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 갇힌 사람들...지금 무엇을 불태우고 있나

[주장] 자주파에 대한 현대판 마녀사냥은 멈추어야 한다

등록 2012.06.05 15:29수정 2012.06.0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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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경선부정 파문으로 사퇴압박을 받고 있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을 비롯해서 당원비대위원장인 오병윤 의원과 김선동 의원, 김미희, 이상규 의원 등 구 통합진보당 당권파 의원들이 모여 간담회를 갖고 있다. ⓒ 권우성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잘못을 바라보며 '얼마나 잘못한 것인가' 내지 '잘못의 원인은 무엇인가'를 인지하는 관점들은 다양하다. 대부분 이런 경우 특정한 주장이 정답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잘못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은 대부분 각자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생각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다양한 주장들에 대해서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60여 년을 넘게 분단되어온 한반도의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들도 다양하기 때문에 북한을 두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저마다 다 다르고 다양하다. 누구는 북한을 '삼대세습에 인민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악의 집단'으로 바라보고 있고, 누구는 '북한의 잘못을 비판하되 대화의 채널을 열고 평화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바라보고 있고, 누구는 '우리의 잘못도 있으므로 북한의 잘못에 대해서 되도록 언급하지 않겠다'라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북에 대해서 만큼은 관점을 획일화시키는 세상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과거에 비해 발전하여 여러 가지 주장의 존재와 자유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꽤 발전한 편이다. 민주정부 10년이 끝나고 권력을 잡은 이명박 정권이 벌이는 문명의 역주행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지만 이미 사회의 여러 조직과 집단 그리고 가정에까지 체화되어가고 있는 이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영화 같은 문화예술에서의 다양하고 자유로운 표현들, 학교에서도 터져나오고 있는 복장과 두발의 자유, 서기호·이정렬 판사의 사례와 같은 자유로운 SNS 의견 개진, 포털 사이트에 쏟아져 나오는 네티즌들의 다양한 의견들. 이제는 어느 정권의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강요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사물과 사건을 보고 생각하는 주체들이 일방적 주장의 강제나 주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보고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 대한민국은 북에 대해서 만큼은 잘못의 정도와 원인에 대한 관점을 획일화시키는 세상인 것 같다. 북쪽이 잘못되었고 남쪽이 잘되었다 내지 북쪽이 잘되었고 남쪽이 잘못되었다의 문제는 아니다. 자유주의나 민주주의 그리고 경제성장에 있어서 분명 남이 북보다는 훨씬 향상되었고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삼대세습을 제외하고 과연 북한의 문제가 과연 북한만이 원인제공자였을까는 곰곰히 생각을 해봐야하는 대목이다.

어떤 권력도 국민을 굶기고 싶은 권력은 없다. 민주주의이든 전체주의이든 봉건주의이든 권력도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불안해지고 불편해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현재 북의 경제적 궁핍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제일 큰 원인이다. 핵무기 개발도 마찬가지이다. 북한이라는 나라도 그것이 좋은 것이든 또는 나쁜 것이든 그 나름대로의 국가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며 국가로서의 자존심이 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도 결국은 서로 다른 국가정체성을 가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위협에 대한 자기방어기제이다.


상대가 존재하고 서로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을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개선과 반성의 요구는 월권적 강요이며 항복종용과 마찬가지이다. 대화의 첫 번째 조건은 상대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상종하지 않고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외면하고 살아갈 상대가 아니라면 갈등의 결과에서 나오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 우선하여 갈등이 생긴 본질적인 원인을 찾아서 대화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원인을 찾으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거기서 대화와 타협은 시작된다.

비판의 본질은 주체가 서 있는 포지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


김정은 북한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 연합뉴스


이른바 '자주파'의 북한에 대한 생각이, 북한이 말하는 주체사상과 수학적으로 필요충분조건인가? 자주파의 생각이 과연 '혁명적 수령관'이나 '사회정치적 생명체론' 등을 동시에 내세워 수령과 인민대중의 관계를 사실상의 주종관계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를 하고 있는가?

하나의 가정을 해보고 싶다. 가정에서 아빠와 엄마 사이에 심각한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실제로는 부부 둘 다 문제가 있는 집안인데 이 집의 자식들은 아빠에게 "아빠! 이제 그만하세요. 엄마와 대화로서 푸시고 아빠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세요"라고 말하자, 아빠는 자식들에게 "이런! 밖에서 피땀 흘려 돈 벌어서 키워놨더니 전부 엄마 편이야"라고 말한다. 자식들은 다시 엄마에게 "엄마! 이제 그만하세요. 아빠와 대화로서 푸시고 엄마의 문제점을 고쳐나가세요"라고 말하자 엄마는 자식들에게 "이런! 10개월을 배 아파가며 낳았고 내 모든 것을 희생해가며 키워놨더니 전부 아빠 편이야"라고 말한다.

위의 예는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이 말한 '동굴의 우상'에 속한다. 사람이 격한 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 그 감정은 사람의 생각에 동굴을 하나 만들고 감정이 만든 동굴 안에서 세상의 사물을 보는 우상에 빠지게 된다. 좁은 동굴 안에서 동굴에 비친 왜곡된 이미지나 동굴 구멍으로 본 일부만을 참이라고 생각하고 그 외 나머지는 거짓으로 생각한다. 위에 나온 가정에서 아빠나 엄마도 모두 부부싸움이라는 격한 갈등의 감정이 동굴을 만들었고 그 동굴을 벗어나는 생각들은 모두 상대의 편이라는 좁디좁은 우상에 빠져버린 것이다.

남과 북은 오랜 세월 한국전쟁과 숱한 국지전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엄마와 아빠 같은 관계이다. 북도 남에 대해서 동굴의 우상으로 바라보고 있고 남도 북에 대해서 동굴의 우상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주파의 주장은 서로 갇혀 있는 동굴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이다. 그들도 물어보면 '북한은 문제가 있는 나라이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남이 갇혀 있는 동굴에서 바라본 북에 대한 우상에서 나오는 비판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비판의 내용은 비슷할지라도 비판의 본질은 비판하는 주체가 서 있는 포지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이며 여기에 소속되어 있지만 상대와 대화를 할 때만큼은 남쪽이라는 포지션에 갇혀서는 대화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라는 교훈이다.

또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북한보다 정치경제적으로 우월한 체제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자주파의 주장에 대해 존재의 자유는 인정해주어야 한다. 북에 대한 우상도 존재의 자유가 있는데 더더군다나 '주사파'라고 불리우는 자주파에 대한 마녀사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므로 민주진보진영 내에서 만큼이라도 이런 마녀사냥은 멈추어줬으면 한다.

심판은 반칙을 지적할 뿐 반칙을 비난하지 않는다

스포츠 경기를 하다보면 상대의 반칙은 더 크게 보이고 우리의 반칙은 더 작아 보인다. 이것도 내가 속한 진영이라는 소속감이 만드는 동굴의 우상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은 절대 양팀의 반칙을 냉철하게 지적할 뿐 한 팀의 입장에서 상대의 반칙을 비난하지 않는다. 남북대화에 있어서만큼 북한의 입장에 대한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민주진보진영이라면 적어도 공정한 심판의 입장 정도는 견지했으면 한다.

나도 개인적으로 자주파의 대북관에 대해 동의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주사파라고 이름붙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종북보다 종미가 더 큰 문제"라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말에 백 퍼센트 동의하진 않지만 그의 말을 도외시하는 순간 그만큼 우리도 백범 김구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민주정부 10년간 이루어놓은 남북 평화는 한반도 정세 안정과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잃지 말아야할 소중한 자산이다. 구 통합진보당 당권파라고 불리는 경기동부연합을 비롯한 소수의 자주파들이 벌인 당내 패권주의와 반칙은 척결되어야 하겠지만, 통합진보당 내의 갈등에서 터져나온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해 우리 스스로 민주정부 10년의 자산을 불태우는 우는 범하지 말았으면 한다. 자주파의 반칙과 자주파의 철학은 감별진단하자.
#주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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