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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탐구과목으로 선택한 세계사에서 가장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다. 뚱뚱한 몸체에 우스꽝스럽게 생긴 조각품인 주제에 '비너스'라는 이름이 붙어있어서 인상 깊었다.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라고 암기해두긴 했지만 어느 고대 문명의 미적 기준과 그 유물에 담겼을 기원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모든 유물은 각 시대 각 집단의 기억을 표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기억을 표상하는 그 방식까지 이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유물은 기억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언젠가는 실패하고 만다. 유물은 언제나 집단의 기억을 어설프게 따라한 '키치'로 전락하고 만다.
작가 밀란 쿤데라가 '키치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환승역이다'라고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한 시대, 한 집단의 기억은 전달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늘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우리는 기억하려는 노력을 거치지만 결국 망각에 다다른다. 살기 위해 분투하다가 같은 운명을 맞는 모든 생명처럼. 세월호 참사 이후 1년이 지났다. 그만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은 어쩌면 틀린 얘기가 아니다. 그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산 자는 살아나가는 것에 의미가 있을 것이므로. 언제까지고 붙잡혀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치는 기억과 망각의 사이에 있다. 기억에서 망각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키치에서 '환승'해야만 한다는 얘기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너진 팔레스타인의 박물관을 옮겨왔다는 전시를 본 적이 있다. 거기 부서지고, 형체를 잃은 유물들이 찌라시 뭉치와 음료수 캔을 비롯한 온갖 쓰레기들을 통해 의미심장하게 복원돼 있었다. 이미 사라진 유물들을 현대의 값싼 유산으로 애써 기억 '해내고' 있었다. 내가 본 중에 가장 조악하고 가장 눈물 나는 키치였다. 힘들여 기억해내는 과정을 거쳐서 망각하는 것이 아니고서 그 무엇이 제대로 잊힐 수 있을까.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말은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끝내 망각될 운명 앞에서 가라앉은 배를 두고 오래 생각하고 정성껏 기억하려 했다면. 세월호는 지금쯤 그 키치들의 애끓는 마음으로 천천히 잊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으로 은폐되고 외면 받는 사이 세월호는 바른 경로를 통해 환승역으로 인도되지 못했다. 그만 잊자고 하는 말로써 은폐되는 동안 세월호는 아직 고통스러운 기억의 자리에 갇혀 있다. 눈물 나는 길을 따라 천천히 늙어가는 것이 아니고, 기억의 한복판에서 흉물스럽게 썩어가고 있다.
좋아, 지금부터, 라고 말하는 순간 알고 있는 것을 가볍게 잊어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억을 망각의 자리로 가져가기 위해서는 '키치'로 불리는 불완전하고 고통스러운 재현의 과정이 필요하다. 증·개축, 평형수 등등의 탓으로 배는 빠질만한 상태였고 구조 책임자들이 무책임해서 구조도 안 됐다는 해명은 그 뒷면을 은폐한다. 어떻게 해서 배는 빠질만한 상태였는지, 또 어떻게 그 모든 구조 책임자들이 다 같이 무책임할 수 있었는지를 우리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것은 재현될 수 없고 모르는 것은 잊히지 못한다. 지독한 키치가 필요하다. 세월호를 정말로 잊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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