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천>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삶
리키필름
서울에서 태어난 이홍기 감독에게 순천은 두 번째 고향이다. 그는 순천의 자연을 부러워했고, 그 속에 살고 있는 순천 사람들을 사랑했다.
"순천을 처음 갔을 때 깜짝 놀랐어요. 산과 바다의 공간이 주는 포근함이랄까. 매일같이 색의 향연이 펼쳐졌죠. 경치가 뛰어나다는 곳을 많이 가봤지만, 순천의 색은 이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었어요. 낮에는 한없이 파랗다가도 저녁에는 빨갛고, 밤에는 시커멓게 변하거든요." 잔잔해 보이지만 생동감 있고, 갯벌이 살아있는 순천의 바다는 삶 그 자체였다. 그래, 사람을 찾자! 하지만 거칠기로 소문난 바닷사람들은 그가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고개를 저으며 매몰차게 돌아서고는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만나게 된 주인공의 이름은 윤우숙. 그녀는 금녀의 구역으로 여겨지는 바다에 직접 배를 끌고 나가 생선을 잡아 올리는 여장부이자, 술 좋아하고 무심한 남편의 아내였으며, 억척스럽게 육 남매를 키워낸 엄마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을 근처에도 못 갔어요. 지독하게 억셌고 거칠기도 했습니다. 바다 일은 그만큼 힘들었고, 남자들이 해내기도 쉽지 않아요. 삐걱거리는 목선을 끌고 밤바다에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은 마치 장군 같았어요." 이홍기 감독은 영화 <순천>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으로 바다 위에서 작은 배를 당기고 나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꼽았다. 인간은 너무 나약해서 스스로 의지할 것을 만들어내는데, 그 어떤 것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강하다. 그는 그녀의 모습이 종교 이상의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순천의 와온해변과 가까운 마을인 하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 살을 채우기도 전이었던 친구들은 매일 같이 바닷가에 놀러 가고는 했다. 어린 꼬마들의 손에는 뒷산에서 잘라온 대나무와 마른 갈대 찌로 만든 낚싯대가 들려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그물을 촘촘하게 엮어서 대나무에 묶은 고기망이 있다.
해가 머리 위에서 쨍쨍할 때 즈음 출발해서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와온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곳에 고기 그물을 대어 놓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며 몰아가면 어느새 그물 안에는 작은 물고기들과 미꾸라지, 고동이 가득이었다. 운이 좋은 날에는 꼬마들의 팔뚝만 한 가물치가 걸려있기도 했다.
끝도 없이 펼쳐있는 갯벌 주변의 둑이나 방파제 위에서 대나무 낚싯대를 던진다. 미끼도 없는 낚싯바늘을 조금씩 당기다 보면 문절이 (망둑어)가 알아서 제 입을 바늘에 끼웠다. 그리고 바닷물이 들어오기 전에 참기 (참게)와 조개껍데기를 얼른 주워 담아야 한다. 갯벌에 물이 들어올 즈음이면 새파란 갈대들이 서로 몸을 부대끼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수평선 위의 파란 하늘부터 서서히 물들기 시작하더니 바다와 주변 마을이 붉어진다. 영원할 것 같은 태양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바다와 하늘의 경계는 더욱 뚜렷해졌다. 집을 나설 때부터 쉴 새 없이 떠들었던 꼬마들은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작은 바다 마을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석양은 매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언제나 나를 매료시켰고,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홍기 감독이 순천 화포해변에서 느꼈던 매력은 무엇일까.
"그곳의 시간이 좋았어요. 나는 도시에서만 살았는데 항상 바빴죠. 매일 시계를 봐야 하고 기계처럼 돌아가고 있었어요. 화포해변의 삶은 시계가 필요 없었습니다. 몇 시에 바다에 나가는지, 몇 시에 돌아오는지 물을 필요가 없었던 거예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화포해변에서는 시계가 필요 없었다. 자연이 곧 바닷사람들의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새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시간, 태양이 떨어지는 시간들이 어머니를 움직이게 만들었어요.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만이 몸으로 알 수 있는 감각적인 것들이 있어요. 자연의 시간에 맞춰 산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겁니다." 카메라는 무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