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에서 인권위의 활약은 높이살 만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에 내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사진은 가해자에 대해 엄정 처벌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모습.
광주드림 안현주
하지만 딱 여기까지였다. 인권위는 자신의 권고를 끝까지 관철시키지 못했다. 조사 내용과 권고사항을 보도자료로 '발표'한 것이 전부였다. 도가니 문제를 지금 여기까지 끌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인권위가 아니라 인권단체들의 끈질긴 싸움 그리고 영화 <도가니>의 개봉 덕분이었다.
사실 인권위는 대부분의 사건에서 그랬다. 그동안 인권위는 국가보안법/사형제 폐지 권고, 양심적 병역거부 대체복무제 도입 권고,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 등 우리 사회의 주요 인권의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오긴 했지만, 권고를 관철시키려고 노력했던 경우는 많지 않다. 도가니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충격적인 문제를 이슈화시키지 못한 것은 분명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인권위가 더욱 적극적으로 문제해결에 나서야 했고, 어떻게든 권고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했어야 했다.
인권위는 권고사항이 어떻게 이행되는지 꼼꼼하게 이행하고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인권위에게 부여한 책무다. 인권위는 사무실에 앉아서 고상하게 권고문이나 작성하는 기관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인권 문제를 해결하는 인권옹호기관이다. 인권위는 뒷심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인권위가 할 수 있었는데 '안한 일'도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부족한 예산과 인력... 영국을 한번 봐
하지만 인권위가 '안한 일'이 많다고 몰아세우기만 하는 것은 야박하다. 영국과 간단히 비교를 해보자. 영국은 경찰은 경찰고충위원회((Independent Police Compliant Committee)라고 하여 경찰민원'만' 처리하는 기관이 따로 있는데, 이 기관의 1년 예산은 700억 원이고, 정규직원 390명에 조사관만 146명이다.
한국에서 경찰 관련 민원은 국민권익위원회와 인권위서 받는데, 이 두 기관의 경찰 인권침해 담당 조사관의 총원은 10명이 채 안되고, (경찰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인권을 처리하는) 인권위의 연간 예산은 200억 원 정도다. 인권위가 안한 일도 있었지만, 인력과 예산의 부족으로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일도 있었다는 얘기다.
인권위가 도가니 사건 때처럼 양질의 조사와 인권구제를 제공하고, 더 나아가 그 이행까지 책임지는 기관이 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인력과 예산이 필요하다. 인권위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이 문제라면, 수평적으로는 각 분야별(군대, 경찰, 구금시설 등)로, 수직적으로는 각 지역별(중앙-광역시/도-시/군/구)로 다양한 인권기구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들 감시기구들의 역할은 때로는 중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얼치기 '행정전문가'들의 눈에는 '비효율'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인권을 침해하는 권력기구를 감시하기 위해서는 감시의 네트워크도 중층적이고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는 아직 중복과 비효율을 말할 처지가 아니다.
아직도 인권위를 찾는 사람이 있기에...
이쯤 해서 지난 2009년 인권위의 기능이 다른 기관과 '중복'된다는 이유로 조직을 21%나 축소했던 비극이 떠오르는 것은 자연스럽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필요한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벌인 일이다. 그리고 안경환 위원장, 상임위원 2명과 자문/전문위원 57명이 줄사퇴하는 사태가 이어졌고, 그 빈 자리는 이른바 '무자격자'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는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 인권의제를 발굴하여 선도하기는커녕, 불법성이 명백한 진정사건만 간신히 처리하고 있다. 인권위가 아니라 행정심판위원회로 전락하고 있고, 이런 식이라면, 국민권익위와 인권위를 통합하자고 해도 할 말이 없다.
2009년 이전의 인권위는 '한 일'이 있어 칭찬받았지만 '안한 일'이 있어 비판받았고, '못한 일'이 있어 아쉬운 기관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안하는 일'은 점점 늘어가고 있으니, '못하는 일'을 논의하는 건 언강생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국민들은 인권위를 찾고 있다.
오늘도 아마 200명쯤 되는 사람들이 인권위의 문을 두드렸을 것이다. 인권위가 미더워서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비빌 언덕이라곤 인권위밖에 없어서 찾아온 사람들이다. 그렇게 인권위를 찾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아직 인권위에 대한 기대를 거둘 수가 없다. 아직은 '인권위 제자리 찾기'를 포기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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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인 뒷심 부족... '도가니'도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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