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려면 하루에도 몇 번씩 분통터지는 순간을 참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치구나 각 시도 혹은 중앙정부에서 지역아동센터로 시달하는 명령을 보면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복지를 하는데도 서열이 있는지, 도대체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밸도 쓸개도 없는 사람들로 생각하는 건지.
서울지역 지역아동센터를 폭염쉼터로?
몇 가지만 예로 들어 보자.
그 첫째 예가 이번 폭염사태로 인해 서울시에서 지역아동센터를 전부 '폭염아동쉼터'로 지정한 일이다. 전국이 연일 불볕더위 속에 숨도 못 쉴 만큼 끓고 있으니 단칸방에서 선풍기 한 대에 의지해서 여름을 나는 저소득층의 고통은 이루 말할 것도 없다. 지역아동센터를 오는 아이들 모두가 간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소금에 절인 배추같이 후줄근한 모습을 하고 온다. 그야말로 안쓰럽기가 그지없다.
그런데 서울시에서는 8월 한 달 서울 전역의 지역아동센터를 폭염쉼터로 지정하여 상시 운영을 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지역에서 폭염으로 고통 받는 아동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무 때나 지역아동센터로 폭염을 피해 올 수 있도록 하고, 그 대신 서울시는 10만원의 전기료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런 안이 얼마나 실효성을 거둘 것인지 여부를 떠나서 현재 폭염의 피해를 생각하면 그 의도의 선함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선한 정책적 의도를 어째서 가장 형편이 어려운 지역아동센터에서 수행해야 하는지 그것이 의문일 뿐이다.
지역아동센터가 폭염쉼터가 되려면 무엇보다 에어컨 시설이 되어있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는 운영비에서 30만 원을 초과하는 비품은 구입 자체가 원천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므로 이런 에어컨의 구입은 전적으로 시설이 형편껏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아동들에게 질 높은 서비스는 제공하고 싶지만, 그 서비스의 기본이 되는 시설이나 냉난방에 대한 투자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니 지역아동센터들 중에는 선풍기로 이 폭염을 나는 열악한 곳들이 없지 않다. 그러면 그런 센터들은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다행히 센터에 에어컨이 있다고 치자. 그 어떤 지역아동센터도 전기세 걱정 없이 에어컨을 틀고 여름을 나는 강심장을 가진 곳은 없다. 따라서 8월 한 달 에어컨을 가동했을 때 과연 10만 원의 지원금을 받으면 충분히 전기세를 감당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렇다고 설마 센터 아이들끼리만 있을 때에는 에어컨을 켰다 껐다 하다가, 폭염쉼터를 찾아 지역의 아이들이 왔다고 에어컨을 내내 틀라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본다.
없는 지원금에 지역아동센터를 찾는 아이들을 위해서 에어컨을 켰다 선풍기를 돌렸다 알뜰살뜰 머리 아프게 노력을 해야 하는데, 동네 아이들까지 다 받아가며 폭염쉼터를 하라고 하면서 10만 원만 주면 되겠지 하는 발상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하다. 동네 아이들하고 센터 아이들하고 모두 모아놓고 그냥 에어컨만 틀어주면 폭염쉼터가 될 것이라고 탁상공론을 지어낸 담당자가 누구란 말인가?
여기에 한 가지 더 웃지 못 할 일을 덧붙이고자 한다. 서울시를 비롯한 전국의 지역아동센터들은 개소 후 평가를 거치고 24개월의 시점이 지나야 운영비를 받을 수 있다. 그 전에는 땡전 한 푼도 운영비를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운영비도 없는 센터에 10만 원만 달랑 내려주고 8월 한 달 동안 폭염쉼터를 운영하라니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폭염쉼터를 일요일이고 공휴일이고 상시 운영하라니. 심지어 한 자치구는 캠프를 가더라도 폭염쉼터인 센터는 열어두라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다. 아니 뭐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평균 한 5-6명씩 되는 줄 착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겨우 2-3명이 일하는 지역아동센터에 어째서 남들 다 쉬는 날 '너희들은 나와서 지역의 아이들을 돌보라'는 말을 그리 쉽게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아무리 시설의 명칭이 지역아동센터라고 해도 이건 너무한 일이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만 휴일에 나와야 하나
그렇다고 휴일에 나오는 종사자들 인건비도 책정되어 있지 않다. 휴일에 나와 근무하면 휴일 근무수당을 줄 수 있나, 주중 대체 인력이 있어 휴일 근무 대신 쉬게 할 수 있나. 안 그래도 방학 중이라 지역아동센터들은 오전부터 저녁까지 내내 아이들과 씨름하며 수당도 없는 캠프에 나들이에 불볕더위에 북새통 같은 방학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도 고맙고 애쓴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소리가 어찌 그리 쉽게 나오는지 답답할 뿐이다. 지역아동센터만 남들 안 받는 보조금 받고 일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참으로 기본 예의조차 없는 일이다.
주5일제만 해도 그렇다. 지역아동센터 교사들보다 훨씬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학교 교사들은 토요일마다 쉬지만 지역아동센터들은 반강제로 토요 운영을 하고 있다. 혹시라도 저소득층 방임 아동들이 배회하면 안될까 싶어 월 40만 원을 받고 한 달에 네 차례씩 토요일마다 오전부터 오후까지 꼬박꼬박 문을 열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오전 9시부터 시작하는 토요학교는 가지도 않고 결국 느즈막히 일어나 밥도 안 먹고 지역아동센터를 온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해야 할지 참 앞이 막막할 뿐이다. 그렇게 지역아동센터 토요 운영을 하라고 엄포는 놓고 또 토요 급식비는 주네 안 주네 말들이 많다. 대한민국은 주5일제를 실시하고 있는데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급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덧붙이겠다. 지역아동센터의 급식사업은 지역아동센터가 원해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국가가 더 좋은 정책 방향으로 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안을 내놓길 바란다. 그런데 설이나 추석 등과 같이 전국민이 다 쉬는 명절이나 공휴일이 되면 지역아동센터는 어김없이 '휴일이나 명절 중 결식아동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공문을 지자체로부터 받게 된다.
일부 센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센터들이 식료품 제공 등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지자체는 서슴없이 필요한 경우 명절에도 센터를 열고 급식을 실시하라고 지침을 내린다. 과연 지역아동센터만이 대한민국 결식아동의 급식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일까?
다시 폭염쉼터 문제로 돌아가서, 그렇게 지역아동들의 폭염이 걱정된다면 그냥 학교마다 교실 개방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곳은 지역아동센터보다 훨씬 훌륭한 냉방시설이 되어 있는 곳이고, 정말 쪼잔하게 난방비 10만 원을 더 주네 마네를 가지고 따지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들이 우굴거리는 지역아동센터의 좁은 공간보다는 훨씬 더 훌륭한 쉼터가 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사단법인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위원장입니다.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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