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 나갔다가 자퇴까지... 이래선 안 된다

교문 앞에서 멈추는 '민주주의'... 학교의 일상이 더 정치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해야

등록 2017.05.04 11:39수정 2017.05.04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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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촛불 집회를 계기로 '18세 선거권' 등 청소년들의 참정권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일부 정당들의 소극적 자세나 반대 속에 대선 정국이 되자 청소년 참정권에 대한 관심은 다시 사그라지고 있는 분위기다. '청소년인권연대 추진단'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전반의 문제가 이슈화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3월부터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가 탄압당한 사례를 수집했다. 그 결과 모인 사례들을 소개하며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위해 풀어야 할 과제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5월 9일 대선일에는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청소년 집회가 열릴 예정이다. - 기자 말

 정의당 이영봉 부산시당 청년위원장과 권혁준 울산시당 청년위원장, 이승우 경남도당청년학생위원장은 지난 2월 1일 오전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만18세 선거권 연령 인하'를 촉구했다.
정의당 이영봉 부산시당 청년위원장과 권혁준 울산시당 청년위원장, 이승우 경남도당청년학생위원장은 지난 2월 1일 오전 경남도의회 브리핑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만18세 선거권 연령 인하'를 촉구했다.윤성효

'교육기본법 제2조(교육이념) 교육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陶冶)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人類共榮)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모든 교육 관련 법률의 근간이 되는 교육기본법은 제2조에서 국가 교육의 목표를 명시하고 있다. 제2조는 교육의 존재 이유,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인격의 도야, 자주적인 생활능력,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꼽으며 그것이 민주국가의 발전, 인류의 공존과 번영이라는 지향을 현실화하는 것에 있다고 규정한다.

한국 교육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많은 사람이 글에서 한 번쯤은 언급하게 되는 교육기본법 제2조는 너무 많이 인용된 탓인지 우리에게 제법 친숙하다. 그런 한편 아무도 교육기본법의 교육의 목적과 존재 이유에 대한 선언이 현실에서 실현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또한 흔한 일상이다. 으레 선언적인 법에 존재할 법한 '좋은 말' 정도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 우리네 교육이념과 존재 이유의 현주소이다.

제2조의 선언이 다양한 방면에서 현실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지향을 꼽으라면 난 단연 '민주국가의 발전'을 꼽겠다. 교육기본법이 말하고 있는 국가 교육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공간인 '학교'는 우리 사회의 민주적 발전을 저해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느냐 보단 학교가 무엇을 '일상화'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평범한 것이 '이상한 것'이 되는 일상

작년 겨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나오고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과 반대의 여론이 촛불로 구체화되면서 전사회적 관심이 광장 정치로 모여들었다. 고등학생인 A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중고등학생으로 구성된 단체에 속해 있던 A씨는 단체 주최의 집회 개최를 홍보하기 위하여 SNS에 홍보물을 배포하고 언론사들에 보도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윽고 집회 개최에 대한 기사가 나오게 되었고 A씨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된다. A씨의 집회 개최 사실을 언론을 통해 접한 경찰이 이와 관련해 학교에 전화를 건 것이다. 이로 인해 A씨는 교무실에 불려 다녔고 교사들의 수군거림과 안 좋은 소문들을 감내해야했다.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A씨는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다.

한편 학생들이 박근혜 퇴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거나 묻는 경우 대개 교사들은 '너희는 알 필요 없다', '공부나 해라'라며 일축하거나 훈계를 주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 학생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박근혜 퇴진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던 도중 이를 듣게 된 교사가 "뉴스에서 못된 것만 배워 왔다"며 때리려는 시늉을 했던 경험을 제보하기도 하였다.


사실 사회적 문제에 대한 대화조차 하지 못하도록 막는 분위기는 우리 교육의 꽤 오랜 전통이다. 이런 분위기는 2002년 효순-미선 촛불 때도 그랬으며 2008년 광우병 촛불 때도 그러했고,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당시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의 구술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이들의 일상적인 경험이었기 때문일까? 이 시대를 지나왔던 많은 이들은 이를 몇몇 교사들의 일탈행위로 보거나 아니면 학창시절에 교사들이 으레 던지는 핀잔처럼, 추억으로 미화하기도 하며 가벼운 소재로 회상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는 교문 앞에서 멈춘다

하지만 교사의 가벼운 핀잔에서 학생들의 적극적 정치행위를 막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기인하고 있는 전제란 전혀 가볍지 않다. 흔히 민주주의는 행동할 권리와 자유로부터 지탱되는 정치체제라 말한다. 정치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기에 이를 자유롭게 보장하는 것은 살아있는 민주주의를 위해 꼭 필요하다.

자유롭게 보장한다는 의미를 조금 더 풀어본다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이 평범한 행동'이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특별하지 않은 것이라면 왜 그들은 이토록 '특별한 것'처럼 대우하는 걸까? 왜 A씨는 집회 개최에 관련이 있었다는 이유로 교무실을 드나들어야 했으며 박근혜 퇴진에 대한 학생들의 대화는 굳이 할 필요 없는 것이 되는 것일까? 두 사례의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들이 서로 공유하고 있는 전제를 만날 수 있다. A씨의 사례와 사회이슈에 대한 토론을 막는 학교의 분위기는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 곧 본분이자, 평범함"이라는 일종의 암묵적 규율 속에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일반론에서 '집회'나 '사회문제에 대한 대화'란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이러한 전제가 뒤집힌 학교 안에서는 행동하는 것은 평범하지 않고 오히려 '특별한 것'으로 탈바꿈된다. '특별하다'는 것의 의도는 명확하다. 보편적인 권리로서 '최소한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정당성을 지우려는 것이다. 학생이 집회를 신고하는 것은 특별하지, 보편적이지 않은 행위다. 학생이 사회 문제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특별하지, 보편적이지 않은 행위다. 따라서 두 가지는 제한되어도 괜찮은 것이고, 과한 것이지 모자란 것이 아니다.

이러한 논리는 비단 학교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는 순간 그들의 일상생활로 확장된다. 청소년이 집회에 나오는 것은 특별하다. 청소년이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은 특별하다. 얼핏 보면 긍정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그 행동들이 지극히 평범하게 향유할 수 있는 행동임을 부정하는 '부정의 언어'인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맴도는 그 논리의 귀결은 결국 청소년이 말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편화하고 그와 반대되는, 민주적 실천과 정치적 발화를 위축시키고 검열하는 문화를 만들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청소년들이 어리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가 타당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들이 어리고 미성숙하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보편 원칙인 정치적 표현, 행위의 자유가 유독 학교라는 공간에서 힘을 잃는다는 것은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논의이다. 애초에 그러한 주장은 대체로 청소년이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없는 자들, 즉 시민이 아니라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다. 청소년기까지는 민주주의의 바깥에서 지내면서 그것이 끝나면 민주주의를 지탱할 정치적 주체가 당장 되어 있기를 바라는 태도는 정말이지, 말만 편리한 이중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민주적인 학교가 민주적인 시민을 만든다

야자 대신에 촛불집회에 참석하겠다는 학생을 막는 학교, 학생들은 사회문제, 정치문제에 관심 가질 시간 없이 학교와 입시에 매여 있어야 하는 현실은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학생의 모습이 보편화된 문화가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이런 문화가 일상화 된 공간인 학교는 근본적으로 민주주의와 더불어 교육의 이념과도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짧게는 9년, 길게는 12년을 학교라는 공간에서 생활하며 민주주의와 정치를 특별한 것으로 취급받은 시민들에게 교육은 어떠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제공했는가? 오히려 민주주의가 보편타당한 원칙으로 만들어낸 시민의 자유로운 행동과 말의 보편성을 부정하는 학교의 문화, 교육의 현실이 민주국가를 지켜갈 시민의 모습과 반대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모난 돌이 정 맞는 문화도 문제지만 그 모난 돌이 정치활동을 하는 학생이라면 적어도 민주주의에 큰 적신호가 되고 있음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민주주의의 보편타당한 원리를 부정하는 학교와 우리의 민주주의는 알게 모르게 불편한 공존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요즘 적폐논쟁이 한창이다. 무엇이 적폐인지, 어떤 것이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해소되어야 할 구체제인지를 놓고 정치인, 전문가들부터 일반 시민들까지 갑론을박 중이다. 적폐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새로운 사회에 가져가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본다면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해치는 정책과 제도들은 당연하게도 적폐일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발화와 행동을 위축시키며 정치적 자유를 억압하고 있는, 그러한 문화를 보편적이고 일상적으로 생산하는 지금 교육의 문화는 그 적폐들과 도매금으로 묶여야한다.

새로운 사회의 민주주의가 보다 넓어지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학교의 일상이 보다 정치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사실 이건 그리 급진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이미 교육기본법 제2조는 교육의 목적이 그것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민주적 시민으로서의 자질은 일상적인 정치 행위, 그리고 토론의 경험 속에서 갖춰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청소년정치 #촛불집회 #학교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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