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요소를 제거한 순수한 소리, 과연 있을까

음향효과로 만드는 진짜 같은 가짜

등록 2014.05.25 15:42수정 2014.05.25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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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를 객석에 잘 전달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추구하는 것은 장비를 쓰지 않은 듯한 소리다.
소리를 객석에 잘 전달하기 위해선 많은 장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정작 추구하는 것은 장비를 쓰지 않은 듯한 소리다.구종회

서울의 소리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은 처음 방문 한다는 음향 선생이 물었다. "한국의 OO"라는 명칭이라면 막연하게 하회탈이나 판소리, 아리랑, 부채춤, 사물놀이 그런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서울의 소리라면 무엇이 있을까… 막연했다. 선생이 꼽은 서울의 소리는 에어컨 실외기 소리, 도로가 하수도 관의 물소리, 자동차와 클랙슨 소리였다. 뭔가 전통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현실의 소리인데다 딱히 서울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들이었다. 한국에 도착한 첫 날 호텔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그가 느낀 서울의 소리는 그런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보여 주었다. 호텔 창문을 열고 보이는 서울의 풍경과 그것을 구성하는 소리들을.


선생이 녹음한 실제 서울의 소리는 지루했다. 색다른 변화가 없는 조용한 동네의 소리였으니까. 하지만 녹음된 소리들을 섞어 연출한 서울의 소리는 마치 내가 번잡한 도롯가에 서 있는 것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다.

선생은 또 일반 CD에 들어 있는 음악을 가공해 클럽이 없는 동네였지만 클럽이 있는 듯한 마법을 부렸다. 존재하지 않는 클럽이 생겨났고, 창 밖에 보이는 길 건너 클럽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달라지는 음악의 느낌을 연출했다. 실제 소리가 아닌 효과음으로 진짜 서울보다 더 서울 같은 소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효과음을 통해 여름에도 눈이 내리는 동네를 만들 수 있고, 비 내리는 한적한 오후의 분위기를 연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소리에 집중하면 내 주변을 둘러싼 것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형광등에서 나는 전자파의 소리, 멀리서 들리는 자동차들의 소리, 옆 방에서 들리는 TV 소리, 그런 것들이다. 예술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주변의 소음에서도 음악적인 것을 발견할 수 있을 수도 있겠다. 음악과 소리가 나눠지는 부분이다.

정치인은 진실을 덮기 위해 거짓을 사용하고,
예술가는 진실을 말하기 위해 거짓을 사용한다
- 영화 <브이 포 벤데타> 중

음향 일을 하다보니 "일체의 기계적인 요소를 제거한 순수 그대로의 소리"를 요구하는 고객을 만나는 경우가 꽤 있다. 연주를 녹음할 때도 그렇고, 공연장에서 확성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기계적인 도움을 받지 않았다, 날것 그대로다~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일체의 기계적인 요소를 제거한 순수 그대로의 소리'를 요구한 분은 '원래보다 예쁘게' 만드는 작업, '실수를 감춰주는' 작업 등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말했을 것이다. 단점을 단점대로 보이겠다는 의지를 '기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라는 말과 동일시했던 것이 아닐까. 연주자들은 연주 자체로 승부하고 싶어하지, 많은 장비의 도움을 받아야만 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연주도 공연장의 환경에 따라, 녹음실의 상태에 따라 원음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는데도 말이다.


소리를 저장하고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를 사용하는데, 마이크를 사용하는 이상 원래의 소리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마이크마다 소리에 반응하는 특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연주를 바로 앞에서 직접 듣지 않는 이상 원음과는 차이가 있고, 바로 앞에서 직접 듣는다 하더라도 직접음이 들리는 거리가 짧아 대중이 함께 하는 공연장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마이크를 쓰지 않고 반사판을 사용하는 경우도 건축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소리를 전달하는 과정에는 어떤 형태든 기계의 개입이 있기 마련이고, 그 개입이 적극적일수록 원음에 가깝게 된다. 원래의 소리에 최대한 가깝게 만드는 것이 고급 기술이고, 그 기술에는 반드시 기계가 사용된다.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과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현실은 기계를 배제할수록 기계를 사용한 표시가 난다. 반대로, 기계를 사용할수록 기계를 사용한 표시를 없앨 수 있다. 기계 사용의 모순이다. 연주자나 연출자들이 요구하는 '기계를 최대한 절제하는'이라는 말은 '내 소스가 훌륭해서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훌륭하다' 라는 뜻으로 해석되길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소스가 좋아서 기계를 덜 썼다~'라는 말이 기계를 덜 썼기 때문에 나의 소스가 훌륭함을 증명하고 있다~라는 표현에 사용될 일은 아니다. 그러니 "원음에 가깝게" 혹은 "원래보다 더 예쁘게"라는 선택이 있을 수는 있어도 '기계를 배제하고'라는 선택은 어불성설이다.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고, 기계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자신의 것만으로 가식 없이 보이고 싶을수록 기계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는 신기한 세상이다.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사용된 가짜의 정교함을 감상하거나, 가짜에 가려진 진실을 찾아 보려는 노력은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가짜 너머에 있는 진짜를 알아 보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월간 개벽신문에 중복게재 \하는 기사입니다.
#감춰진 진실 #음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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