해 준비하도록 용기를 주는 게 보다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물론 돌발 상황까지 감안해서 철저한 준비를 해놓았어야 했지만서도, 기존 방송 형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노력이라면 시행착오는 어느 정도 감안해 줄 수 있다는 말이다.
예술가로서 가수의 창작물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대중들은 그들의 재능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다시 가수는 그 반응에서 무엇을 얻는지 생생하게 보여줄 만한 유일한 프로그램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눈치챘겠지만 필자는 당연히 후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래서 지난 방송에서 드러내야 할 것은 갑작스런 상황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솔직한 자신들의 입장 못지 않게,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 세부 규칙을 어떻게 보완할까 하는 고심의 흔적이어야 했다. 가령 청중평가단의 세세한 평가를 충분히 곁들여야 한다거나, 퍼포먼스와 특별 초대손님 등 무대 구성 원칙을 제시한다거나, 자문위원들의 세밀한 조언이거나 말이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향후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비난과 책임은 제작진과 출연진 모두가 나눠 가졌으면 한다. 방송에서 보였듯이 누구 혼자만의 책임은 아니다. 최초에 출연진이 적극 만류했고 제작진은 이를 숙의 끝에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최종 결정은 책임 연출자의 몫이니 가장 크게 감당하라는 말도 하고 싶진 않다. 연출자를 경질한다면 그를 전폭으로 신뢰했던 출연진도 자진 사퇴하고, 진정성을 잃어버린 프로그램도 폐지하는 게 낫다.
애초 논란에 고개를 갸웃거린 게 결국 이러한 결과를 염두에 둔 여론몰이라는 의심 때문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아주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나는 가수다'가 던져준 대중문화와 대중예술의 함의는 제대로 놓치지 않았으면 한다. 그게 그나마 이 논란이 가져다 준 선물이 아닐까 한다.
2011.03.24 14:41 | ⓒ 2011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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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제작진과 출연진도 운명을 함께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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