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책 표지
힐링아트
1990년대 초, 고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수학여행지 '경주'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차례를 기다리며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를 배경으로 학급별로 단체사진을 멋지게 박고, 미처 덜깬 잠을 이겨내며 새벽어스름에 해돋이를 봐야 한다며 서울 성북동 북악스카이웨이와 맞먹는 급회전길을 좌로 우로 돌며 올라갔던 토함산 석굴암에, 길게 줄서서 들어갔던 천마총이며, 시내 곳곳에 그 당시만 해도 높게만 보였던 대릉원 이하 각종 이름없는 릉들...
말그대로 하루 몇 곳을 채워야 하는 계약을 한 것마냥 정신없이 입장하고 버스타고 사람들 틈새로 정신없이 지나쳤던 기억들... 책이나 수업시간에 배운 문화유적이나 역사적 배경에 대해선 정말 손톱만큼이나 듣고 지나쳤지 싶다.
수필가이자 기행작가인 이재호가 펴낸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을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경주에 대한 지식은 얄팍해도 너무 얄팍했다.
'이재호와 함께 신라왕릉 가는 11길'은 신라 최초의 왕인 박혁거세의 오릉부터 시작해 경주의 모든 신라 왕릉을 걷는 길로 이어진다. 왕릉이 이렇게 많았나 싶으면서도 신라의 흥망성쇠와 함께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저자 이재호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의 기록을 비교해가며 적절히 상상력을 부추긴다.
게다가 걷기가 대세인 요즘, "험준한 산길이 아니라 분지형의 넉넉하고 아늑한 길은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향기를 전하는 어머님의 품과 같이 포근한 여유를 준다"며 경주만큼 걷기에 제격인 곳도 없다고 강조한다.
문화유적이 가장 많은 경주에 평생을 걸고 정착하여 문화유적 곳곳을 헤매고 다녔다는 저자 이재호는 왜 그렇게 경주에 천착했을까? 그리고 이전에 펴낸 <천년고도를 걷는 즐거움>과 <삼국유사를 걷는 즐거움>에 이은 세 번째 "걷는 즐거움"으로 '왕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이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거창한 제왕학이 아니더라도 나라와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줄 수만 있어도 훌륭한 왕이리라... 56명의 신라 왕들은 나름의 한계가 있었지만 백성을 사랑하고 아끼는 아름다운 덕의 정치를 펼쳤기에 그 결집된 힘으로 마침내 반도를 평정하는 최초의 통일국가를 이루었다."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심스레 묻고 있다. 천년왕국 신라의 '덕의 정치'는 언제쯤 실현될까?
왕의 길을 걷는 즐거움 - 이재호와 함께 신라 왕릉 가는 11길
이재호 지음,
힐링아트,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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