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시인과 한숭동 시민기자문화원장실 초상화앞에서 기념촬영(2012.7.2)
한숭동
나태주 시인은 평생 동안 잘했다고 여겨지는 일로 네 가지를 꼽는다고 한다. 첫째가 초등학교 선생님을 한 일이고, 둘째가 쉬지 않고 시를 쓴 일이고, 셋째가 한 번도 시골을 떠나지 않고 산 일이고, 넷째가 아직도 자동차를 갖지 않고 사는 일이라고 했다.
"서울 같은 데는 올라와 살 생각 말 것 / 이것은 신춘문예 당선 인사 차 / 원효로 좁은 골목길 돌아서갔을 때 / 박목월 선생이 들려준 잔소리" <시인들 나라·3>시골은 교직과 시를 병행하면서 살아가기에 그럴 수 없이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마당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자가용차 없이 사는 게 자연과 보다 친할 수 있는 많은 계기들을 제공해준다고 믿고 있다.
시인에게 있어 교직은 그의 삶을 탱글탱글하게 만들어주는 터전이었고, 시는 그가 살아가는 의미를 제공해준 정신적 샘물이었다.
나태주 시인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2007년 교장 퇴임을 앞두고 췌장염으로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며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다.
시인은 "결핍은 궁핍과 달리 절대 빈곤이 아니다"며 "달라이라마 행복론의 핵심은 탐욕의 반대가 비우는 무욕(無慾)이 아니라 만족" 임을 일러준다.
"저녁 때 /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 힘들 때 /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 있다는 것 / 외로울 때 /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외연(外延) 보다는 내포(內包)가 깊은 시인은 오늘도 '일상성의 소중함'을 무자위처럼 토로한다. 낮은 곳의 물을 위로 올리는 농기구같이 말이다.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김용택 시인'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용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지난 3일 대전의 한 초등학교를 찾았다.
시인은 청바지 차림에 해맑은 웃음과 장난기 어린 눈망울을 간직한 둥글둥글한 얼굴이다.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여전히 소년티가 남아 있다.
시인은 첫마디를 유머로 열었다. "순창에서 가장 유명한 게 뭐죠" 고추장이라는 대답에 "그러면 임실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치즈가 아니라 바로 저 김용택입니다." 일순간 모두가 큰 웃음을 터트렸다.
시인은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덕치초등학교에서만 30여 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제자의 자녀를 다시 가르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또한 많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딱 엄마 아빠만큼만 공부했다는 것은 그중 하나다. 시인의 어머니는 한글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런 말을 이어갔다.
"농사짓는 사람은 평생을 일하며 공부하죠. 경험에서 비롯된 학습이기 때문에 이렇게 배운 지식은 틀림없어요. '참나무 잎이 뒤집히면 3일 뒤에 비가 내린다' '꾀꼬리가 울 때 참깨를 갈고 보리타작을 할 때 토란을 심는다'는 말이 있는데, 관찰해보면 정말 그 시기가 딱 맞아떨어지죠. 그들은 과학자이며 철학자 그리고 예술인이었습니다."퇴직을 앞두고 2008년 2월, '엄마야 강변살자 - 섬진강 아이들 1년간의 기록'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아이들보다 더 천진한 시인의 모습이 방송되기도 했다. 조용히 흐르는 섬진강의 사계가 아이들의 글과 그림 속에 펼쳐졌다.
시,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