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현장에서 미스터 봉필리핀에서 20년, 한국에서 20년. 나는 반(half) 한국인이다.
노유리
아무도 없었다창문을 열자 겨울 냄새가 밀려 들어온다. 고향에선 느낄 수 없었던 찬 공기에 코끝이 시리다. 나뭇잎 위에 하얗게 내린 서리가 여전히 낯설다. 일이 없는 토요일이지만 사장님의 잔업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어젯밤 먹다 남은 김치찜으로 아침을 대충 해결한 뒤 문밖으로 나선다. 작업 현장은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다.
'오늘 아침 서울 기온은 영하 8도,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입니다.'라디오 소리를 들으며 버스에서 내린다. 찬바람에 얼어붙은 다리가 더디게 움직인다.
"그렇게 입고 안 추워? 어째 나보다 더 추위를 안 타는 것 같아." 먼저 도착한 동료 임씨가 얇은 점퍼를 가리키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한국에 들어온 첫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반팔이 익숙했던 몸은 이국땅의 낯선 날씨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찬물 샤워는 고문에 가까웠다. 웃풍이 들어오는 고시원에선 이불 10개를 덮고 버텼다. 연탄이 유일한 난방 수단이던 그곳에서 내게 연탄 사용법을 알려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불법 사람'의 빨간 목장갑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용접과 목공 일을 배웠다.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한 지 10년째다. '불법 사람'이지만 불안하진 않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은 암묵적으로 단속하지 않는다. 우리 없이는 공장도 현장도 돌아가지 않으니까.
망치를 든다. 간만의 주말 근무가 졸음을 몰고 온다. 10년 전, 18시간 근무도 버텨냈지만 세월과 나이는 속일 수 없나 보다. 몽롱한 정신에 그만 손가락을 내리찍는다. 빨간 고무가 덧대진 목장갑이 붉게 물든다. 동료 유씨의 시선이 장갑으로 향한다. 괜찮다는 신호를 보낸다. 손톱이야 빠지고 다시 나는 거니까.
지혈하러 휴게실로 간다. 박 사장은 치료비를 줄 테니 병원에 가라고 말한다. 말없이 고개를 젓는다. '불법 사람'은 건강보험 대상자가 아니다. 사장이 구급함을 건네준다. 작년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는 내게 고향에 다녀오라 했다. 그러나 체류 기간이 지난 '불법 사람'은 이동할 자유가 없었다. 고국에 들어간다는 건 한국에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눈물을 삼키며 사장이 빌려준 장례비를 송금했다.
물론 좋은 사장님만 있는 건 아니다. 10년 같이 일한 이 사장은 밀린 임금 1500만 원을 끝내 주지 않았다. 필리핀에서 나를 기다리는 10명의 6개월치 생활비가 한순간에 날아갔다. 고용노동부에 도움을 청했지만 '불법 사람'의 말엔 힘이 없었다. 회사가 파산했다는 이유로 이 사장은 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10년간의 믿음도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