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평생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
대한민국, 우리 사회는 그동안 참 많이 변했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마리 토끼를 훌륭하게 잡아내고, 명실상부 선진국 대열에 드는 중이다. 그런데 어째 사회가 발전할수록, 그만큼 개인에게 요구하는 능력도 많아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스펙'을 쌓아야 하는 세상이다. 그리하여 좋은 직장에 들어가든 전문직 등 원하는 직업을 성취하든, 이후에도 끊임없이 말 그대로 '평생' 자기개발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평생교육은 우리 삶의 필수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헌법'에 평생교육이 명시된 나라
당신은 혹시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5항을 알고 있는가? '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에 근거를 두고 탄생한 법률이 바로 「평생교육법」이다. 대한민국은 헌법에 평생교육이 명시된 나라입니다. 이를 통해 국가가 교육이라는 혜택을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점은, 우리 헌법에 자부심을 갖게 만드는 대목이다.
사이버 대학교? 디지털 대학교?
평생교육법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만, 평생교육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다. 그 중에 아마 가장 익숙한 것은 '원격대학'에 의한 평생교육일 것이다. 지하철에서 '○○사이버대학교', '△
△디지털대학교'와 같은 광고를 한 번쯤은 봤으리라. 바로 이런 대학들이 원격강의, 즉 인터넷을 통한 대학수업을 제공하는 곳이다. 물론 일반대학들과 마찬가지로 정규과정을 모두 마치면 '학사학위'도 받을 수 있다.
이런 원격수업을 제공하는 학교에는 '시간제수업'이라는 것이 있다. 쉽게 말해, 그 대학에 정식으로 신·편입한 것은 아니지만, 원하는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제도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렇게 시간제수업으로 취득한 학점은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을 통해서 정식으로 학점을 인정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시간제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는 개개인의 사정과 필요에 따라서 다양하다. 허나 몇 가지 일반적인 경우를 추려보자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있다. ▲사법고시 응시를 위한 법학과목 이수가 필요한 경우 ▲공인회계사시험 응시를 위한 회계학과목 등의 이수가 필요한 경우 ▲학점은행 등을 통한 신속한 학위취득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
'시험 볼 때는 컨트롤 + F만 누르면 돼...'
문제가 되는 것은 학점은행을 통한 학사학위 취득을 위하여 시간제수업을 듣는 경우이다. 대상을 좀 더 축소하자면 '학사편입'에 응시하기 위하여, 신속히 학사학위를 취득하기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제2의 수능'이라고 불리는 편입학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 지에 대해서 이번에 자세히 논하지는 않겠다. 다만 일반편입학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경쟁률을 보이는 학사편입학에 지원하기 위하여, 졸속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사례가 많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내 명문대로 꼽히는 대학 중 한 곳에 학사편입학한 김아무개(남·22)씨는 전적대학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학점은행을 이용하여 2년 만에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김씨는 "시간제수업으로 한 학기에 24학점까지 수강할 수 있어요. 또한 학점으로 인정해주는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2년 만에 학사학위 취득이 가능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밝혔다.
또한 편입영어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 그 많은 학점을 시간제수업으로 수강하는 것이 가능했냐는 질문에는 "강의는... 그냥 소리는 끄고, 플레이만 시켜서 출석체크만 하고요, 중간·기말시험은 강의교안을 다운 받아서 '컨트롤 + F'만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컨트롤 + F'는 윈도우의 '찾기' 기능이다. 검색어를 입력하면 해당 검색어가 있는 곳을 찾아준다. 즉, 시험도 어차피 온라인이기 때문에 강의교안을 보면서 내용을 찾아서 쉽게 시험을 치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방법으로 김씨는 총5개 원격대학에서 받은 성적의 평균이 백분위로 98점이 넘는다. 이 성적은 고스라니 학점은행 성적표에도 반영되고, 학사편입 시에 전형요소로 쓰인다.
'2007년 제작한 강의를 지금까지 쓰고 있어...'
그렇다면 원격대학들은 제대로 운영되고 있을까? 이번 학기에 한 원격대학에서 시간제수업으로 헌법강의를 수강하는 정아무개(남·29)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법학 학점이 필요해서 시간제수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헌법은 예전에 학부 때도 공부했던 거라 내용은 쉬워요. 헌데 강의를 듣다보니, 내용이 이상하더라고요. 국회의원 의석수가 지역구 243인, 비례대표 56인으로 합계 299석이라는 겁니다. 이상해서 찾아보니, 이는 제17대 국회 내용이더라고요. 학교에 문의해보니 강의가 2007년에 제작된 강의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현재 강의를 다시 제작할 계획은 없다고 했어요."
정씨의 사례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정 씨가 듣는 수업은 학점 당 5만 원의 수업료를 받고 있는 강의다. 3학점짜리 수업이니 한 과목 수업료는 15만 원이다. 15회의 강의를 제공한다고 하니, 1회당 정확히 1만원의 수업료를 지불하는 셈이다. 수강생이 10명이면 10만 원, 100명이면 100만 원인 셈이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을 지불하고 수업을 듣는 수강생에게 기만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사실 상 강의를 하지 않으면서 수업료를 받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의 절묘한 일치'가 만들어 낸 기현상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당연히 원격대학 등을 통해서 공부하시는 모든 분들이 대충대충 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원격대학의 강의가 재탕 삼탕을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는 학교와 열정적인 수강생이 더 많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사례와 같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기현상은 '쉽고 빠르게 학사학위를 취득하고자하는 수요'와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수업료를 벌어들이려는 공급'의 절묘한 일치가 만들어낸 촌극이 아닐까 싶다.
'공부가 행복하다'
언젠가 토익시험을 보러간 학교 복도에 걸린, 삐뚤빼뚤한 손 글씨로 쓴 시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 학교의 야간반을 졸업하신 어떤 할머님께서 쓴 시였는데, 대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공부를 하는 게 좋다
글씨를 쓰는 게 좋다
나는 칠십년 만에 내 이름을 알았다
내 이름은 최○○이다
.
.
(중략)
.
.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행복하다
필요하다면, 돈을 지불하고 학점을 살수도 있다. 단순히 학점만이 필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합법적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그러나 이런 생각들이 우리 헌법에 명시된 평생교육의 취지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라 생각한다. 산업화를 넘어 첨단화,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을 사는 우리는 평생교육이 필수인 세상에 서 있다.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되돌아 볼 때이다.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도.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