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8도에 길에서 13시간...'이모'의 하루

[길에서 만난 사람 ②] '홍대 앞에서만 10년' 떡볶이 노점상

등록 2012.01.06 10:26수정 2012.01.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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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들을 맞이하는 김씨 부부
손님들을 맞이하는 김씨 부부박주희

"어서 오세요!"
"이모~ 떡볶이 1인분하고 순대 1인분 주세요."
"내장도 줄까? 춥지? 이리 안으로 들어와."

서울 서교동 지하철 홍대입구역 부근, 길 위는 어디론가 향하는 이들로 빼곡하다. 모두가 제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디론가 향하지만 길 한쪽에는 13시간을 서 있는 이가 있다. 같은 자리에서 10년 넘게 노점상을 운영해온 김선자(59, 가명)씨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12월 27일, 김씨의 포장마차를 찾았다.

"크리스마스가 큰 대목이었는데…. (올해는) 오히려 장사가 안 됐어요. 떡볶이 프랜차이즈도 많이 생겼고, 술집에서도 퓨전 떡볶이를 팔다보니까 점점 밀려나고 있어요. 원재료 값도 너무 많이 올랐구요. 구제역 때 오른 돼지 내장 가격이 지금도 떨어지질 않고 있어요. 학생들이 주 고객이다 보니 가격을 많이 올릴 수도 없는 상황이고…. 예전 마진이 50%였다면 지금은 20~30% 밖에 되질 않아요. 재작년부터 올해까지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영하 8도지만 가스난로 끄고 장사해요

 영하 8도의 날씨에도 가스난로는 꺼져 있었다
영하 8도의 날씨에도 가스난로는 꺼져 있었다박주희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지만 김씨는 연신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개인택시를 운영하는 남편도 김씨 옆에서 부지런히 나무 꼬치에 어묵을 끼우고 있었다. 그날따라 평소보다 장사를 늦게 시작했다는 부부는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분주했다.

김씨의 남편이 오후 2시쯤 나와 장사를 준비하고 있으면 김씨가 4시에 나와 새벽까지 장사를 한다. 남편은 일을 나갔다가 다음 날 오전 3시쯤 장사 마무리를 돕기 위해 다시 나온다고. 오후 2시부터 다음 날 오전 3시까지, 총 13시간 동안 장사를 하는 셈이다. 한 차례 손님들이 이야기꽃을 피우다 간 후, 기자는 튀김옷을 입히고 있던 김씨의 옆에 섰다.

살갗이 바람에 베이는 것 같았던 강추위였다. 김씨는 양말을 두 겹씩 신고, 옷도 여러 겹 입어 추위를 견딘다고 했다. 음식을 만드는 김씨의 뒤로 난로 한 대가 보였지만 전원이 꺼져 있었다. 서울의 기온은 영하 8도였다.


"가스비가 비싸서 난로도 맘대로 못 켜요. 난로를 켜면 하루치 가스가 나가거든요. 그래서 옷을 따뜻하게 입고 오죠. 날이 조금 더 추워지면 바람막이를 내리고 그래도 추울 때 난로를 켜지요."

추위를 견디는 나름의 노하우도 있다. 뜨거운 물을 넣어둔 음료수 병을 핫팩으로 쓰는 것이다. 실제로 떡볶이를 넣어둔 철판과 어묵 냄비 사이에 여러 개의 음료수 병이 세워져 있었다. 김씨는 떨고 있던 기자의 주머니 안으로 따뜻한 음료수 핫팩을 넣어주었다. 오래된 단골들이 결혼해서도 김씨를 '이모'라 부르며 찾아오는 이유를 알 수 있을 듯했다.


종갓집 며느리, 맨손으로 시작해 자식 셋 키우기까지

 안쪽에서 바라본 김씨의 노점
안쪽에서 바라본 김씨의 노점박주희

김씨 부부는 맨손으로 경상도에서 올라와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남편은 택시 운전을 했고 김씨는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노점상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따로 쉬는 날이 없었다. 종갓집 며느리인 김씨는 집안의 길흉사가 있을 때만 장사를 쉬었다고. 1년에 제사만 10번, 집안 행사를 치르고 자식 셋을 키우느라 보낸 세월들이 그녀의 주름 위에 새겨져 있는 듯했다.

추운 날씨에도 오랜 시간 서서 일하다 보니 김씨에겐 부인병이 찾아왔다. 수술까지 받게 되면서 보름 동안 가게를 쉬어야 했다. 남편도 갑자기 쓰러진 뒤로 건강이 좋지 못해 오래 일을 하긴 힘들다고 한다. 몸이 아파 그만두고 싶을 때가 많았지만 아이들이 있어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엄마는 아이들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일은 고되지만 아이들 키우는 건 힘들지 않았어요. 큰애가 동생들 밥도 차려 먹였고 속도 썩이지 않았으니까요. 자식 크는 거 보는 즐거움이 컸죠. 아이들 얼굴 볼 시간이 없으니 일요일에는 꼭 가족들끼리 모여서 밥을 먹었죠. 노점 하면서 자식 셋을 다 키웠고 딸 둘은 결혼까지 시켰어요."

자녀들은 어느덧 30대 중후반의 사회인이 되었다. 장성한 자녀들이 있음에도 고된 일을 계속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식들도 일을 그만두라고 하죠.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놀 순 없잖아요.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게 즐거워서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제가 동안인 이유도 학생들이랑 자주 만나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차디찬 길 위에서 뜨끈한 마음을 나누는 '이모'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들. 김 씨는 주인 없는 우산들을 우산이 없는 손님들에게 나눠준다.
손님들이 두고 간 우산들. 김 씨는 주인 없는 우산들을 우산이 없는 손님들에게 나눠준다.박주희

김씨에게 마차는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었던 귀중한 재산이자 기쁨이다. 하지만 2009년 12월, 마차를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됐다. 마포구에서 노점상 철거를 시작한 것이다. 길 위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노점상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노점상인들에게 도로 사용료를 받아오던 마포구가 디자인 거리를 만들겠다고 한 뒤로는 돈을 안 받았어요. 그 뒤로 철거 위협이 시작됐죠. 우리 마차는 괜찮았지만 신촌 일대랑 공덕동은 난리였죠. 한 사람은 노점상을 깔끔하게 바꾸면 나을까 싶어서 180만 원 들여서 풍물 그림까지 그려 넣어 마차를 재포장했는데도 소용없었대요. 포크레인 4대가 마차 뒤를 덮치는 바람에 40대의 마차가 파손됐어요. 그마저도 다 수거해가서 장사하기가 힘들어졌죠."

서부지역노점상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씨는 주변 상인들과 함께 대응했지만 용역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다쳤고 파손된 마차도 수거해가는 통에 힘들었다고. 다행히도 구청과 원만한 해결을 본 덕에 올해는 철거 걱정 없이 장사를 하고 있다.

"철거 걱정은 덜었지만 손님도 줄고 장사도 잘 안 돼서 걱정이에요. 그래도 없는 살림에도 조금이라도 나눠먹고 살 수 있으니 다행이죠. 내년에는 경기가 풀려서 물가도 안정되고 우리 국민들 다 웃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식구들도 건강했으면 좋겠고요."

김씨의 노점상은 오늘도 길 위를 지킨다. 그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 위의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푸근한 마음을 나눠줄 것이다. 마차의 지붕 밑에 끼워져 있는 우산들을 우산 없는 손님들에게 나눠줄 것이다. 오랫동안 차디찬 길 위에서 뜨끈한 마음을 나눠준 '이모'의 노점상이 2012년에는 더욱 붐비기를 바란다. 따뜻한 음료수 핫팩을 넣어주던 이모의 웃음이 길 위의 모든 이들에게 번져간다면 더 좋겠다.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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