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병'과 '안상수'로 상징되는 분단 오작동의 흔적을 노순택 특유의 예민하고 집요한 감각과 유머러스한 시선으로 담아낸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노순택
오스카 와일드는 "합리성이 결여된 애국은 사악한 자들의 미덕"이라고 했다. 노순택은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우리 사회의 분단체제가 매우 견고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와서 직접 경험하고, 이번의 작업들, 분단이 남긴 잔해들을 수집하다 보니 분단이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작동하더라"고 고백하고 있다.
분단이 남긴 잔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안상수는 노순택에게 "작동하는 동시에 오작동하는 분단정치의 상징적 모델"이었고, 그의 곁에서 보온병 포탄의 규격을 설명해준 예비역 포병 장군 황진하 역시 "일그러진 분단군사주의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노순택에겐 이들만이 '잃어버린 보온병'은 아니었다. 그는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 헤맨 3년의 여정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그 또한 '분단인'이었음을 고백한다. 보온병 사건은 단순한 일회성 해프닝이 아니라 분단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의 내면에서 굳어진 역사와 안보를 팔아 이득을 얻어왔던 남북의 정치가 결합한 결과, 빚어진 한 편의 잔혹한 부조리극이었다.
괴물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도 괴물이 될 수밖에 없노라고 얼마나 스스로를 변명하고 다그쳤던가. 사회주의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민주주의를 유보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저 망할 놈의 괴물 때문에, 우리는 지금은 괴물이 되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우리 자신을 대놓고 괴물이라 부르지는 말자." <본문 236쪽>보온병이 분단정치의 상징적 모델이자 분단의 슬픔을 희화화하는 오브제라면, 분단인은 그런 분단체제 속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며 거울처럼 남과 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놀랄 만큼 닮아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남과 북은 분단이라는 오작동하는 체제 속에서 '그들만의 반공 리그 뒤에 숨어야 하는 남녘 사회'와 '군을 모든 가치 앞에 두겠다는 선군정치의 북녘 사회'의 형태로 놀라울 만큼 서로 닮았다. 노순택에게 "남과 북은 서로 거울로 삼은 채 거대한 부조리 집체극을 벌이는 생활공연집단이며, 이 집체극의 특징은 비극을 희극으로 연출"하는 존재들이다.
이런 우스운 촌극을 멈추게 하고, 이성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하는 언론조차 분단체제와 한통속을 이룬다. 언론마저도 사실은 '보온병'을 '포탄'이라 부른 동조자들이었다.
그 와중에 <조선일보>는 포연이 피어오르는 연평도 사진을 포토숍으로 지나치게 과장해 비난을 샀다. SBS가 '연평도 실시간 위성사진'이라고 공개한 것은 2003년 이라크 침략전쟁 당시의 바그다드 위성사진으로 밝혀졌다. 이 사진을 CNN이 다시 받아쓰는 촌극마저 벌어졌다. 정보가 과도하게 통제될 때, '사실'은 이렇듯 샛길에서 허우적거리는 법이다. <본문24쪽>'보온병'은 단순히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실수로 '포탄'으로 돌변했던 것일까? 아마 어떤 이들은 기억하고, 어떤 이들은 벌써 망각했는지 모르겠으나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우리는 사진 조작과 관련한 중요한 사건 하나를 경험했다.
2012년 12월 17일 <미디어오늘>이 잇따라 보도한 '새누리당, 17일자 선거광고 군중사진 조작 논란', '박근혜 광고 사진 조작, '위법' 논란' 기사를 보면, 새누리당이 지난 2012년 12월 17일 주요 일간지를 통해 내보낸 당시 박근혜 후보 광고에 사용되었던 사진 속 대구 시내 중심가로 보이는 장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군중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 사진 속에 등장하는 군중은 사진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숍의 '도장 툴(같은 이미지를 도장 찍는 여러 번 복제하는)' 기능을 이용해 이른바 '뽀샵(사진변조)' 처리한 사진이었다. 그 때문에 동일 인물이 한 장의 사진 속에서 마치 손오공처럼 분신술을 부려 여러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고 있음이 확인된 바 있다.
광고 사진의 조작 문제를 제기하자 박근혜 후보 측 안형환 대변인은 "사진 설명에 시간과 장소를 명시한 것도 아니므로 허위사실로 볼 수는 없다"며 "광고는 광고로 봐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안형환 대변인은 2010년 11월 24일 연평도에서 안상수 당 대표 옆에 서 있었던 바로 그 안형환이었다. 얼마 전 우리는 북한의 권력 2인자라고 했던 장성택이 체포된 직후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촬영된 사진에서 장성택이 지워졌다는 뉴스를 접했다. 분단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우리 곁에서 계속 오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