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희 강연, 여성으로서 시를 쓴다는 것은문정희 씨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헤이리 커뮤니티 하우스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원유빈
마지막은 헤이리 문학 행사에서 만난 문정희 시인이다. 문정희 시인은 다소 거친 표현을 많이 쓰는 '친고모'의 느낌이었다. 자유분방하고 개성 넘치는 헤어스타일도 가지고 있었다. 외모와 어울리게 그녀는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여류 시인이다. 나는 그녀를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시를 통해 만났다. 입시 때 문학 문제집에서 읽었던 그녀의 시는 정치나 경제 등 사회 중심에 서지 못하는 여성들에 대한 애환을 담은 노래였다. 대학 시절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녀들이 결혼 이후 집에서 살림만 한다는 페미니즘적 시각이 담긴 시다.
그녀는 글을 쓰겠다는 여성들에게 남의 평가에 기대지 말라고 충고한다.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는 사람도 많지만 이것이 자신의 문학성을 의심하는 잣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글을 쓰고 싶은 그 열망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시인이 됐다고 말한다. 시에는 점수가 없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시가 곧 최고의 시라는 것이다. 시는 유행이 아니며 각자의 마음을 열어주는 예술이다. 거침없이 문학에 대한 희망을 던지는 그녀의 모습에서 젊은 작가들은 희망을 얻는다.
그녀의 자유로운 모습에서 잠시 해방감을 느꼈다. 문학가들은 사회라는 모둠에서 다소 떨어져 걷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맺어 낸 문학적 열매들을 독자에게 기꺼이 내놓는다. 나는 이것이 문학이 가진, 문학가가 우리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20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남겨진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말한다.
"당신을 위로하려는 이 사람이 때때로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단순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의 삶에도 많은 고생과 슬픔이 있으며 당신의 삶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부모도 자식을 키우면서 비로소 부모가 된다. 나는 세상 어른들이 겪었던 모든 풍파가 우리 세대가 겪고 있는 풍파보다 거세지 않았을 것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힘들고 아프다. 다만 아직은 우리에게 더 좋은 세상을 남겨주기 위해 노력하는 어른들이 있기에 세상에 희망은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남긴 몇 마디 말보다 그들의 행동이, 사회적 실천이, 눈빛과 손짓이 우리에게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위로가 바로 나와 내 친구들에게 건네는 '멘토사용설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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