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놈이 더 하다는 말이 있다. 모진 시집살이한 시어머니가 더 모질게 며느리 시집살이 시키는 법이다. 가난이나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가난과 고통을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리라고 흔히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하기야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해 자신보다 약자의 아픔을 보듬는 게 보편적인 인간의 행동 양식이었다면 왜 세상이 지금같이 강자 독식의 세상이 됐겠는가?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병상을 뺏더니 아이들의 평등한 밥상마저 뺏은 홍준표 경남도지사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어린 시절 배고픔 속에서 보냈다고 한다. 중·고등 학교 내내 점심 시간 마다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수돗물로 배를 채우며, 열심히 공부해서 검사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도지사도 되니, 참으로 우월한 '개천 출신 용님'이다. 그 시절 그 배고픔을 이겨내고 지금 자리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서러움과 한이 있었겠는가?
근데 말이다. 그런 어려운 시절을 보낸 분이 왜 사회적 약자들의 마음을 저렇게 몰라주는 걸까? 그가 남들보다 공감능력이 떨어지거나, 배부르니 배고픈 시절 잊어버리는 뻔뻔한 위인이라서 그럴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가운데 어린 시절을 유복하게 보낸 사람들보다 가난하고 불우하게 보낸 사람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 매몰차게 대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일명 개천에서 용이 된 분들 말이다. 물론 개천에서 용이 된 모든 사람을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더러는 어려운 시절을 생각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여러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분명히 있는 것도 사실이니까. '개천 출신 용'으로 자수성가해 살만해진 사람들이 자신보다 처지가 약한 사람에게 하는 갑질에는 약자들이 저항할 수 없게 하는 그들만의 일관된 논리가 있다.
'나는 너보다 더 힘든 시절을 보냈지만 이렇게 이겨 내고 사회적 성공을 이뤘다. 나도 다 겪어봐서 안다. 아무리 힘든 고생도 자기 하기 나름이니 죽으라고 열심히 살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 그러니 아프고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말고 열심히 더 열심히 열심히 살아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등등...'
생각을 바꾸어보자. '개천 출신 용님'들이 가난으로 힘들게 살았던 1950~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보편적 복지가 있었다면 어뗳게 됐을까? 최소한 교육과 의료에서 만큼은 보편적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였다면 미래의 '개천 출신 용님'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시절을 보냈을까? 점심 시간에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수도꼭지에 입을 대며 '미래에 꼭 성공해 오늘 내가 겪은 이런 서러움을 갚아 주리라' 이 앙다물며 한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불려 나와 혼나고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같은 수모를 겪지 않았다면 사회와 세상에 분노하며 기필코 보란 듯이 출세하리라 독기를 품는 이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 성공은 나의 개인적인 출세 이전에 사회에 대한 책임이라는 걸 배우며 자라지 않았을까? 비록 개인적 가정 환경은 어렵고 힘들지만, 보편적 복지가 있으니 제때 제대로 공부할 수 있고, 아플 때 적절히 치료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점심 밥 한끼 먹는 것으로 민감한 사춘기를 가난한 집아이로 낙인 찍히며 자존감에 상처 입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사는 사회와 나라에 애정을 가지는 건강한 젊은이로 자라지 않았을까? 자신이 기성 세대가 되어 사회적으로 어려운 약자를 위한 정책과 복지를 펴는 것이 당연한 사회적 의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국은 갈수록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사회, 부모의 부와 사회적 능력이 자식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신 계급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수 많은 젊은이가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벽 앞에서 신음하며 쓰러져가는 불행한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오직 자신만의 피나는 노력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뤘다고 믿는 '개천 출신 용님'들의 횡포는 아이들의 평등한 밥상마저 걷어차 버린다.
아이들의 밥값으로 가난한 집 아이들의 학원 보내줄 돈을 댄단다. 이 가난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는 11가지. 그리고 지원비는 일년에 50만 원. 한 달에 5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갈 수 있는 학원은 없다. 학습지 하나 하면 될 돈이다. 그렇게 내건 표어가 '서민 자녀 교육 지원을 통해 개천에서 용나는 사회를 만들겠다'이다.
지난 30일 <한겨레>에서 보도된 인터뷰 중 손주들의 밥그릇을 뺏긴 화난 할머니들이 검사 출신 홍 지사를 향해 던진 한마디를 전하며 글을 마친다.
"배워도 더럽게 배우면 일자무식한 무지랭이보다도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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