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소설에서 말한 '비극', 우리 옆에 있다

소설가 한강이 옥바라지 골목을 봤다면 뭐라고 썼을까?

등록 2016.05.17 18:04수정 2016.05.1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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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일 옥바라지골목 철거 현장. 포크레인이 부수는 건물은 구본장 여관 옆에 있는 삼화장이다.
17일 옥바라지골목 철거 현장. 포크레인이 부수는 건물은 구본장 여관 옆에 있는 삼화장이다.이재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2016년 5월 17일 새벽,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을 받아 언론의 이목이 집중된 소설가 한강은 자신의 소설 <소년이 온다>에서 2009년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일어난 용산참사에 대해 이렇게 썼다.

한국의 언론은 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국가적 경사라며 자랑하듯이 이야기하지만, 그가 글 속에서 아프게 여긴 한국의 현실은 보도하지 않는다. 그것이 때때로 너무나 끔찍하게 다가온다.

한강이 소설에서 말한 '비극', 우리 옆에 있다

 옥바라지골목의 구본장 여관
옥바라지골목의 구본장 여관이재윤

언론이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앞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는 듯 보도하던 오늘 새벽, 많은 독립 투사들의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하던 역사적인 공간, 서울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 안에 있는 구본장 여관은 폭력적인 강제집행을 당했다. 이곳은 기록에는 없지만 김구 선생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했을 때도 그의 어머니가 머물면서 옥바라지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시행사에서 고용된 100명 남짓의 용역들은 철거민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을 구본장 여관에서 내쫓으려 소화기를 뿌리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등 폭력을 행사했으며, 오래된 건물인 구본장여관을 사람이 있음에도 포클레인으로 부수려고 했다.

누군가의 삶이 내쫓기는 현실과 마주하며 소설가 한강은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기에 맨부커상을 받은 걸까? 사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은 언론이 축하할 일이 아니라 우리 한국의 현실이, 소설 혹은 문학작품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것이 작품으로써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의 비극임을 슬퍼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녀는 살아본 적이 없었다. 기억할 수 있는 오래전의 어린 시절부터, 다만 견뎌왔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선량한 인간임을 믿었으며, 그 믿음대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소설가 한강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하게 해준 <채식주의자>에는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용역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내쫓겨질 위기에 처한 구본장 여관의 이길자 사장님은 올해 64세로, 35년 동안 노동을 하여 모은 돈으로 옥바라지 골목에서 8년째 여관을 운영해왔다.


'책 밖에서' 함께 살자

김경년

나로 살기 위해서 견뎌온 세상, 그리고 그 세상에서 온전히 살고픈 희망을 품고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자본이나 개발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내쫓을 때, 우리는 그 비극적의 현실을 책이나 언론을 통해서 마주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진 것이 아닐까?

삶의 터전에서 폭력적으로 밀쳐지고 쫓겨나는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을 때, 그들의 존재가 훼손 당하고 차별 받지 않도록 우리는 마땅히 옳은 방법으로 존중해야만 한다.

독립문역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는 지금 쫓겨나거나, 쫓겨날 위기에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것을 지나가는 하나의 뉴스 혹은 나와 상관없는 타인의 사건으로만 지켜볼 것이 아니라 함께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모았으면 좋겠다. 문학이 그리고 하나의 책이 아직 우리의 삶을 이끌어주는 척도로서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 맞다면, 책 속의 비극을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책 밖에서 비극을 막으며 함께 살자.
#옥바라지골목 #철거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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