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성공회대 제공
2012년의 마지막 날 나는 28살의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였다. 수능을 여섯 번 보면서 늦게 대학에 들어간 탓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운동의 언저리(나는 내가 학생운동의 중심부에 섰던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에서 기웃거리다가 대부분의 운동권 학생들이 그렇듯이 늦깎이 입대를 하게 됐다.
군에 입대하기 전 몇 개월 동안을 늦은 나이에 입대한다는 두려움과 2년을 잃어버린다는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많은 방황을 하며 지냈다. 그리고 한편으론 전역하면 먹고 살 길을 마련해야 한다는 걱정과 '운동권스러운' 과거의 행적들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가끔씩 들기도 했다. 더욱이 과거 같은 단체에서 활동을 하며 나에게 '그렇게 운동할 거면 때려치우라'던 동지가 운동을 접고 삼성에 입사했다느니 고시를 본다느니 하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괴감도 들었다.
나이 많은 노병(?)으로서 또 학생운동을 하던 신분으로 군대에 가니 참 힘든 점이 많았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 선임의 갈굼, 일상 속의 부조리... 하지만 이런 것들보다는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힘들었다.
게다가 군대에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면서도 매주 수요일 정훈교육 시간에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과 '건국 아버지 이승만' 따위를 가르쳤다. 도서 반입조차 자유롭지 않아서 인문 교양서적이나 시집 정도를 읽으며 지식욕을 겨우 채울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가 만약 신영복 선생님을 몰랐다면 아무 생각 없이 군 생활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나만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어느 변절한 정치인들처럼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영감을 준 시 '처음처럼'어찌 감히 신영복 선생님의 20년 옥살이와 내 2년의 군 생활을 비교하겠냐마는 그래도 비교적 같은 처지(?)에 서니 자연스럽게 신영복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신영복 선생님이 감옥에서 사색을 하셨다면 나는 군대에서 참 많은 사색을 한 것 같다. 불침번을 서면서 또 지휘통제실 근무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영감을 준 신영복 선생님의 시가 있었으니 바로 님의 <처음처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