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 앞에서 무릎꿇고 사과하는 백화점 점원인천의 한 대형백화점에서 점원 2명이 고객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는 영상이 누리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이 고객은 귀금속의 무상수리 여부를 놓고 점원에게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10.18 (유튜브 영상 캡처)
연합뉴스
['고객졸도 서비스'에 졸도하는 감정노동자 ①]에서 이어집니다.
백화점은 항상 친절하고 기분좋은 서비스를 강조하지만, 내 주변에는 백화점에서 종종 불편함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많다. 스스로 하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도 직원이 내가 입는 옷의 단추를 잠그거나 지퍼를 채워주려 하기 때문이다.
화장품 매장에서는 제품을 직접 발라주기도 하고, 신발 매장에서는 남자 직원이 한쪽 무릎을 꿇고 구두를 신겨주거나 운동화 끈을 대신 매어준다. 얼마든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직원이 대신 해 주면 그렇게 당황스럽고 어색할 수가 없다. 나는 유리 구두에 우아하게 발을 내미는 동화 속 공주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화점에서 이러한 '과잉친절'은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한번은 아빠와 함께 정장을 사러 간 적이 있다. 정장 바지를 줄여주겠다던 직원은 망설임 없이 바닥에 양쪽 무릎을 꿇고 바지 밑단을 적당한 길이로 접기 시작했다. 나는 무릎을 꿇은 정장 차림의 직원의 모습에 당황했지만 그 직원에게는 익숙한 행동인 것 같았다.
아마도 그는 이런 태도가 친절하고 좋은 서비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장면이 왜 그렇게 불편했을까?
실제로 백화점 이용객들도 직원들의 이러한 친절을 그저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설문조사를 해본 결과, 무려 91.7%의 대다수가 이렇게 과도한 친절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 8.3%만이 이런 서비스를 해 줘야 한다고 답변했다. 생각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서비스가 과도하다고 생각하고 불편함을 느낀다는 뜻이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과잉친절에 익숙해지는 고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이 강조되는 백화점 안에서는 여전히 필요 이상의 과잉친절이 계속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과잉친절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소위 '갑질고객'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은 '우리동네노동권찾기'에서 주최한 감정노동 좌담회에서 나온 경험담으로, 실제 백화점 화장품 코너에서 일했다는 직원이 겪은 일이다.
매장에서 매니큐어를 고르던 한 고객이 직원에게 매니큐어를 직접 발라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손이 아니라 발을 내밀며 발톱에 발라달라고 한 것이다. 직원은 무척 당황해서 곤란하다는 듯이 이야기했지만 고객의 강한 요구에 결국 어쩔 수 없이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주었다고 한다. 몹시 불쾌한 기억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갑질들을 일부 몰지각한 고객의 행동일 것으로 생각하고 흔치 않은 경우일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이 같은 백화점 직원들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일상적으로 겪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감정노동자 좌담회에서 백화점 화장품 코너의 직원들은 고객들의 갑질이나 소위 '진상짓'을 하루에 한 번 꼴로 경험한다고 말했다. 그나마 최근 들어 감정노동 문제가 화제가 되자 스스로 '갑질고객'이 되지 않으려고 자기 행동을 의식하는 분위기가 생긴 편이라고 한다.
영화 <부당거래> 중에서 인터넷에 유명하게 떠도는 명대사가 있다.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는 거다. 백화점이 계속해서 '고객졸도' 친절 서비스를 강조하고, 직원들이 일방적으로 사과하거나 무릎을 꿇는 일이 잦아지면 잦아질수록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점차 그것이 익숙한 내 '권리'처럼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백화점 개·폐점 시 모든 직원이 지나가는 고객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도 과잉친절의 대표적인 예이다. 외국 백화점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백화점뿐만 아니라 대형마트에서조차 이런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직원들의 인사에는 너무 익숙해져서인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은 고객들이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백화점 이용객의 절반에 가까운 48.7%가 이런 개·폐점행사에 대해서는 그저 '좋은 서비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사람이라도 불편하다면 친절이 아니다얼마 전에 고장난 카메라를 수리하러 서비스센터에 갔을 때였다. 사람들이 붐빌 시간을 피해서 최대한 센터 오픈시간에 맞춰서 갔더니 입구에 간단한 간식과 음료들이 비치되어 있는 것이었다. 옆에 누가 서서 나눠주지도 않고, 그저 고객이 자유롭게 집어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과자 한 개와 요구르트 한 병을 먹고 아주 기분 좋게 수리를 맡기고 나올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에는 건물 입구에 간단한 간식거리를 두고 들어오는 고객들이 스스로 간식을 집어먹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오픈 시간 때부터 찾아준 고객에 대해 직원 인사 대신에 간단한 간식으로 환영과 감사의 뜻을 전하는 것이다.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둘 중 하나라도 불편하다면 그것은 진짜 '친절'이 아니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고 주는 사람에게도 불편함이 없는 방식의 친절, 감정노동을 해결할 수 있는 작은 대안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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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톱에 매니큐어 발라달라는 고객, 정말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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