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독극물 공격을 받은 후 고통을 호소하는 장면이 담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CCTV 갈무리.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1990년대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조사실(대북공작국) 소속 '흑금성 공작원'으로 유명한 박씨는 21일 기자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강철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고 눈에 많이 익은 인물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97년 당시 대선공작반을 지휘한 '강 참사'였다. 강반석(김일성 어머니) 집안인 강철은 평양외국어대 출신으로 6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정세에도 밝은 실력자다"고 밝혔다. 김일성 주석의 외가인 '칠골 가계'는 본가를 지칭하는 '백두 혈통'과 함께, 북한에서 주민들에게 오랫동안 우상화 작업을 해온 대표적 '로얄 패밀리'이다.
지난 2월 13일 김정남 피살 사건 이후, 많은 국내외 언론이 말레이시아 현지 소식을 연일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있다. 특히 김정남의 부검 결과와 사망 원인이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강철 대사는 두 차례나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번에 발생한 모든 사건이 한국과 결탁한 말레이시아가 정치화한 것"이라고 '남한 배후설'을 주장해 뉴스의 중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의 외교관답지 않은 거친 언행으로 인해 북한-말레이시아 간 외교전으로 비화하는 등 파문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강 대사의 신원에 대해서는 보도된 바가 없다.
실제로 강철 대사는 2014년 6월 장성택의 조카인 장용철의 후임으로 말레이시아 및 브루나이 대사로 부임했다는 것 말고는, 이전 경력과 직책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은 그에 앞서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 과정에서 장용철 대사와 매형인 전영진 쿠바 대사를 평양으로 소환해 숙청했다. 따라서 대사가 소환된 '사고 공관'에 강철이 임명된 것은 그만큼 김정은 위원장의 신임이 크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또한 김정은의 외척(外戚)인 그가 말레이시아 대사로 임명됨으로써 장성택의 동남아지역 비자금 및 인맥을 점검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었다.
90년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위장 포섭되어 침투한 뒤에 장성택 등의 신임을 얻은 흑금성 공작원 박채서씨는 북한 전역에서 상업광고를 찍는 편승공작을 수행하면서 북한 핵심 지도부의 의지를 파악해 당시 안기부 해외조사실(대북공작국)에 보고하는 국가공작을 수행했다. 그런데 98년 3월 정권 교체기에 구(舊) 안기부 수뇌부가 대북공작 1급비밀을 담은 '이대성 파일'을 유출하는 바람에 신분이 공개되어 3억 원의 위자료를 받고 '해고'되었다.
다음은 21일 박채서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박씨와의 전화 인터뷰는 말레이시아 경찰이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김정남 암살에 북한 대사관 직원(2등서기관 현광성)과 고려항공 직원(김욱일)이 연루되어 있다고 공개하기 전에 이뤄졌다.
- 김정남 피살 사건을 어떻게 보나."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의 직접 승인이나 동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 요인 암살에 관여하는 대외정보조사부나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보인다."
-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로 돈줄이 마른 김정은이 김정남과 그의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의 비자금을 노린 것이라는 시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장성택이 김정남의 뒤를 봐준 것은 맞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김정남에게는 많은 자금이 없다. 2005년경 마카오에 있던 비자금의 대부분을 베이징으로 가져왔고, 장성택은 이후 베이징을 중심으로 자금을 운영해 왔다. 또 장성택이 호화-사치생활이 몸에 배이고 금융관리에 못미더운 김정남에게 돈을 맡길 리가 없다. 김정남이 베이징에 오면 대개 장성택이 소유한 향촌(鄉村) 빌라촌에서 머물렀는데, 현금이 필요하면 지원해 주는 정도였다."
- 장성택이 김정남을 후견한 특별한 배경이 있는가."장성택은 중국식 개혁개방과 집단지도 체제 구축을 조심스럽게 추진해 왔다. 그러나 김정남은 장성택이 추진하려는 북한 체제의 변화와 집단지도 체제 구축을 위해 필요한 과도기의 상징적 존재일 뿐이다. 만약 장성택이 처남인 김정일과의 오랜 인간 관계나 북한의 관습을 무시했다면, 김정일 생전에 쿠데타나 모종의 사태를 일으켰을 것이다. 실제 친중파인 장성택의 중국 군부내 지원 세력이 모종의 사태를 종용하기도 했다. 그러한 정황을 잘 알고 있는 김정은의 호위 세력이 장성택을 전격 제거하고 그의 비자금을 장악하려 했던 것이다."
- 강철 대사는 만난 적이 있는가."강철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고 눈에 많이 익은 인물이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97년 당시 대선공작반을 지휘한 '강 참사'더라. 강 참사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외가인 '칠골 가계'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임이 두터운 실력자였다. 당시 권민, 리호남 참사와도 잘 통하는 사이어서 누구냐고 물어보니, '칠골 가계'(강반석 집안)라며 평양외국어대 출신으로 6개 국어를 구사하고 해외 정세에도 밝은 실력자라고 얘기하더라."
- 당시 겪어본 강 참사는 어떤 인물이었나."당시 리호남 참사나 나이가 더 많은 강덕순 참사가 업무에 미숙하거나 실수하면 곧바로 지적하고 시정토록 하는 식으로 거침없는 행보를 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 또 안기부 편승공작으로 추진했던 광고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면, 베이징 현지에서 관계자들을 강하게 질책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 물을 먹어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사고가 유연하고 합리적인 인물로 기억한다."
"강철의 억지 주장을 보면 북한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