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물머리의 '노들 텃밭'
솔밧
희한하게도 두물머리의 먹을거리는 모두 맛있다. 모든 반찬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나씩 다 얹었다. 심지어 두 가지 맛의 죽을 반드시, 꼭, 먹어야 한다며 짬짜면의 위용을 능가하는 호닭죽도 만들어 낸다. 뒤에 있던 아주머니가 말한다. "아유, 호텔 조식보다 좋다." 하하하. 다른 사람들은 단식투쟁하는데 우리는 밥투쟁 한다. 농사짓자고 투쟁하는 사람들이니, 그저 좋은 음식 맛있게 배부르게 잘 먹고, 그 고마움을 새기고 또 새긴다.
아침의 강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밥숟갈이 입에 들어간다.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음식이 내 몸을 지나, 강물이 흐르는 속도로 다시 내 몸을 나서 본래 왔던 곳으로 돌아가겠지. 그러니 '나는 두물머리입니다'라는 밭전위원들의 고백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두물머리를 알게 되어서, 여기에 올 수 있었던 몸과 시간 덕분에, 활짝 열린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초대해 웃고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렇게 좋은 걸 배웠다.
낮에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우리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다' 정신을 실천한다. 안내표지를 꾸미고 청소를 하고 풀을 벤다. 내일 당장 중장비가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법도 한데, 다들 너무나 즐겁게 지금 우리가 있는 공간을 가꾸고 있다. 이렇게 날마다 정리하고 가다듬어진 두물머리는 지금 작은 생태 캠프장 같다. 날마다 지나다녀 외울 것도 없는 단조로운 길이지만, 하루를 더 지낼수록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오두막 주변에 염소들이 있는 풍경이랄지, 눈부신 연둣빛 미로를 지나면 나오는 생태화장실, 일일이 손으로 그리고 쓴 이런저런 팻말과 표지판들.
우리는 작고 힘 없지만 아마도 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이렇게 하루하루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을 뿐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강하다. 세상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바꾸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밖에 살 수 없고, 적어도 내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이렇게 온몸으로 고민한다면, 이렇게 틔운 싹이라면, 언제 어디에서도 분명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피워낸 꽃은 비에도 바람에도 지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겠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내일 두물머리에 중장비가 들어와 땅을 헤집고 이 땅에 뿌리 내린 사람들을 뽑아 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지지 않는다.
두물머리의 재녹지화를 위해 다시 모이고, 4대강 사업 복원 본부를 만들고, 언제 어디서라도 땅과 생명과 사람을 생각하며 씨앗을 뿌릴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지지 않는다. 내일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르는데 정성들여 사과나무를 심는 두물머리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스피노자는 지구가 멸망해도 지지 않을 엄청 쎈 사람이었구나.'
투쟁도 농사도 웃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