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망한다고 한 레스토랑, 14년이나 버틴 비결

[홋카이도 하트엔트리 우핑이야기 ⑥] 하트엔트리 떠나던 날

등록 2015.04.13 10:00수정 2015.04.1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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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 일본 홋카이도 동쪽 츠루이마을에서 우핑한 이야기입니다. 우프(World-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1971년에 영국에서 처음 시작한 전세계 유기농 농장 네트워크입니다. 유기농 농장을 포함해 친환경적이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곳에 가서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숙식을 제공받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말합니다. - 기자말

 마지막날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쏘냐,사치코씨,저자,모모코,마모토씨
마지막날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쏘냐,사치코씨,저자,모모코,마모토씨이지은

우프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 하트엔트리를 떠나는 날이기도 했다. 마사토씨가 역에 데려다 준다고 했다. 오전 다섯시부터 눈이 떠졌다. 일찌감치 쨍쨍한 햇볕을 받으며 일어났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조금 더 맑은 정신으로 머무르고 싶었다.


하트엔트리의 강한 햇볕은 잊지 못할 것 같다. 짐 정리를 다 하고 나서 아래층에 내려가니 이미 모두 일어나서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모코가 내게 하트엔트리로 오라고 했다. 나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짐을 가지고 갔다.

하트엔트리에서의 마지막 날

이날은 부모와 아이들 15명 정도가 치즈 만드는 수업을 받으러 하이엔트리에 온다고 했다. 예약된 손님이 많아 새벽부터 음식 준비로 주방은 분주했다. 그래도 잊지 않고 모모코가 따뜻한 밀크 커피를 준비해줬고 쏘냐가 빵과 꿀을 가져다줬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하트엔트리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모두가 같이 찍는 사진이라 더욱 의미가 깊었다. 빵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모두에게 '굿바이' 인사를 했다. 한 명씩 인사하며 꼭 껴안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마음이 찡했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일주일이 금세 지나가 버렸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적응을 하느라 마음이 불편하고 몸도 피곤했다. 오자마자 대청소를 하고, 낮엔 종일 서서 설거지만 해서 뭐가 뭔지, 이게 내가 원하던 건지 헷갈려 얼른 떠나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며칠 머물다 보니 '성급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사치코씨 아침에 빵을 굽는 모습
사치코씨아침에 빵을 굽는 모습 이지은

마사토씨, 사치코씨, 모모코 그리고 쏘냐 모두가 정말 친절했다. 처음엔 마음을 열지 않았던 애완견 쿠피도 나중에는 내가 다가가도 무서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줬다(도망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제야 쿠피와도 친구가 된 것 같았는데 떠난다니 아쉽다. 많은 것을 함께 나눌 수 있었고,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처음에는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했던 사치코씨도 마음이 무척 따뜻하고 웃음과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하루 하루 느꼈다. 이제 떠나는 날에 와서 사치코씨의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면서도, 아쉬움이 남는다.


사치코씨는 14년 전부터 아름답게, 맛있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트엔트리를 일궈 왔다. 처음 하트엔트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도시와 마을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뿐 아니라 언덕배기에 있는 레스토랑에 누가 가겠냐고 많은 사람이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전문적인 음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본 요리도 아니기 때문에 모두가 하트엔트리는 성공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단다.

그러나 14년이 지난 지금, 누가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치코씨만의 독특한 음식과 맛있는 빵, 아기자기하게 꾸민 레스토랑 실내와 다양한 허브와 채소가 어우러진 농장, 야생 노루와 여우가 드나드는 정원은 누가 봐도 한 번쯤 꿈꾸는 이상적인 곳이었다. 또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공동체 문화가 파괴된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이었다.

사치코씨의 하트엔트리의 재료 공급 구조는 매우 공동체적이다. 레스토랑에서 쓰는(더불어 치즈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신선한 우유는 옆 동네의 지애씨의 가족으로부터 구매했다. 지애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 허트엔트리에 와서 사치코씨와 함께 치즈를 만들고, 치즈를 만드는 수업도 했다. 지애씨가 운영하는 우유 농장은 소가 약 300마리 정도 있다고 했는데, 지애씨의 할아버지 때부터 약 40년간 운영해 온 곳이라고 했다.

농장의 소들은 낮에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아침에는 신선한 우유를 짰다. 지애씨네도 고민이 있다면, 2차 가공품 즉 치즈를 만들고 싶지만, 결정은 내리지 못하고 아직은 실험만 하고 있는 단계라고 했다. 사치코씨는 다른 농가에서 비교적 용기 있게 다양한 식품들을 생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트엔트리에서 치즈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모든 이에게 본보기가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에서 사용되는 채소는 사치코 상의 친구들로부터 받았으며, 벌꿀도 근처 양봉장에서 사서 온다고 했다. 농사를 짓는 친구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하트엔트리에 와서 텃밭과 꽃밭 그리고 허브밭을 가꿨다.

아름다운 여자, 모모코

나들이 사치코씨, 할머니 그리고 모모코
나들이사치코씨, 할머니 그리고 모모코이지은

레스토랑의 주 요리는 프랑스식이었는데도 대부분의 재료를 지역에서 공급받을 수 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하트엔트리를 가꾸는 사람은 비단 사치코씨 뿐만이 아니었다. 가끔씩 찾아 오는 우퍼들과 모모코가 있었는데, 모모코는 사치코씨와 마사토씨의 둘째 딸로 하트엔트리 일을 돕기 위해 도쿄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홋카이도로 올라왔다고 한다.

어찌나 다정하고 아름다운지, 늘 밝게 웃으며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우퍼가 해야 할 일을 적재적소에 나눠주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음식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또한 온천에 갈 때마다 우리를 차로 데려다 줬으며, 어떤 일도 발 뻗고 나서서 도와주려고 했다.

모모코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이 하나 있다. 모모코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는데, 혼자 계셔서 그런지 말수가 적은 할머니에게 늘 다정하게 웃으면서 이야기를 건네고, 할머니가 혹시라도 불편하지 않게 늘 옆에서 챙겼다.

할머니는 그런 모모코를 보며 늘 웃음을 지으셨다. 한 번은 저녁에 나와 쏘냐와 온천에 같이 가자고 했더니 모모코는 저녁에 할머니가 혼자 계시니 할머니와 함께 있겠다고 하며 데려다 주기만 하겠다고 했다. 그런 모모코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였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로부터 올바르게 자라 모든 사람을 다정다감하게 대하는 모모코. 아름다운 여자였다.

며칠간의 우프는 끝났다. 시간은 정말 빨리 갔고, 그 사이 셀 수 없이 많은 추억을 남겼다. 나는 일본 가족을 만났으며, 자연에서 소중한 한때를 보냈다. 잠깐이었지만,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다양한 일본인을 경험 할 수 있었고 그 사이 일본어도 부쩍 늘었다.

우프는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최고의 체험 학습장이다. 특히 자연에게 배우는 것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도시에 살면서 갖기 힘든 자연 환경 속에서, 어떤 지역에서 어떤 계절에 어떤 과일과 채소가 생산되는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일할 때 어떠한 효과가 나오는지, 흙을 만지며 어떻게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지 등 우프 농장에서 알 수 있었다.

비단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서나 우프 농장을 경험 할 수 있다. 의지와 호기심만 있다면 농장은 모두에게 문을 열고 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우프를 통해 친환경적 삶과 유기 농업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본우프 #일본유기농농장 #우프체험 #우프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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