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연이은 학생들의 죽음, 어른들의 책임이다

등록 2012.04.19 10:33수정 2012.04.19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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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 '카이스트학생 자살', '영주중학생 유서'가 나란히 웹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아래 '김구라 방송 하차'가 함께 인기몰이를 하고 있단다. 인문계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나에게 학생들의 자살 소식은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그리고 어제 또 한명의 중학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을 했다고 한다. 주요 언론에서는 학교폭력예방대책이 발표되고 난 이후 또다시 학생 자살 사건이 일어난다고 떠들며 정부와 해당부처의 학교폭력 대책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기사를 싣고 있다. 한 주쯤 지나고 나면 여기저기 뉴스에서 다시 한 번 학교폭력의 실태를 다루는 시사프로그램들이 방영될 테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그에 대꾸하듯이 고심 끝에(?) 마련된 대책을 쏟아낼 것이다. 정말 우스운 일들의 반복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 사회의 미래라 불려지던 청소년들은 끊임없이 사지로 몰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말 것이다.

오전 8시 등교, 아침 방과후학교 수업 1시간, 오전 정규수업 4시간, 오후 정규수업 3시간, 오후 방과후학교 수업 1시간, 야간자율학습 3시간.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면 아이들에게 쉬는 시간은 없다. 교내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은 모두 '윤리, 국어, 작문, 독서, 문학, 한국사, 한국근현대사, 동아시아사, 수학, 미분과 적분, 기하와 벡터, 물리, 화학, 생물.' 머리를 쥐어짜고 반복해 암기해야 하는 이론적 지식들뿐이다. 학교 현장에서 끊임없이 체험학습, 실험 실습 수업을 강조하지만 결국 모든 활동들은 목전에 있는 수학능력시험과 대학교 입학을 위한 맹목적 활동에 불과하다.

주5일근무제가 전국 학교에도 공통으로 실시되고 있지만, 해당 제도가 무색하게 토요방과후학교제도가 여러 이유에서 생겨나고 아이들은 여지없이 토요일,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의 경우는 일요일도 학교에 등교하고 있다. 늘 지쳐있고 틈만 나면 엎드려 자기를 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올 뿐이다.

학생들은 거기에다 부모와 교사와 학교와 사회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좋은 대학교가 좋은 직장을 보장하고 좋은 직장은 안정적 보수를, 그리고 결국 행복한 미래를 가져다 준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어른들이 내던지는 그 크고 무거운 삶의 무게를 과감히 떨쳐버릴 용기가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주어진 대로 따르고 순응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

또 하나, 힘들고 버거운 일상을 버텨내는 것만도 용한데 주변인들은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더 열심히 노력할 것을 재촉한다. 때로는 으름장을 놓고 때로는 달래기도 한다. 그러는 사이 학생들은 학업과 성적을 지상최고의 가치로 배우고 있으며, 지치고 힘든 심신을 달래기 위해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서슴없이 자행한다. 윤리의식, 도덕의식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이다. 아니, 머릿속에 이론적 지식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널 때, 초록불이 바뀌는 것을 보고 좌우를 살펴 안전하게 건너야 한다는 것을 책에서 배우고 어른들에게 배운다. 하지만 4차선쯤 되는 한적한 도로에서 초록불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행동은 이미 어리석고 무모한 짓이라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책에 나오는 내용은 시험을 풀기 위해 머리로 익혀야 하는 것이고,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은 책 내용과는 달리 사회성,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시 익혀야 이중 삼중의 과제로 던져질 뿐이다.


가치관이 무엇인지, 내 삶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학생들은 고민할 여가가 없다. 폭력이 왜 나쁜 것인지, 성적은 왜 올려야만 하는지 진정성을 가지고 생각해 볼 수 없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학교 현장의 붕괴 임계점. 이미 넘은 지 오래다. 새어나오는 물을 호미로 막고, 이쪽이 터지면 가래로 막고, 저수지가 터지면 시멘트로 덧칠하고...

한 일 주일, 아니면 한 달, 길면 반 년... 지나고 나면 잊혀질 게다. 분명하다. 대선 시기가 다가오면 세상은 엉뚱하게도 희망과 설렘으로 가득찰 테고, 여기저기서 탄성과 눈물로 범벅된 채로 시끄러울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두 세상이 만든 피해자들이다. 교사가, 부모가, 친구가, 사회가 모두 시퍼런 칼날을 들고 덤벼드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존재 이유도 한 번 확인하지 못한 채 주검으로 변하고 있다.

돈, 명예, 지위, 안정적 미래를 담보로 학생들의 현실을 더이상 할퀴지 말아야 한다. 제발 두 눈을 크게 뜨고 아이들의 마음을, 아이들의 삶을 주시해야 한다. 우리 기성세대가 스마트폰, 태블릿PC 같은 세상이 버거운 것처럼, 아이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많은 폭력과 경쟁을 요구하는 세상이 두렵운 것이다. 세상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도록, 옆에 함께 자리한 친구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교육 #학교 #자살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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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현 경북경육청 소속 중등 국어교사 평소 시사적인 사안에 관심이 많으며, 개인적인 고민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또 학교현장에서 느끼는 감회와 앞으로의 비전, 기대 등을 소개하여 공교육의 미래상을 함께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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