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생들이 올해 가장 듣고 싶은 뉴스가 '반값등록금 실현'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로또 1등 당첨'조차도 반값등록금을 제치지 못할 정도로 반값등록금에 대한 대학생들의 열망은 여전히 뜨거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1년 여름 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반값등록금 문제. 하지만 모두의 염원과 열기에 비해 현재까지 거둔 결과만 놓고 보면 아쉬움을 감추기 어렵다. 반값등록금이 가장 뜨거운 이슈였던 지난해, 거리의 열기에 이어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서도 반값등록금 운동에 앞장섰던 한대련(한국대학생연합) 계열의 후보들이 많이 당선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결과는 입후보한 선본의 1/3만이 당선되었을 뿐이다.
나는 등록금 운동이 거리에서 한창 시작되던 지난해 6월 '등록금넷'에 합류했다. 그리고 2011년 하반기 동안 등록금넷 간사로 활동하며 거리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반값등록금을 외쳤다. 사실 등록금 운동은 세간의 주목을 받기 훨씬 전부터 치열하게 문제제기를 해왔던 시민사회 노력의 결과였다. 지난해 거리를 가득 메웠던 여름의 촛불은 시민사회가 꾸준히 진행해 왔던 그 일련의 노력들이 광장의 시민들에게 공감을 얻으며 폭발적 에너지를 발산한 것이었다.
실제로 그간 시민사회는 정부에 '고등교육비에 대한 OECD 가입국 평균 정부부담률'인 GDP 대비 1% 확충을 요구하며, 5조 원 이상의 고등교육 예산 확대를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당장 5조 원의 예산확보가 어렵다면 최소한 약 3조 원 가량을 우선 투입해 학생들이 등록금 인하를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그 형태는 반값등록금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든지 폐지할 수 있는 '장학금'이 아닌 매년 안정적으로 예산을 충원할 수 있는 '교부금'을 통해서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언론이 여야의 2012년 새해예산안 합의 결과를 보도하며 대학등록금 관련 예산이 확대됐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학금' 예산인 1조7500억 원에 대해 "예산이 늘어났다"고 한마디로 평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현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앞선 시민사회의 요구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장학금' 예산이며 더불어 그 대상자 또한 'C학점 이상'으로 신청제한을 둬 모든 학생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없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는 국민들이 그동안 거리에서 외친 '조건없는 반값 등록금 실현'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지난해 5월 기자간담회에서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등록금을 최소한 반값으로 했으면 한다"고 발언한 이후 여론은 반값등록금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어 광화문 광장에 모여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이었던 반값등록금을 실현하라는 구호를 외치던 100여 명의 학생들이 경찰에 의해 강제로 연행되던 날부터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제2의 촛불'로 주목할 만큼 그 규모는 날이 갈수록 커졌다. 지난해 6월 10일에 있었던 집회 참가자는 약 5만 명에 달했고 이런 움직임을 감지한 한나라당은 약 열흘 후인 6월 23일 '2012년 15%를 시작으로 2014년까지 대학 등록금을 30%까지 인하하겠다'는 내용의 등록금 인하안을 여론에 떠밀리듯 발표했다.
하지만, 각 대학의 기말고사와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대학생들이 주축을 이루었던 집회 참가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여론조사는 아직도 반값등록금에 찬성하는 의견이 압도적이었으나 광장에 모이는 사람은 적어졌고 점점 언론의 관심도 줄어들었다. 또 뒤이어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 다른 이슈가 등장하며 반값등록금 실현 요구는 더욱 주춤하게 됐다.
2학기가 되었지만 한 번 기세가 꺾인 반값등록금 이슈는 이제 사람들에게 광장에서 논의할 만큼 '핫'한 주제가 아니었다. 시민단체들이 여러 경로와 방법을 통해 2학기 다시 한 번 관심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1년 하반기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반값등록금에 대한 찬성여론이 반대를 압도했던 만큼 당시 상반기에 준하는 역동적인 참여가 있었다면 당장 반값등록금이 실현되지는 못하더라도 그에 준하는 예산을 올해 고등교육예산으로 확보할 수 있었겠지만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반값 등록금 실현'을 향한 열기가 주춤해지자 한나라당의 정책안도 점차 후퇴하기 시작했다.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인 지난해 9월 8일 정부는 당정협의를 통해 2012년 대학등록금 관련 예산으로 1조 5000억을 발표했다. 잠잠해진 여론을 틈타 한나라당은 3개월 만에 자신들이 주장했던 15% 인하에서 슬그머니 5% 인하로 말을 바꾼 것이다. 올해 마련된 국가장학금 예산은 지난해 9월 정부가 발표했던 1조 5000억 원의 당정협의안 보다는 2500억 증액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같은해 11월 열린 국회 교과위 의결안인 1조 9000억 원보다는 1500억 원 삭감된 예산이기도 하다. 야당의 노력이 없었다면 2500억 원의 증액 또한 없었을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말바꾸기' 맞서 이기려면... 대학생들 다시 힘 모아야
물론 이번 국가장학금 예산은 "내가 공약을 한 적이 없다", "등록금이 아니라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하겠다는 말이었다"와 같은 변명으로 일관하던 대통령과 여당이 대학등록금의 심각성을 어느 정도 인식했다는 결과물로서 도입 취지에 대해 일부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1조7500억의 예산으로 기대할 수 있는 평균 5% 정도의 등록금 인하율은 한 해 1000만 원 가까운 살인적인 등록금을 부담하고 있는 대학생과 그 부모들이 체감하기에는 너무나도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더불어 시민단체가 요구해온 교부금 형태의 예산이 아니라 언제든 수정할 수 있는 '장학금' 형태의 예산이 반값등록금 여론이 잠잠해진 뒤 축소되거나 사라지고, 등록금도 슬그머니 다시 오르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부가 그럴 일 없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앞서 보았던 예에 있다. 등록금 15% 인하를 여론에 떠밀려 발표했던 한나라당이 3개월 만에 5% 인하로 당정합의를 마친 선례를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반값등록금 집회가 한창이던 때, 친구가 내 기사에 댓글로 대학 수업시간 중 있었던 일화를 소개해줬다. 나는 아직도 그 댓글이 기억에 남는다.
반값등록금 시위가 한창이던 2011년 6월 초, 광장에 나가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자신의 학업과 기말고사 공부 등으로 무심하던 학생들도 많던 수업에서, 한 사회학과 교수님의 이야기.
교수: "(수업 중 갑자기) 여러분, 팀플할 때 제일 싫은 사람이 누구예요?"
학생들: "(여러 말이 오간 뒤) 무임승차 하는 사람이요."
교수: "그래요? 그럼 여러분, 반값등록금 실현되면 무임승차로 혜택 본 등록금 반납하세요."
학생들: (일동 숙연)
탁월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등록금운동마저도 매몰차게 수혜자 부담 원칙을 강조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 해, 반값등록금이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는 이슈 중 하나였음에도 왜 끝을 보지 못했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반값등록금은 누가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정치인? 공무원? 아니다. 바로 이해당사자인 학생들이 먼저 나서야만 반값등록금이 될 수 있다.
'연대'라는 것도 당사자가 발 벗고 나설 때 가능한 일이다. 저절로 스스로 만들어지는 결실은 없다. 우리 사회의 많은 대학생은 대학 서열화가 없는 프랑스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프랑스 대학의 서열화 폐지와 국유화는 고교생과 대학생이 앞장선 '68혁명'의 결과물이다. 우린 이 '역사적 진실'에서 배워야 한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대학생이 다시 모여 진지하게 토론하고, 꾸준히 실천해야만 반값등록금 실현으로 가는 문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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