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학년이 된 에야의 일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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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수업은 오전 7시 40분에 시작됐지만, 학생들에게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달려 오후 2시 30분 이전에 7~8과목의 수업이 경이적으로 끝났다. 여느 해 같았으면 아침에 탔던 것과 같은 11번 스쿨버스를 타고 하교해 집에서 숙제하는 것이 전부였을 테지만, 올해 10학년이 되는 에야는 오늘부터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엄마표' 방과 후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에야, 우리 맥도날드 갈래?"스쿨버스를 이용하지 않는 반 친구 몇이 손짓을 했다.
"기말고사 끝나면!"아쉬운 마음이 대답으로 튀어나왔다. 에야는 힘없이 스쿨버스에 올랐다. 런치박스에 남긴 샌드위치 반쪽을 심심하게 씹으며 창밖을 보니, 30여 대가 넘는 에야네 학교 스쿨버스와 직접 딸들을 데리러 나온 자가용들로 학교 앞은 완전히 아수라장이었다.
"너 IGCSE 시험 칠 거라며? 그거 어렵다던데…."같은 반 마리암 아알리가 에야의 옆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마리암 아알리는 에야의 베스트프렌드이다. 부모가 모두 이집트인인 마리암 아알리는 모국어인 아랍어로 대학입학을 준비하므로 기존 학과목만 열심히 따라가면 되었다.
그에 비해 엄마가 일본인이면서 집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며 현지인학교를 다니는 에야는 아무래도 남들보다 선택의 폭이 넓다. 특히 영어로 치러지는 외국 대학입시 학과목에 대한 이해 속도가 이집트학생들보다 빠르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에야는 남보다 두 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것도 아주 새로운 과목들을.
"오늘부터 뺑뺑이 과외 시작이야. 앞으로 3년은 난 죽은 거야.""너 너무 불쌍한 거 같아. 내가 위로 차원에서 선물 하나 줄게. 짜잔."그것은 제인 말리크의 50cm짜리 브로마이드였다.
딸 과외 위해 업무시간까지 줄인 에야 엄마에야가 스쿨버스를 타고 집 근처로 올 시각, 엄마는 벌써 그곳에 나와 있었다. 과외용 가방을 든 엄마는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에야를 낚아채 자신의 차에 태웠다. 과외를 받는 곳이 학교와는 정반대의 방향이라, 굳이 학교까지 왕복하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었다.
"누구라고?" 엄마는 연신 백미러 곁눈질로 뒤차, 옆차, 길 건너려는 행인,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길냥이들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면서도 큰 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관심을 쥐어짜며 물었다.
"카이로는 너무나 정신이 없어… 신호등 좀 달지. 이러다 내 명대로 다 못 살 거야.""제인 말리크요. 원 디렉션(One direction)에서 유일하게 얘만 우리 같은 무슬림이에요.""으응 그렇구나."20년 된 똥차로 카이로의 지옥 같은 도로를 운전하느라 진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엄마야 자신의 말을 알아들었든지 말든지 에야는 그저 세계적인 남성그룹 원 디렉션의 멤버 제인 말리크의 브로마이드를 마냥 감탄스런 표정으로 쓸어내릴 뿐이었다.
요즘 아랍에서 가장 '핫'하다는 그의 인기는 에야네 반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이다. 에야를 비롯한 반 친구들은 원 디렉션과 제인 말리크를 통해 학업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위로받았다.
에야 엄마는 새로 예약한 큰딸의 과외교습을 위해 업무시간을 한 시간 가량 줄였다. 엄마의 월급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외국소재 대학이나 카이로 소재 외국대학들의 등록금을 걱정한 아빠가 아이를 이집트 현지 대학에 보내도 되지 않겠냐고 넌지시 의견을 제시했을 때 엄마는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IGCSE 학과목 공부랑 한 과목당 700~800 달러씩 하는 시험비용이랑 과외비용을 다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요? 대학에 들어가려면 아직도 3년이나 남았는데. 대학등록금은 또 어쩌고?""그래도 해야 해요. 현지 대학 나와서 우리 아이가 어디에 어떻게 취직할 수 있겠어요? 일본의 지방대학이라도 보내야 해요. 다른 나라에서 취직을 하더라도 암튼 이집트는 안 돼요."엄마의 고집은 확고했다. 의무교육기간이 9년인 이집트의 학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초등 6년, 중등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으로 구성돼 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유니세프에서 조사한 이집트의 초중등학교 진학률은 남자가 88.6% 여자가 87.2%이며, 전체인구의 고교진학률은 남자가 70.5% 여자가 69.5%에 이른다. 또한 유네스코에서는 2010년 기준으로 이집트의 성인 여성 (15~24세)의 상급학교 진학률이 84.3%, 성인 남자는 90.56%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도 자녀들의 진학에 목숨을 거는 오늘날 이집트의 부모들이 이 조사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
에야 아빠는 어쩌면 노후를 위하여 알렉산드리아에 사두었던 작은 아파트를 팔아야할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거실에서 아홉 살 난 에야의 막냇동생이 작아진 발레복을 입느라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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