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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유족은 교통사고나 질병 등 일반적인 사망에 따른 유족과는 다른 슬픔을 경험한다. 고인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는 죄책감과 분노,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켜 유족들을 괴롭힌다. 이를 회복하는 데는 최소 3년 이상의 시간이 지나야 한다.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후 심장 깊숙한 곳에서 지옥문이 열렸다. 지옥의 문이 열리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자살유족의 이야기가 담긴 책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네 사람의 이야기'에서 아들을 떠나보낸 유족 ㄴ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하지만 자살유족들은 이러한 슬픔마저 제대로 표출하지 못한다. 자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2013년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한 '자살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살은 말하지 말아야 하는 주제이다'라는 질문에 무려 46.1%가 동의한다고 답했다. '자살'이 금기어인 동시에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나 다름없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살유족들은 애도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장례문화다. 대부분 자살자들의 장례는 이틀 이내에 치러진다. 또 사망 이유를 말하지 못하거나 숨기는 경우가 있다. 자살이 아닌 교통사고 등을 핑계로 대며 타인으로부터 자살로 인한 슬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게 되는 것이다.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유족지원팀 박재영 팀장은 "장례는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써 최소 3일이란 애도의 기간이 필요하다. 슬픔에도 항상성이 있기 때문에 외부로 일정 부분 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순간 고장이 나 또 다른 아픔과 자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낙인은 자살유족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자살자가 자살을 결심하는 데에는 유족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속단하기 때문이다. 또 자살을 막지 못했다며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자살유족이 겪는 죄책감에 칼을 들이대는 것이다.
연세로뎀정신과의원 최의헌 원장(정신과 전문의)은 "자살유족은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 선 한 없이 작은 사람으로서 다른 유가족과 동일한 슬픔의 여정을 가야 한다. 자살에 대한 편견 어린 시각차를 유족에게까지 확장시킬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사회의 부정적 시각,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슬픔은 유족 내 불화를 야기하기도 한다. 죽음의 원인으로 가족구성원 서로를 지목하는 것이다. ㄱ씨 역시 부인의 자살에 대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부인의 가족들은 사고의 책임이 제게 있다며 비난했다. 장례식조차 가지 못했고 장지(葬地)조차 알지 못한 채 쫓겨났다. 나는 완전히 버려졌다. 사고 이후로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말끝을 흐린 ㄱ씨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자살유족 사후 사업,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해 자살유족은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일반인에 비해 자살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6배 이상 높다. 고인의 상실을 직면한 뒤 처리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고인에 대한 그리움을 극대화하며 모방 자살을 이상화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자살유족과 관련한 사후 사업은 자살예방 사업의 일부에 속해 진행된다.
자살유족을 위한 사후 사업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상담과 자조모임(self-help group)이다. 특히 자조모임에서는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자살유족간의 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한다. 전국적으로 9개의 공식적인 자조모임이 있다. 이 밖에 자살유족 간의 캠프, 종교단체에서 진행하는 예배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장진원 사무총장은 "유족들은 자조모임을 통해 가장 많이 치유된다. '나뿐만 아닌 누구나 그럴 수 있다'라는 인식을 통해 위로받는 것이다. 또 일정 기간 꾸준히 참석했던 유족들이 주체가 되어 모임을 이끌어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상담은 주로 각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자살유족 대응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이 공포되고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자살예방센터가 마련된 지는 불과 3년여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자살유족 심리 상담과 자살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심리적 부검은 올해 4월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심리부검센터가 개소하면서 본격적인 시행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특히 정신건강증진센터 내에는 자살유족만을 대상으로 한 상담체계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모든 유족 상담을 포괄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자살유족은 특별한 슬픔을 겪는다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맞춤상담을 받을 수 없다. ㄱ씨도 지역 정신건강센터의 문을 두드렸으나 돌아오는 상담내용은 그를 황당하게 했다. ㄱ씨는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니 너무 우울해 하지 말고 밖에 나가 햇볕을 많이 쬐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과연 나의 상황을 이해한 상담인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마저도 1시간 정도의 상담만 가능하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장진원 사무총장은 "자살 관련 상담은 아주 전문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살 관련 상담에 관한)공인된 자격증이나 분야가 없기 때문에 일시적 대응에 그친 상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최의헌 원장은 "기존의 상담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자살유가족을 위한 상담을 할 수 있도록 추가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들이 속한 기관이 자살유가족을 돕는 기관임을 알리는 것도 필요하다"며 "유족이 상담을 통해 도움받았다는 생각을 자발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자살유족 관련 사업을 따로 떼어내 사업을 진행하는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다. 2013년 꾸려진 서울시자살예방센터 유족지원팀에서는 '자살유족 상담 및 자조모임 매뉴얼'을 제작해 자살유족만을 대상으로 한 상담체계를 마련하고 '자작나무(자살유족 작은희망 나눔으로 무르익다)'라는 자조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또 자살유족전문가 양성 교육을 서울시 내 25개 자치구에서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다.
사후 사업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 있다 사각지대에 처한 자살유족도 있다. 바로 생계가 급한 빈곤층이다. 사고가 발생한 뒤 충분한 상담을 받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효과적인 시기는 6개월 이내이다. 하지만 빈곤층의 경우 사고 후 곧바로 생계활동에 뛰어들어야 하기 때문에 자살유족임을 인지하고 상담을 받거나 자조모임에 참여할 시간적·정신적 여유가 없다.
장진원 사무총장은 "대부분의 자살유족들은 사각지대에 처해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자신들의 상처까지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타의에 의한 무지'로 인해 심리적 고통이 점차 쌓이다 어느 순간 자살시도로 폭발하게 될 가능성이 특히 높다.
또 다른 사각지대는 지방에 거주하는 자살유족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자살유족이 심리 상담 및 자조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취재결과 자살유족 대응을 하는 각 지역 정신건강센터의 설치비율은 수도권의 경우 평균 92%를 나타냈지만, 그 외 지방의 경우 평균 68%로 나타났다. 더군다나 2013년 인구 10만 명 당 자살률 1위인 강원도는 정신건강증진센터 설치비율이 66%로 지방 평균을 밑돌고 있다. 수도권에 비해 정신건강증진센터가 현저하게 부족한 상황이다.
그 때문에 지방에서 상담이나 자조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자살유족들이 있다. 전국적으로 9개 도시에서 진행되는 자조모임 중 부산, 광주, 대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도권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박재영 팀장은 "지방은 자살유족을 돌보는 일은 우선사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자살유족과 같은 사후관리가 아닌 자살 예방사업에 주된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중앙자살예방센터 기획네트워크팀에서 일하는 곽종일씨는 "각 기초자치단체는 관련 조례를 제정해 정신건강증진센터를 설치할 수 있으나 예산문제로 미뤄지는 경우가 있다. 또 자살유족에 대한 사후사업을 진행하는 지방도 있지만, 지역의 폐쇄성과 같은 문화적 특징으로 인해 참여 인원은 수도권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고 말했다.
부족한 예산, 사업 확대 어려워 자살유족에 대한 사후사업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는 데에는 '예산부족'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곽종일씨는 "정부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살 관련 분야별 정책을 세세하게 마련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 국회예산정책처에서 발간한 '2015년 예산안 부처별 분석'을 살펴보면 자살예방사업 마련을 위한 예산은 약 86억 원이다. 이 정도 예산으로는 자살유족 전문 대응체계를 개발하고 전문 상담인력을 대거 채용해 상담기회를 확대하기엔 역부족이다. 빈곤층 자살유족에 대한 방문서비스처럼 자살유족의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데는 더욱 어렵다.
일본은 지난 2006년 자살 대책 기본법 시행과 함께 한 해 3천억 원을 투자하며 자살률을 10만 명당 20명 이하로 낮췄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턱없이 모자란 예산으로 자살률이 낮아지기를 희망하고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