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기보
김하영
바둑 격언에 '상대방의 돌을 4선에서 밀어주지 말라'는 것이 있습니다. 3선에서 밀어주면 고작 두 줄짜리 집이 생기므로 5번 밀어줘도 10집에 불과하지만, 4선에서 그렇게 되면 같은 숫자만큼 밀어도 15집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밀어주고 집을 내어줌으로 인해서 생기는 본인의 '두터움'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따라서 4선을 밀어주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이고, 37과 같은 수는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당당하게 37을 두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37을 두고 보니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두 번째의 흑15와 상당히 어울렸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알파고는 37을 내다보고 15까지 둔 것인지 의심스러워집니다. 그러나 알파고가 왜 이렇게 두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37을 내다보았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유가, 이세돌이 32, 34, 36을 다른 자리에(가령, 상변 내지는 흑 35가 위치한 방향의 어딘가) 두었더라면 37이라는 수가 나올 이유가 없었으므로, 이것은 알파고의 '계산' 영역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순수하게 바둑의 측면으로만 바라보면, 위의 세 착수에 대한 순서들에 대해서 더 논의할 이야기들이 많겠지만, 위의 수들이 왜 파격인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는 않기에 그런 깊은 이야기까지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승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첫째 날(10일)의 대국은 비교적 놀랍고 의문스러운 수들이 없었던 데 반하여, 둘째 날(11일)은 이런 파격이 초반부터 세 차례나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대국은 여전히, 알파고의 승리였습니다.
이것이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히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수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예상에 벗어난 수를 두고도, 심지어는 전통적으로 두어서는 안 되는 자리를 두고도 결국에는 '이겼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과연 알파고가 두었던 13, 15, 37의 수들은 어떻게 평가받아야 하고,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바둑이라는 스포츠에서 매 착수의 목적은 결국 이기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13, 15, 37과 같은 수들을 두고 알파고가 이겼다면, 해당 수들이 결국 '잘 둔' 수들이고, 우리의 지금까지의 모든 바둑이론과 체계가 사실은 틀렸다는 것을 의미할까요?
아니면 사실은 알파고가 아직 한계가 있다 보니 좋지 않은 수들을 두기는 했는데, 다른 측면에서 실수 없이 꾸준히 좋은 수들을 두었기 때문에 이겼던 것일까요? 우리의 지금까지의 평가 기준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우리가 발전시킨 '논리적 사고의 체계' 자체가 잘못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애초에 '좋은 수'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더 중요하고 심각한 것은, 이러한 질문들은 답을 얻을 수 없는 질문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컴퓨터가 왜 그런 수를 두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라면 'A에 두면 ~~~가 될 것이므로 좋지 않고, B에 두면 #!@가 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반면 C는 #$@#!라는 점에서 가능한 옵션이고 D는 @#$%@이기 때문에 둘만 하다'와 같이, 상황별로 주변 돌들과의 형태를 고려해가면서 착수마다 구체적인 이유를 듭니다.
그것이 묘수이건 착각으로 인한 실수이건 말입니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냥 '거기가 확률적으로 이기기 가장 높다고 계산되었으니까'입니다. 그렇다면 그 확률은 어떻게 계산되는 것인가요? 모릅니다. 왜냐하면, 알파고의 알고리즘 자체가 그렇기 때문입니다(이와 관련해서는 네이처에 실린 알파고에 관한 논문을 읽어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어떤 근거로 착점들에 대한 세부적인 평가가 이뤄지는지는 우리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컴퓨터가 계산해보니 거기가 가장 승리확률이 높은 자리였다'일 뿐입니다.
'승착', '패착'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착수에 의해서 그 판을 이겼다 졌다와 같은 인과관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알파고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승착과 패착을 구분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 수를 뒀기 때문에 이긴 것인지, 이겼기 때문에 이 수가 적절한 수였던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컴퓨터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