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탑을 둘러싼, 오석에 음각된 수많은 대구·경북 지역 항일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익숙한 이름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처음 접해보는 생소한 이름들이었다. 걸음을 옮기며 찬찬히 살펴보던 중 ‘김강아지(金江牙之)’라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천정환
그렇다면 독립운동가 김강아지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연유로 독립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을까? 국가보훈처 <독립운동사>의 짤막한 기술에 따르면, 김강아지 선생은 1897년 태어났다. 노비가 해방된 제1차 갑오개혁이 1894년 일어났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공식적인 노비 해방 이후로도 그의 부모가 주인집에서 이전과 같은 생활을 이어가던 중 김강아지 선생이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강아지'라는 이름은 이러한 그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주고 있었다. 1919년 5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진행된 재한에서의 김강아지 외 6명에 대한 짤막한 판결문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했던 그의 행적을 말해준다.
"피고 성갑 외 6명은 조선 각 지방에서 한국독립 시위운동이 치열하며 이를 성원하면 독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김학배 또는 김태호 등의 선동에 의하여, … 피고 강아지(江牙之)는 대정 8년(요시히토 일왕의 연호, 서기로 1919년) 3월 18일 오후 9시경부터 다음날 19일 오전 1시경에 이르기까지 그곳에서 다른 20여 명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함으로써 치안을 방해했다."의성 점곡면 일대의 만세운동은 김태호, 김학배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9시경, 점곡동 일대에 500여명의 주민이 모여 미리 준비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일으켰고, 이튿날 300여 명의 시위군중은 사촌동에 집결한 후 주재소로 행진하여 만세운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일본 군경은 자정을 넘긴 새벽 1시경 발포를 감행하여 군중을 해산시켰다. 김강아지는 이틀간 계속된 점곡면 만세 시위에 참가하던 중 일경에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보안법 위반'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강아지는 결국 징역 6월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김강아지'라는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지 않다. 그는 우리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수많은 무명의 독립운동가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러나 광복은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는 독립운동 지도자들만의 노력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태화관에 모인 민족대표 33인의 독립 선언만으로 한민족의 독립 의지가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일경에 스스로 연행된 민족대표의 뒷모습이 3·1운동의 마지막 모습이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헌법을 통해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기념하고 있을까?
우리에게 기억되지 않는 무명의 독립운동가 김강아지 선생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에서 보여지듯, 그는 당시의 사회 지도층·지식인과는 거리가 있는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가 1919년 서울이 아닌 의성의 한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한 가운데 서있었다는 사실은 3.1운동의 많은 의의를 내포한다.
3.1운동이 민족대표들만의 공허한 외침이 아니라 독립에 대한 전 민족적 합의로 이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특히 지식인들에게 교화의 대상으로만 취급되었던 민중들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어 독립운동의 동반자로써의 민중의 역할이 새롭게 발견되기도 했다. 조양회관은 이러한 인식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들의 뜻을 모아 세워졌던 조양회관은 이후 대구 지역 민족 계몽운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대구 지역 민족 계몽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조양회관과 서상일 선생, 항일운동기념탑에 음각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김강아지 선생이 증언하는 독립 운동의 역사는 72돌을 맞이한 광복절의 의미를 빛내고 있다.
독립은 우리 민족을 스스로 찾아오지 않았다. 광복은 오랜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운동의 결과였다. 조선의 빛이 되어라는 의미에서 이름 붙여진 조양회관은 수많은 민족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됐다. '빛을 되찾은'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를 계양하면서 서상일 선생을 비롯한 민족 계몽가들, 그리고 우리가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김강아지' 선생을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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