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탄압의 온상' 테러방지법 왜 만들려하나?

각국의 쓰라린 교훈을 더듬어 본다

등록 2015.12.07 19:41수정 2015.12.07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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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평화연대(준)은 파리 참사 이후 확대되고 있는 시리아 공습과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테러'를 빌미로 한 각종 억압 조치들을 조명하려 합니다. '테러방지법', ISIS 부상의 배경, 시리아를 둘러싼 논쟁과 그 대안, 현 상황에서의 난민 문제과 대안 등이 다뤄질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새누리당 원유철(오른쪽) 원내대표와 주호영(가운데) 국회 정보위원장 등 정보위 위원들이 4일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테러방지법 법안처리와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새누리당 원유철(오른쪽) 원내대표와 주호영(가운데) 국회 정보위원장 등 정보위 위원들이 4일 오후 국회 원내대표실에서 테러방지법 법안처리와 관련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테러방지법'을 두고 주류정치권 내의 의견이 분분하다. '테러'의 개념과 범위, 적용 이후의 효과 여부, 인권 문제 등이 논란의 쟁점이 되고 있다. 나는 이 법안의 위험성을 살펴보려면, '테러방지법'의 역사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종류의 '테러' 관련 법률을 만든 단 기간 내에 가장 많이 나라는 아마도 영국이 아닐까 싶다. 영국은 각종'테러방지법'을 제정한 나라다. 북아일랜드 'IRA 소탕'을 빌미로 영국은 무려 7개의 '테러방지법'을 만들었다. '북아일랜드 법안(Northern Ireland Act', 1973)', '테러방지법(The prevention of Terrrorism Act, 1974)', '정보국법(The intelligence Service Act, 1994)', '신테러방지법, The Prevention of Terrorism, 1996)', '경찰법(Police Act, 1997)', '형사정의법(Criminal Justice Act, 1998)', '반테러법(Anti Terrorism Act, 2000)'.

이와 같은 법률을 통해서 영국은 자의적으로 북아일랜드 '테러'와 관련돼 있다고 볼 만한 사회단체들을 꼽아 이들의 활동을 금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경찰에 부여했다. "합리적 의심이 있을 경우"라는 수식어는 자의적으로 남발됐고 그 권한으로 경찰은 주거지 수색과 통신의 자유 제한이라는 무소불위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배심원에 의한 재판 제한, 특정금지단체 가입의 처벌 등의 조치들은 북아일랜드에만 효력 인정했다가 영국 본토로 점차로 확대됐다. 사실 북아일랜드에서 '테러'사건이 잦아들었던 것은 "'대테러' 관련 법률 때문이 아니라 북아일랜드와 영국의 정치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였다.""테러리즘이나 위협에 대해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거나 시민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법률이나 정책은 [테러방지에] 효과가 없다."((<한국테러학회보> 제5권 제1호 178쪽).

'테러방지법' 제정 흐름이 다시 재개된 것은 2001년 9·11 테러 사건 직후였다. 2001년 The Anti-terrorism, Crime and Security Act이 제정된 것은 미국에서 급작스럽게 제정된 '애국자법'(Patriot Act)이 제정된 직후였다. 그런데 영국의 '반테러법'의 본질이 아주 극명하게 드러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다름 아니라 이 법이 제정된 직후 관련 법으로 영국의 무기박람회(arms fair)에 반대한 평화운동가가 체포됐던 것. 살상무기 전시에 반대하는 게 평화활동이 테러 행위라는 것이었다. 즉각적인 항의가 반대가 이어졌고 영국의 '반테러법'이 누구를 겨냥하는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영국은 2005년에 The Prevention of Terrorism Act를 제정했다. 위치추적, 자택구금, 특정인물 접촉 금지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악법으로 회자되는 이 법을, 국제엠네스티는 지금도 폐지대상 법률 제1호로 꼽고 있다(Ammesty Internaional, 2006).

'반테러법'은 무용지물

영국이 2005년에 이 법을 만들게 된 계기는 런던의 주요 지하철 역 세 곳과 런던 중심부의 렛셀 스퀘어 역 주변에서 터진 폭발 사건이었다. 200명의 사상자를 낳은 참사였다. 이 참사는 2004년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폭파 사건에 이은 이 참사를 영국의 반전운동은 블레어의 '대테러 전쟁'이 낳은 비극으로 명명했다(스페인과 영국은 '테러와의 전쟁'의 주요 동맹이자 파병국이었다).


파리참사 10년 전에 터진 이 사건은 '테러방지법'의 무용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토록 많은 '테러방지법'이 있다 해도 '테러'는 제어되지 못하고 정당한 시민적 자유 침해와 무고한 희생만이 이어졌을 뿐이다.

'반테러'법이 무용지물일 뿐 아니라 인권 침해와 정적 제거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은 전 세계에서 입증되고 있다. 부시 정부가 시작했던 '테러와의 전쟁'이후 테러 사건은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1년 이전과 '대테러전쟁'이 최고조를 찍었던 2007년을 비교하면 지역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략 6배에서 10배에 이르는 증가율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애국자법'(Patriot Act)은 어떤가? 미국 시민사회가 9.11 테러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서 당시 미국 정부는 급작스럽게 관련 법을 제정했다. 그 이후 미국 시민권연먱(ACLU)은 미국이 감시국가(America, Land of Watched)가 됐다고 탄식했다. 컴퓨터를 이용한 탑승객감시시스템(Computer Assited Passenger Pre-Screening System (CAPPS Ⅱ)를 비롯해 이민자들과 유학생들에 대한 특별한 단속과 감시는 '애국자법'이 만들어 놓은 여러 인종주의적 억압의 한 사례일 뿐이다.

이후 'Patriot ActⅡ'도 비밀정보기관과 연방수사기관의 권한을 한층 강화해 놓았다. 미국의 '애국자법'이 이민자들을 감시 박해하고 자의적인 체포와 구금, 가택수색 및 사찰 등을 통해 인종차별주의와 공포 분위기를 조장했다는 비판은 전혀 낯설지 않다(제성호, <미국의 반테러법과 우리에 대한 적신호>, 중앙법학 제5집 3호, 13쪽).

프랑스와 독일, 일본 등의 '반테러법'들도'신체의 자유', '재산권', '이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개인의 권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를 포함했는데 이는 UN 인권고등판무소의 보고서에서도 잘 나와 있다. "테러와 관련한 사법협력의 과정에서 중대한 인권문제(Serious HumanRights Questions)가 발생하고 있다."

영국,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생겨난 '반테러법'의 반민주주의 효과는 남반구로도 확대됐다. 우간다,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제3세계 등에서 테러리즘의 정의를 광범하게 규정하는 '테러방지법'이 만들어졌다. 싱가포르(2001), 인도네시아(2003), 터키(2006), 바레인(2006), 필리핀(2007). "독재자들은 테러리스트라는 이름표를 자신들의 정치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단체나 개인에게 적용"해 "정부 비판자나 정치적인 적들의 탄압에 악용되고 있고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도구로 이 법을 적극 활용했다(조성제, <제3세계 국가의 테러방지법 제정과 우리나라에 있어서 시사점>.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한국콘텐츠학회 제9권, 제10호, 2009. 10, 281~282쪽)

대참사의 진정한 원인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잡기는커녕 폭력과 야만을 부추기는 패권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효과를 낼 뿐이다. 대참사의 원인에 대한 제대로 된 성찰이 필요하다. 파리 참사 직전에도 레바논과 터어키에서 벌어진 참사로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비롯해 무고한 수백 명의 인명이 희생됐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는 길은 ISIS라는 괴물이 어떻게 창궐하게 됐는지를 제대로 규명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일련의 대참사의 배경은 무엇인가? 'ISIS'라는 극도로 위험한 단체가 이라크와 시리아에 창궐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내 생각에는 ISIS의 부상에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작용했다고 본다. (1) 미·영의 이라크를 장악하려는 전략이 실패한 결과이자 이라크 점령 정책의 산물이라는 점 (2) 미국의 점령 정책에 동조했을 뿐 아니라 수니 아랍 다수를 철저하게 소외시켰던 시아파 정부(알 말리키 정부의 공식 별명은 '제도화된 착복'이었다)의 비민주적 통치 방식과 부패가 두 번째 계기가 됐다. 사실상 군대가 해체되고 국가의 공공적 기능을 상실하게 한 알 말리키 정부의 정부 운용 방식 또한 ISIS 부상의 주요한 배경이 됐다(2013년 4월에 이라크 군대가 이라크 북부 하이자(Hawija)시에서 평화로운 연좌시위를 하던 시위대를 공격해서 50명을 사살시켰던 사건은 알 말리키 정부의 야만적 폭력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줬다). (3) 2011년부터 시작된 아랍혁명이 패배하지 않았다면 ISIS 창궐이라는 비극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4) 2011년 시리아 반정부 세력에, 아사드 정권이 종파주의적 내전 방식으로 대응했던 일련의 상황은 ISIS가 동부 시리아에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이 중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1)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석유 장악을 통해 경쟁자를 제압해서 패권을 얻으려는 미국과 영국의 중동 점령이야말로 비극의 씨앗이다. 미국은 '테러리즘과의 전쟁', '개척지 자본주의 확산', '선거 실시'라는 세 요소가 하나의 프로젝트로 연결된 강력한 쇼크 요법이 1970년대 칠레에서 어느 정도라도 작동할 수 있다면 중동에서 강력한 민족국가인 이라크를 맘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수니파에 설움을 느낀 시아파들이 미국에 쌍수를 들어 환영할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이 하나씩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그러자 미국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조장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사실 2004년 이라크에서 수니파 도시인 팔루자에서 점령 반대 봉기를 다수의 시아파 주민들이 지지하고 점령에 대한 저항이 남부 시아파 도시로 확대됐을 때(종파간 분열과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이라크를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미국에게 이 사건은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만 해도 'ISIS'의 전신이 될 만한 세력들은 이라크에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 미국의 동족상잔 극대화 정책이 모종의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조금씩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군과 이라크 정부가 조장해 온 종파·민족 간 분열은 아랍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이고 통합적이었던 이라크를 바꾸어 놓았다. 시아파와 수니파를 분열시키고, '수니파 각성위원회'를 내세워 수니파 내에서 서로 총구를 겨누게 하는 분열 정책을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의 정점을 찍었다. 위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ISIS가 창궐하게 된 것이다.

지금 미국과 영국의 '대테러전쟁'은 중동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가. '이라크 지식 네트워크'에 따르면 이라크인들은 하루에 7.6시간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Iraqi Knowledge Network 2011). 2012년 유엔 조사에 따르면, 그 가구의 25%가 하루에 오로지 2시간 동안만 수도를 공급받는다. 건설 주택에 1.6%, 상하수도 및 위생에 4.2%만의 예산을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무엇보다 지금 한 달 동안에만도 수천 번의 폭격에 시달리고 있는 시리아 민중의 삶은 어떤가. 'ISIS 척결'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 시리아 민간인들의 무고한 희생이 계속되고 있다. 한 달 동안 집중된 러시아 공습만으로도 지금 2백 명 이상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보도되고 있다. ISIS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시리아 라까 지역의 민간인들은 ISIS뿐 아니라 서방과 러시아의 공습(서로 다른 이유의 공습이자만)의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폭격과 '테러'를 빌미로 한 각종 반민주조치들은 상황을 악화시킬 뿐

ISIS의 창궐을 막으려면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폭격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런던대 중동문제 연구소 토비 도즈(Toby Dodge) 교수는 이라크 민족주의의 역동성과 실체에 관한 역사적이고도 진지한 분석을 내 놓은 바 있는데 그에 따르면 종파 간 분열은 이라크의 운명이 아니다(ISIS에 대한 분석과 시리아에 대한 분석은 반전평화연대(준) 활동가들의 연재로 이어질 예정이니 나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겠다). 이라크와 시리아에는 외세의 힘을 빌리지 않으려 했던 활력적인 정치세력들이 중동 내에서 가장 많았다. 이들은 2011년 중동혁명에 큰 영감을 얻고 힘을 얻었을 것이다. 이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하고 새로운 대안을 구축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은 그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다. 폭격은 그 기회마저 제거할 수 있다. 폭격은 ISIS 세력 확장을 조장할 위험까지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쩔텐가. 그 동안 한국 정부는 위 비극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의 이라크 점령을 돕겠다고 이라크 북부 아르빌에 한국군을 파병해서 이라크가 삼분할하는 것을 도와 동족상잔의 비극에 힘을 싣지 않았나. 또 최근에는 '제도화된 착복'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라크 정부에 T-50 고등훈련기를 여러 대 팔았다며 흐믓해 하지 않았나. 이라크 정부가 파괴된 수도 시설 복구 등은 나몰라라 하면서 20%에 육박하는 예산을 무기 구입에 쓰는 부패한 독재 정부가 주요 고객이 됐다며 좋아라 하지 않았는가.

미국은 시리아 공습으로 지난 2014년에 한 달에 1조 원을 썼다. 한국 정부는 얼마나 썼을까? 어제 통과된 예산안의 일부가 혹시 시리아 민간인들에게 겨눠질 폭격에 쓰이진 않을지 샅샅이 살필 일도 남아 있다.

더 급박한 과제는 '테러방지법'이다. 점령이 낳은 절망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용해서 갑자기 덩치가 커진 괴물을 잡겠다며 엄한 곳에 총질을 하는 위험한 행태를 서슴지 않을 태세다. 여야가 합심해서 말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이민의 자유를 '테러방지'라는 이름으로 위축시킬 위험천만한 이 법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만 한다. 그리고 '테러방지법'의 어두운 역사에서 배워야만 한다.
#테러방지법 #ISIS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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