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수락 연설을 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연합뉴스·EPA
국제사회는 2016년을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대선 승리'라는, 그야말로 '아찔한' 두 가지 사건을 경험한 해로 기록하지 않을까 싶다. 일상언어를 빌리자면, 설마, 설마 하다 뒤통수 맞은 사건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조금 더 면밀하게 들여다 보면 충분히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두 사건의 핵심은 '소득 불균형'과 '민족주의'로 설명될 수 있을 법 하다. 영국의 국제구호 개발기구인 옥스팜의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선진국 중에서 소득격차가 가장 심한 나라이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면, 영국의 부유층 1%가 소유한 재산이 소득수준 하위 50%에 속하는 시민들의 재산 전부를 합친 것보다 무려 20배가 많다. 그와 같은 소득격차로 인해 생긴 중산층과 빈민층의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을 영국 정부와 미디어는 지속적으로 유럽연합의 이민 정책 탓으로 돌려왔다.
그로 인해 영국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브렉시트는 자국의 미래에 대한 선택이었다기 보다 피부로 느껴지는 소득격차에 대한 분노와 미래에 대한 걱정이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영국의 '홀로서기'를 통해 다시 한 번 '영국다운 영국'을 만들고 싶은 영국시민들의 민족주의적 열망이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었고, 경제적으로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뒤쳐지고 있었다. 그렇게 가라앉고 있던 영국에게 'EU 멤버십'은 그야말로 구명보트였던 셈.
하지만 최근 몇 년간 해일처럼 밀어닥친 유럽의 경제위기는 영국시민들로 하여금 자국의 경제적 위치를 유로존 보다 우위로 간주하게 했고,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영국 보수층 엘리트들의 'Make England Great Again' (다시 한 번 영국을 위대하게) 이라는 구호가 먹히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
'브렉시트' '트럼프 대통령'보다 아찔한 사건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도날드 트럼프는 브렉시트 옹호자들이 사용하던 구호와 유사한 'Make America Great Again'(다시 미국을 위대한 나라로 만듭시다)이라는 슬로건으로 선거 유세를 펼쳤던 인물이다.
그가 공략한 유권자는 영국의 중산층 보다 더 심각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미국의 중산층 백인들.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침체의 원인을 유색인종의 탓으로 돌리는 선거전략을 구사했다(사실 오바마 임기 동안 미국은 경제성장과 더불어 실업률을 5%나 낮췄다. 문제는 대부분의 혜택을 백만장자나 억만장자가 누렸다는 데 있다).
또한 9/11 사태 이후 '테러' 라는 단어만으로도 발작증세를 일으키는 미국인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감을 일으키는 동시에 '무슬림 추방'이나 '무관용 이민자 정책'을 내세워 백인 우월주의의 정점을 찍었다. 그런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미 대선 결과를 두고 외교정책포커스(FPIF)의 공동소장인 존 페퍼 (John Feffer)는 이렇게 한탄했다.
"I didn't think it could happen here … I was wrong. It can happen here just as it has happened in Europe."(나는 설마 이런 일이 여기서(미국) 발생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틀렸던 것이다.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그가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득 불균형'과 '민족주의'가 어느 특정 대륙이나 국가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결코 그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불공평한 부의 분배와 타민족 그리고 국가에 대한 배타심은 어느 순간 우리를 브렉시트나 트럼프의 대선 승리보다 더 '아찔한' 사건 속으로 몰고 들어갈지 모를 일이다.
자,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